[뉴스로드] 금강산이 그립다. 가보지 못한 그리운 금강산이다. 금강산을 사진으로만 보았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금강산에 대한 그리움이 많았다. 그리움은 신비로움과 아련함으로 승화하였다. 지리산에서 금강산을 바라보며 그리워한다.으뜸가는 산을 금강산(金剛山)이라 하였다. 삼신산(三紳山)에서 일(一)은 봉래의 금강산이고, 이(二)는 방장(方丈)인 지리산이며, 삼(三)이 영주(瀛洲)의 한라산이라고 한다. 또한 금강산(金剛山)은 동악(東嶽), 백두산은 북악(北嶽), 묘향산은 서악(西嶽), 북한산은 중악(中嶽), 지리산은 남악(南嶽)으로서 민
흔들림 없는 햇빛에 천지가 고요하다. 고요함에 안겨있는 숲은 아름답다. 흔들림 없는 아름다움에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듬직한 바위들이다. 숲 사이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터줏대감 같이 우직하게 앉자있다.나도 바위가 되고 싶다. 바람에도 흔들림이 없는 바위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가냘픈 마음은 바위가 되고 싶다. 나의 천박하고 가벼운 영혼도 바위를 닮고 싶다. 아무런 흔들림 없이 변하지 않고, 천년만년 그 자리에서 계절을 맞으며 포근히 안기어 오는 바람과 향기를 맡고 싶다.숲속의 바위는 많은 생명을 품고 있다. 바위에 삶의 터전을 꾸
초록빛이 도열하여 있다. 푸른 잎의 춤사위 같고 파란 혀끝을 날림 거리며 감미로운 바람결을 음미한다. 산은 녹색커튼을 치고 은밀한 사랑을 속삭인다. 사랑 소리가 메아리치고 메아리에 꽃송이가 수줍게 웃는다. 수줍게 웃는 꽃 속에 찬란하고 화려한 홍자색 꽃송이가 피어 있다.지난 겨울 혹독한 추위에서도 살아있어 반갑구나. 대견하고 어여쁘다. 홍학처럼 우아한 날개와 화사한 색채를 가진 고혹적인 자태에 “이게 야생화 맞아” 하는 의문을 가졌던 꽃이다. 순수한 야생화인 난과의 ‘자란(紫蘭)’이다. ‘자주 빛 난초’라는 뜻이며 꽃 색채가 곱고
계절의 여왕 오월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편안하고 상쾌한 나날이다. 산야는 초록빛으로 일렁이고 들녘에는 생기와 활력이 넘친다. 우리 밀 이삭들이 은파로 출렁거리니 가슴 설레 인다. 봄꽃이 진자리에 앙증스런 열매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들도 분주하다. 오월은 기념일이 많고 바쁜 날이 많다. 근로자의 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들이 릴레이로 이어진다.오월에 먼저 생각나는 것은 어버이날이다. 부모님의 숭고한 사랑과 애틋한 헌신이 가슴속에 메아리친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크다. 그리움은 어머니를 연상되는 꽃을 보면서
춘분이 지나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서 마음이 여유롭다. 자연의 시계에 따라 날마다 꽃이 피니 사방천지 꽃이다. 바람은 싱그럽고 햇빛은 따스하다. 춘삼월 호시절이로다.봄이 무르익어가는 시점이라 모든 만물의 역동에 힘이 솟구친다. 산은 서서히 찬란한 햇빛으로 가득차서 넘친다. 잎보다 먼저 꽃피우는 산수유, 벚꽃들의 경이로움을 보며 감탄한다. 지난겨울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꽃을 피워 주어 고맙고 감사하구나.그런데 어찌하랴. 마음 한구석은 공허함이 밀려온다. 허허롭고 쓸쓸하다. 어디가 불안하고 외롭다. 봄을 타나보다. 봄 속에 숨어 버리
봄비가 자주 내린다. 빗소리를 영접한다. 상쾌하고 시원하다. 부드럽고 감미롭다. 빗소리는 아린 정적을 깨우고 촉촉함을 안기어온다. 비는 하늘과 땅의 만남이다. 하늘과 땅의 교우이다. 땅이 하늘을 영접하는 소리에 몸도 마음도 평온하다. 만뢰는 빗소리로 가득하다. 빗소리에 혼재된 마음을 일깨워본다. 한국인의 기상과 정신을 생각해 보며 한국인이란 자부심을 가져본다.한국인의 한(恨)과 정서를 가진 친숙한 꽃이고, 고향의 향수 속에 동심으로 이끄는 ‘할미꽃’이 피었다. 미나리아재비과의 다년초로 노고초(老姑草), 백두옹(白頭翁) 이라고도 한다
따뜻한 화신풍(花信風)이 감미롭다. 꽃바람이 불어온다. 바람결을 따라서 꽃바람의 냄새를 맡았다. 봄의 기운이 파란 하늘빛을 안고 대지를 감싼다. 꽃물결에 바람이 불어온다. 찬바람과 함께 사라졌던 꽃들이 찾아왔다.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버린 무심한 나그네 같은 바람꽃들을 봄바람과 함께 다가오니 세상이 환하다. 바람꽃 중에서 아름다운 요정이며 여왕이라고 극찬하는 ‘남바람꽃’을 만나본다. 학명은 Anemone flaccida F.Schmidt이다. 속명 아네모네(Anemone)는 그리스어로 아네모네스(Anemos)에서 유래했는데 ‘
풍덩풍덩 새봄 기운이 바다를 건너간다. 화신풍(花信風)에 잔잔한 물결이 일렁인다. 따스한 바람은 겨울잠을 깨우고 기지개를 키게 한다. 파란 하늘빛을 안고 대지를 감싼다. 따스한 숨결이 서해의 외로운 섬, 풍도에 안착하여 보금자리를 잡는다.변산바람꽃에게 바턴을 받은 새로운 바람꽃이 피어난다. 비슷비슷 하지만 조금은 다른 ‘풍도바람꽃’이 우아하고 사랑스럽다. 가냘프고 야리야리한 꽃대에 하얀 꽃이 흔들거린다. 차가움이 섞여있는 바람에 가냘프게 흔들린다. 애틋한 한(恨)이 묻어나 보인다. 쓸쓸하고 외로워 보이기도 한다. 허전함과 고독도 가
새봄이 오고 있다. 입춘(立春)이 지나서 봄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바람이였다. 차가운 바람은 부드럽고 따뜻한 바람으로 서서히 변하고 있다. 바람이 인다. 꽃바람이 불어온다. 미미하고 소소한 바람이다. 새의 깃털도 흔들리지 않는 미묘한 바람은 한 줄기의 빛도 같이 왔다. 어디서 불어오는가. 어디인지 찾아보아도 아직 겨울 속에 들어있는 바람을 인지 할 수가 없다. 찹고 세찬 바람과 함께 사라졌던 꽃들을 찾아본다. 바람꽃이라는 예쁜 이름을 소환한다. 바람꽃속은 그리스어 아네모스(Anemos)에서 기인된 것으로 ‘바람의 딸’이라는 뜻을 가졌
차가운 기운이 가득한 숲에 나무의 곡선이 사랑스럽다. 잎이 없는 나무들은 하늘 끝에 매달린 가지마다 섬세한 곡선이 실핏줄처럼 퍼져있다. 작은 바람에도 소란하던 나무들은 고요하고 침묵으로 추위를 감내하고 있다. 차가운 아늑함과 고요함 이라고 할까. 치렁치렁한 잎이 없으니 퇴색되어 힘없는 햇빛이지만 숲 깊숙이 내려왔고, 구석구석까지 비추어 조그만 온기를 내려주고 있다. 잎에 막혔던 햇빛이 저렇게 내려오니 부드럽고 살갑다. 햇빛이 머문 갈색 낙엽과 하얀 눈 사이에 부드러운 흙이 보인다. 뿌리를 품고 겨울을 인내한다. 뿌리는 줄기로 이어지
희망찬 2021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코로나가 사라져 얼굴을 맞대고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마스크를 벗고 지인들과 따뜻한 밥상에서 삶의 위안을 받고 싶다. 막걸리 잔을 기울며 흥얼거리고 싶다. 노래방에서 요즘 유행하는 트로트 노래를 목청 컷 부르고 싶다. 소박한 소원들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연초부터 많은 눈이 내렸다. 눈 속에서 복수초도 피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온다. 꽃 한 송이 피었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지만 새봄의 희망을 쏘았다. 새봄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하얀 눈은 낭만이고 우아한 눈송이가 무언가
겨울의 정점이다. 잉잉 거리던 찬바람이 너울너울 춤을 춘다. 그러나 춤사위는 힘을 잃고 맥없이 쳐져만 간다. 세밑을 향하는 긴 그림자에 태양빛은 따스함을 잃고 산하는 허허롭다. 왜 이리도 바쁘고 힘들었을까. 무엇 때문에 그리도 정신이 없었던가. 먹고 살기가 이리도 어려웠던가. 코로나로 더욱 힘들고 사람들이 두렵다.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힘들어 하는 연유는 무어란 말인가. 그렇다. 시대조류에 편승하여 남들보다 앞서가려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뒤쳐지지 않으려는 나 자신 이였다. 일단 멈추고 욕심을 버렸다. 모든 것을
[뉴스로드] 2020년의 마지막 달이다. 열심히 뛰어왔던 한해를 서서히 마무리 해본다. 코로나로 인하여 가슴 졸이며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냈다.아직도 시간은 있다. 지나온 나날을 모아 새로운 삶의 지표로 삼아 나아가본다. 어디선가 응원의 소리가 들려온다. 청아하고 부드럽고 감미롭다. 그래, 행운의 여신이 오고 있다. 보라색 드레스가 너울거리고 미소가 투영되어 고운자태가 빛나고 있다. 잔잔한 미소 속에 너울지는 꽃망울의 보랏빛 엽서의 자태가 우아하다. 맑은 소리에 청초한 꽃송이가 초롱초롱 빛나고 있다. 청아하고 아름다운 여신의 ‘도라지
애수의 만추다. 정갈한 향기가 그윽하다. 윤기가 흐르는 햅쌀로 지은 따뜻한 밥에 만추의 향기를 비벼 먹고 싶었다. 부추를 넣어서 말이다. 비단처럼 부드러운 청초한 잎이 입맛을 돋운다. 갓 뽑은 가을무를 채 썰고 참기름도 한 숟가락 넣어서 양푼에 쓱쓱 비볐다. 서걱서걱한 무와 부추의 아린 맛이 어우라진 비빔밥에 가슴이 후련하여 시원하여 졌다. 만추의 빛과 정갈한 향기는 이렇게 내 몸의 일부가 되어 새로운 동력이 되었다. 부추를 생각하여본다. 병약한 남편을 위해서 겨울에도 먹을 수 있도록 부뚜막에 심은 채소로 ‘부추’라고 하였다. 소나
가을과 겨울의 경계가 모호한 만추이다. 가을도 아니고 겨울도 아니다. 가을이기에는 춥고 겨울이기엔 따스하다.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들었고 이제는 낙엽이 되어간다. 꽃들이 사그라져 가는 시점이다. 낙엽의 색채가 아른 거리고 다정스럽게 다가온다. 점차 퇴색되어가는 햇빛이 숲에서 부서지고 빛은 보이지 않는다. 만추의 정취를 한껏 머금은 꽃송이에 찬바람이 잉잉거린다. 꽃송이가 경직되고 파르르 떨고 있어 안타깝다. 종(鐘)모양의 통꽃에서 애수를 달래는 종소리 들린다. 부드러운 운율이 슬픔과 아픔을 달래 주는 은은한 소리이다.만추의 애수를 간직
2020년을 맞아 새로운 희망과 꿈에 부풀었다. 묵은해가 가고 새해가 밝으면서 덕담이 오고갔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오” “건강과 행복을 기원 합니다” 새해 인사말이 정겹다. 나를 생각하고 덕담을 보내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나라는 존재를 알게 해주는 것이 아니던가. 나를 인정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를 생각하고 마음을 담았다는 것이 고맙고 감사한 시간 이였다. 복들이 넘쳐나고 모두들 많은 복을 받았다.복은 어디어서 오는가. 그 많은 복은 어디에 있는가. 복(福)은 보일시(示)와 가득할 복(畐)자가 합쳐진 글자라고 한다. 사
갈색 산하는 쓸쓸하고 허전하다. 그러나 아직도 지난 가을이 흔적이 있는 것은 수리취가 가장먼저 눈에 띤다. 화려하지 않은 꽃잎과 가시모양의 열매의 차이가 없고, 거의 그 모습으로 겨울을 맞이한다. 애처로운 자태에서 의젓함이 보인다. 의젓함에서 당당함을 느낀다. 의젓하고 당당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DMZ가 사라져 위풍당당한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정말로 좋겠다. 좋은 일이란 무엇인가. 좋은 일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나에서 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스스로 좋은 일을 만들어가자는 다짐을 하며 ‘수리취’를 바라본다. 우리말 ‘수리’는 크다는
밤은 왔으나 어두움은 오지 않았나보다. 길손처럼 찾아온 밤이지만 편안함이 없다. 아늑한 고요함도 없다. 불빛 때문이다. 휘황찬란한 불빛은 어두움을 밀어냈다. 어두움이 없는 밤, 고뇌에 쌓여있다. 근심, 걱정, 불안초조 등 온갖 상념 때문이리라. 눈을 감아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마음에도 칠흑 같은 어두움이 깔려있다. 희미한 별빛마저 없다.다행히 멀리 희미한 불이 보인다. 가물거리는 불빛을 담은 초롱이였다. 어두울수록 등불의 존재가 커지나 보다. 초롱불에 의지하여 마음을 가다듬고 상념에 젖는다. 마음을 비우자. 생각을 지우자.
찬바람이 불어온다. 잎사귀 사이로 잉잉 거리던 바람이 너울너울 춤을 춘다. 춤사위는 힘을 잃고 맥없이 쳐져만 간다. 이제 화사한 꽃의 계절도 화려한 단풍 계절도 지나갔다. 만추를 넘어 겨울로 들 어 간다. 추위에 떨고 있는 인동과의 ‘인동초’(忍冬草)를 바라본다.반상록활엽의 덩굴성관목으로 중부지방에서는 잎이 떨어지지만 남부지방에서는 잎이 떨어지지 않고 겨울을 난다. 혹독한 겨울을 참고 견디어 낸다고 하여 ‘인동초’라는 하며, ‘인동덩굴’이라고 한다.꽃의 수술이 할아버지 수염 같다고 ‘노옹수’(老翁須), 꽃잎 모양이 해오라기 같다고
만추다. 구름사이 비추는 조각 햇빛을 따라서 온갖 상념을 지워내며 유연자적 걸어본다. 낙엽 사이로 지난 세월이 보이고 아픈 상처도 보인다. 바람은 빈가지에서 수런거리고 모든 색채, 모든 향기, 모든 생기가 사그라져 가고 있다. 힘없는 햇살에 초목들의 몸짓이 구슬프다. 속절없이 시간이 흘러 계절이 바뀌어 찬바람에 꺾기고 서리에 무너져 초라하게 갈색세상이 되었다. 만추의 갈색이지만 아직 형체가 살아있는 메마른 억새가 눈에 들어온다. 가을 산하를 장식하던 ‘억새’는 벼과의 다년초이다. 물억새, 참억새 등이 16종이 서식하고 새, 드렁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