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남자 아동 및 청소년의 비만율은 26.0%로 OECD 평균(25.6%)보다 높다. 인스턴트식품, 혼밥 문화 확산,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고열량 음식 섭취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비만을 질병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사망 위험을 높이는 위험 요인으로 분류한다. 비만이라는 질병은 먹거리와 식습관의 개선을 통해 고칠 수 있다. 현대 과학의 눈으로 봐도 놀라울 만큼 과학적인 우리 조상들의 전통 밥상에 담긴 지혜를 동화 형식으로 구성해 소개한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사진 출처 = 픽사베이

패스트푸드 먹는 일요일

“오늘 점심 메뉴는 뭐로 하지?”

일요일 오후, 텔레비전을 보던 아빠는 엄마와 나를 흘깃 바라보았습니다. 늦게 일어나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했으니 슬슬 배에서 신호가 올 시간이 되었죠.

“두리야, 그 전화번호부 좀 가져와 봐.”

엄마가 말하는 그 전화번호부란 바로 우리 동네의 음식점과 상가 전화번호가 먹음직스러운 음식 사진과 함께 실려 있는 책을 뜻합니다. 나는 얼른 일어나 장식장 서랍 안에 들어 있는 전화번호부를 엄마에게 갖다드립니다.

“피자로 할래? 치킨, 햄버거 세트, 아니면 자장면?”

엄마는 책장을 넘기며 보이는 대로 메뉴를 부릅니다. 하지만 결론은 뻔합니다. 아빠는 치킨, 나는 햄버거와 프렌치프라이, 콜라가 함께 들어 있는 햄버거 세트를 좋아하니까요. 느긋하게 텔레비전을 보며 치킨과 햄버거를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입에 군침이 가득 돕니다.

꼭 일요일이 아니라도 우리 가족은 이렇게 자주 식사를 시켜먹습니다. 특히 우리 엄마는 외식 대찬성론자입니다. 왜냐고요? 우선 외식을 하면 집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보다 비용이 더 적게 든다고 합니다. 그리고 복잡하게 요리를 하거나 설거지를 할 필요가 없으니 시간도 절약됩니다.

아빠처럼 직장에 다니느라 항상 바쁜 엄마에게는 정말 외식이 소중할 수밖에 없죠. 덕분에 저도 패스트푸드를 원 없이 먹을 수 있습니다. 패스트푸드는 주문하면 곧바로 나오잖아요. 그러니 시간 절약을 위해 시켜 먹거나 외식을 자주 하는 우리 가족에게는 아주 적합한 메뉴인 셈이죠.

더구나 아빠 말에 의하면 기름진 고기를 많이 먹어야 힘도 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아빠는 배가 좀 심하게 나온 편이고, 저도 동네 아줌마들로부터 우량아라는 말을 자주 듣는 편입니다.

엄마는 가끔 그런 아빠와 저를 보고 배불뚝이 부자라고 놀리기도 하지만 괜찮습니다. 아빠는 배도 인품이라며, 남자는 배가 좀 나와야 덩치도 크고 당당하게 보인다고 했으니까요.

어쨌든 외식 엄마와 배불뚝이 아빠, 그리고 저는 패스트푸드가 있어 행복하고 화목한 가족입니다. 전화만 하면 언제든지 후다닥 달려오는 구수한 치킨과 먹음직스런 햄버거, 항상 먹어도 맛있는 피자가 바로 우리 가족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일등공신이죠.

그런데 어느 날 우리 가족의 행복에 불안한 조짐을 보이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아빠가 회사에서 받은 정기 건강검진의 결과가 나온 날이었죠. 병원에서 진단한 아빠의 건강 상태는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 고혈압에다 약간의 당뇨증세, 그리고 복부비만으로 인해 여러 성인병의 발병이 우려된다는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거기에 더욱 결정타를 가한 것은 소아 비만을 다룬 텔레비전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소아 비만이란 저처럼 뚱뚱한 어린이들을 일컫는 말이죠. 요즘엔 우리나라도 다른 선진국처럼 소아 비만이 많이 늘어나 사회 문제가 될 정도라고 합니다.

소아 비만이 특히 나쁜 점은 심장에 부담을 주게 되어 호흡 장애가 일어나고, 어린이들의 신체 발육에 심각한 장애를 일으킨다는 거였습니다. 또 지금까지 성인 비만의 합병증으로만 알려져 있던 고혈압, 당뇨병, 동맥경화, 고지혈증 등의 질병이 소아 비만의 어린이들에게도 나타난다는 겁니다.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사진 출처 = 픽사베이

전통 음식이 차려진 사진 한 장

그 프로그램을 본 뒤로부터 아빠가 저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의 다정함은 온데간데없고 뭔가 단호하면서도 굳은 표정이 되어 버렸죠. 더불어 아빠는 참으로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운동을 하자며 밤중에 나를 데리고 학교 운동장을 뛰는가 하면 인터넷과 기사 스크랩북을 뒤적거리며 뭔가 열심히 연구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는 엄마와 저를 불러 모은 뒤 사진 한 장을 불쑥 내밀었습니다.

“바로 이거야. 우리 가족이 건강해질 수 있는 비밀이 여기 들어 있다구.”

아빠가 내민 사진은 정성스럽게 차려진 전통 밥상이었습니다. 오곡밥에 김치와 된장찌개, 나물 등의 반찬이 두리반에 놓여 있었습니다. 두리반이 뭐냐고요? 두리반은 옛날부터 우리 민족이 사용해온 밥상으로서, 여러 사람이 둘러 앉아 먹을 수 있는 크고 둥근 상입니다. 제 이름에다 밥상을 의미하는 ‘반(盤)’자 붙여진 것이라 이렇게 잘 알고 있죠. 어쨌든 짙은 고동색의 두리반에 놓인 하얀 그릇 속의 음식은 참으로 정갈해 보였습니다.

“이 사진이 어떻다는 거예요?”

엄마와 저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도 이런 전통음식을 먹자구. 이제부터 외식과 패스트푸드는 일절 금지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니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일까요. 그렇게 맛있는 패스트푸드를 앞으로 먹을 수 없다니. 저뿐만 아니라 엄마의 얼굴 표정도 심각했습니다. 사진 속의 밥상처럼 매일 음식을 차리려면 엄마가 제일 힘들 테니까요.

“물론 단번에 바꾸기가 힘들다는 건 나도 잘 알아요. 하지만 우리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며칠 동안 고민한 끝에 내가 내린 최선의 결론이니까 이해하도록 해요.”

아빠는 놀란 엄마와 저와는 달리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우선 전통음식을 잘 요리해서 잘 먹기 위해서는 왜 그것이 우리 몸에 좋은지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잘 알지 못하면 실천하는 것이 힘들 테니까요.

그래서 아빠는 우리에게 제안을 하나 했습니다. 이제부터 사진 속의 두리반에 차려진 음식들에 숨겨진 비밀을 가족이 함께 연구하며 찾아내자는 거였죠. 우리 몸이 원하는 먹을거리 속에 어떤 과학이 숨어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좋은 공부라고 했습니다.

이를테면 패스트푸드와 전통음식 간의 과학 한판 대결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 이제 맛있는 음식도 못 먹고, 거기에다 아빠랑 과학 공부까지 함께해야 된다니 정말 큰일 났습니다.

그러나 이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 걸 금방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먹어온 전통음식 속에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와 지혜가 숨어 있는 줄은 미처 몰랐으니까요. 자, 그럼 이제 우리 가족과 함께 전통밥상 속에 숨겨진 과학을 찾아 함께 떠나볼까요?

 

우리 몸과 패스트푸드의 궁합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 이게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겠지?”

“그럼요.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말이죠.”

아빠가 저에게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뻔합니다. 우리 가족의 상대는 지금 패스트푸드이니까 먼저 패스트푸드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는 의미이겠죠. 또한 그와 더불어 우리 몸과 우리의 전통음식에 대해 충분히 알고 싸움에 임해야 패스트푸드와의 한판 대결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뜻이겠죠.

그럼 과연 패스트푸드란 무엇일까요? 패스트(fast, 빠른)와 푸드(food, 음식)가 합쳐진 패스트푸드는 말 그대로 주문하면 곧바로 나온다는 뜻에서 생긴 말입니다. 1960년대부터 미국에서 보급되기 시작한 패스트푸드는 이후 식품산업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간편한 것을 원하는 현대인의 생활 습성에 알맞아 전 세계인들이 즐겨먹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패스트푸드의 역사는 아주 오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유럽이나 중동 사람들은 예로부터 가축을 몰고 옮겨 다니는 유목민이거나 이 도시 저 도시 떠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는 이동성 민족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의 먹을거리는 간편하게 요리할 수 있고, 먹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아야 하며 편리하게 운반할 수 있는 음식이어야 했습니다.

농사를 지으며 한 마을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우리 같은 정착민족과는 전혀 달랐죠. 우리 전통음식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더욱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우리 음식의 재료가 되는 고추장, 간장, 된장 등은 담근 후 발효시키는 데만 해도 몇 개월 이상 걸립니다. 몇 해 동안 오래 묵힐수록 그 맛이 더 뛰어나게 되죠.

그런데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이동성 민족은 그만큼 오래 기다릴 수도 없으며 이동할 때 무거운 고추장 단지를 들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따라서 김치와 고추장 등 오래 묵히는 발효음식과 국ㆍ찌개 등 물기가 많은 음식 대신, 이동성 민족은 되도록 빠르고 간편하게 먹는 음식이 주를 이룰 수밖에 없었겠죠.

 

<필자 약력>

과학 칼럼니스트.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발행하는 인터넷 과학신문 ‘사이언스타임즈’ 등에 정기적으로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저서로 ‘조선왕조실록에 숨어 있는 과학’ ‘조선과학실록’ ‘밥상에 오른 과학’ 등이 있다.

키워드

#전통 #식사
저작권자 © 뉴스로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