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고대 이집트 의학 - 신화적 처방

'사자의 서'에 나오는 그림. 고대 이집트인들은 종교적인 의식의 일환으로 죽은 사람의 신체를 방부처리를 통하여 미라(mirra) 작업을 행하곤 했다. 아누비스가 토트 앞에서 죽은 자의 심장 무게를 저울에 달고 있다.
'사자의 서'에 나오는 그림. 고대 이집트인들은 종교적인 의식의 일환으로 죽은 사람의 신체를 방부처리를 통하여 미라(mirra) 작업을 행하곤 했다. 아누비스가 토트 앞에서 죽은 자의 심장 무게를 저울에 달고 있다.

‘미라(mummy)’는 썩지 않게 건조시킨 시체를 말한다. 영원한 생명은 모든 인류가 갈구했던 소망이다. 이집트 파라오와 귀족들은 그들의 시체를 썩지 않게 건조시킴으로써 새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기를 기원했다. 그들은 생전에 이미 무덤, 즉 피라미드를 건조했으며, 죽은 후에 그곳에 매장되었다. 시체를 방부제로 처리하는 기술은 기원전 3400년에 이미 생겨났으며 기원전 10세기경에는 상당한 경지에 올라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헤로도토스는 시체의 방부처리 기술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철 고리를 콧구멍에 걸고 모든 내장은 항문을 통해 꺼냈는데 영혼이 깃든 부위인 심장과 신장은 남겨두었다. 꺼낸 내장은 따로 고급 항아리 속에 담아놓았다. 시체의 안팎을 깨끗이 씻은 후 물과 향료를 바르고 톱밥과 향료로 배안을 채운다. 그런 다음 시체를 소금물에 70일 동안 담갔다가 다시 꺼내 붕대를 감고 나무의 진액을 가득 바른다. 또 다른 방법도 있다.

항문을 통해 콜타르를 주입한 후 봉합하여 새거나 흘러나오지 않도록 했는데, 이 과정을 마치면 역시 70일 동안 소금물에 담가두었다. 시간이 경과한 후 시체 속에 주입한 콜타르를 꺼냈는데 이때가 되면 내장이 모두 용해되어 함께 흘러나왔다. 마지막으로 콜타르에 담가둔 리넨 천으로 시체의 전신을 감싸고 석실에 안장한다.”

그 당시 미라를 만들고 방부제로 시체를 처리하는 기술이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했다. 이를 통해 이집트 의사들이 해부학에 정통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시체 방부처리는 점술가가 하지 않고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맡았다. 물론 이들은 관련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을 따로 익혔다.

미라는 우선 고대 이집트인들이 앓았던 질병, 즉 관절염, 동맥경화, 종양 등을 관찰할 수 있다는 데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최근 일부 서양 의학자들은 5000년 전 미라의 시체에서 AIDS와 같은 병균이 존재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다. 만약 이러한 가정이 입증된다면 AIDS 병균은 유행성 독감처럼 변이를 일으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미라는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여 현미경으로 피부조직의 단면을 관찰해보면 구조가 완벽하게 나타나며 간혹 질병의 흔적이 발견될 때도 있다. 현재까지 결핵성 척추염, 기형 발, 직장 궤양, 류머티즘 관절염, 충치, 유두염, 그리고 다양한 눈병 등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고대 이집트인들이 현대 이집트인들과 비슷한 질병을 앓았던 것을 알 수 있다. 기원전 1160년의 미라인 람세스 5세(Ramses V)의 얼굴에서 천연두를 앓고 난 후의 마마자국이 발견되어 천연두 유행과 관련한 최초의 근거로 알려졌다.

시체 방부처리 기술로 인해 외과의사들은 많은 이득을 보았다. 그러나 이집트 상형문자 가운데 ‘심장’의 모양은 암소의 심장 모양과 유사하고 ‘후두’는 소의 머리와 기관지를 닮았으며 ‘자궁’은 양쪽에 뿔이 난 형태여서 지금의 자궁 모양과 전혀 다르다. 당시의 의사들이 인체의 각종 기관과 위치, 상호관계에 대해 완전히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이와 같은 상형문자가 나왔다는 사실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러나 미라 제작에 대한 노하우가 쌓이고 외과 관련 기기, 도구들이 등장하면서 해부학, 외과학은 발전하기 시작했다. 인류 최초의 해부학 개념도 이때 확립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의사들은 시체 방부처리 과정에서 나무 진액, 석유 에테르, 탄산나트륨, 역청 등 다양한 방부제를 사용할 줄 알게 되었으며 미라를 감싸는 데는 리넨 천이 적합하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리넨 천은 역청에 미리 담가두었다가 사용했다. 일부 삼베 천은 오늘날의 면과 견주어도 붕대 천으로 전혀 손색이 없었다. 이 천을 이용해 시체를 감싸는 기술도 매우 발달해 있었다. 《미라론》의 저자 그랜빌(Granville)은 “이집트 미라는 현대 외과의 붕대 감는 기술을 모조리 보여준다.”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뉴스로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