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열사 생가
유관순 열사 생가

[뉴스로드] 8월15일 광복절,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에서 해방된 지 올해로 73년을 맞는다. 기자는 15일 오후 2시 천안 병천면의 아우내 장터를 찾았다. 아우내 장터는 유관순 열사가 3·1운동 만세를 외친 역사적인 장소다.

아우내장터는 ‘아우르다(竝)’라는 의미로 ‘내’는 한자로 川을 의미한다. 이름 그대로 마을 앞에는 병천천이 흐르고 있다.  천안 북면 대평리에서 발원해 병천면을 지나 조치원 충북 강외면 미호천과 합류해 금강으로 흐른다.

폭염 탓인지 아우내장터는 인적을 찾기 힘들었다. 지나가는 사람은 물론 문을 연  가게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길을 걷다보니 ‘병천포목상회’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도시에선 보기 힘든 ‘포목’이라는 간판이 정겹게 다가왔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 포목점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우내장터에서 장사를 한지 40년이 됐다는 '병천포목상회'
아우내장터에서 장사를 한지 40년이 됐다는 '병천포목상회'

사장님은 이곳 아우내 장터에서 장사를 한지 40년이 됐다고 했다. 사장님은 “포목점을 하기 전에는 양장점을 했다. 지금은 이불 등 혼수품을 판매하고 있다. 막내 아이 3살 때 포목점을 시작해 이제까지 하고 있다. 애들 공부시키고 결혼도 시켜 고마운 가게다"라고 말했다.

40년이라니, 만만찮은 세월이다. 서울의 궁중족발 사건이 생각났다. 건물주와 분쟁으로 거리로 내몰린 궁중족발집 사장은 지금 감옥에 갔다. 건물주와 임대인의 갈등은 이곳 아우내 장터에서는 없는 듯 보였다. 포목점 사장님은 "나뿐 아니라 여기 아우내 장터에선 50년, 60년 가게를 운영해오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문 닫힌 가게는 많았다. 폭염 떄문일까 궁금해 물어봤다.

사장님은 "내일이 장날이라서 사람이 없고 휴일이라서 문닫은 곳도 많다”며 “아우내 장터는 1일과 6일이 장날이다. 장날에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요즘은 서울에서 어르신들이 지하철 타고 오셔서 병천시장 구경도 하고 순댓국 한 그릇 드시고 가신다. 특히 토요일이 장날인 경우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외지인들이 많이 온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니 활기차고 좋다”고 말했다.

포목점 건너편에 있는 ‘병천 머리방’을 찾았다. 머리방 사장님에게 물어보니 가게를 운영한지 15년 됐단다. 사장님은 “단골들이 주로 오는데 동네 사랑방이다”고 말했다.

유관순 열사가 다녔던 매봉교회 전경
유관순 열사가 다녔던 매봉교회 전경

아우내장터는 유관순 열사의 3·1만세 운동를 빼 놓을 수 없다. 아우내 장터와 1.7km거리에 위치한 탑원리에 있는 유관순 열사 생가를 찾아갔다. 20분 정도 걸어가니 유관순 열사 생가가 나타났다. 생가에서 마을 어르신 한 분을 만났다. 

올해 일흔이라는 이 어르신은 유상헌 옹으로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유상헌 어르신은 “유관순 열사가 나한테는 대고모이시다. 3.1만세 운동 이후 집안 남자들은 전부 징용에 끌려갔다. 핍박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아우내 장터에 대해서는 “조치원과 40리, 천안 20리, 청주 60리이다 보니 예전부터 장날이면 사람들이 엄청났다.그러다 보니 3.1만세 운동을 하기에 적합한 장소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병천이 순댓국으로 유명해지게 된 사연도 설명했다. 그는 “3.1절 전날 동네에서 횃불 전야제 행사를 진행한다. 1970년대 전국 JC회원들이 모여 행사를 진행하다보면 새벽에 끝났다. 당시 추위에 몸을 녹일 국물 음식으로 순댓국을 먹었다. 그러다 보니 입소문을 타게 돼 지금처럼 ‘병천=순대굿’이 된 거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1970년대 전에는 병천에 순댓국 집은 충남,남선,자매 식당 3곳 뿐이었다. 이중 충남 순댓국집이 지금도 영업 중이다”고 덧붙였다. 어르신께서 알려준 원조 순댓국집을 가보니 손님이 줄을 서 있었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73년 전 그날 아우내 장터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칮던 선열의 외침이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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