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 칼에 새긴 길
[문학기행] 칼에 새긴 길
  • 유성문 여행작가
  • 승인 2018.09.07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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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칼의 노래

한 바다에 가을빛 저물었는데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떴구나

가슴에 근심 가득 잠 못 드는 밤 새벽 달 창에 들어 칼을 비추네

-이순신 ‘한산도 야음(閑山島 夜吟)’

통영을 통영답게 하는 건 남망산 공원과 강구안 포구다. 그 자락에, 그 언저리에 유치환이, 윤이상이, 박경리가, 전혁림이 숨 쉰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빚어낸 건 이순신의 칼이다. ⓒ유성문
통영을 통영답게 하는 건 남망산 공원과 강구안 포구다. 그 자락에, 그 언저리에 유치환이, 윤이상이, 박경리가, 전혁림이 숨 쉰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빚어낸 건 이순신의 칼이다. ⓒ유성문

예전에 청마 때문에 가고, 윤이상 때문에 가고, 박경리 때문에 가던 통영을 이젠 김훈 때문에 간다. 2000년 가을, 김훈은 초야로 돌아갔다. 그는 정의로운 자들의 세상과 작별하였다. 그는 자신 당대의 어떤 가치도 긍정할 수 없었다. 그는 묻는다. 제군들은 희망의 힘으로 살아있는가. 그대들과 나누어 가질 희망이나 믿음이 나에게는 없다. 그러므로 그대들과 나는 영원한 남으로서 서로 복되다. 나는 나 자신의 절박한 오류들과 더불어 혼자서 살 것이다.

통영(통제영)에서, 아니 조선의 바다에서 이순신 역시 혼자였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통제영의 전설은 이제 마리나리조트쯤에 눌러앉아버렸는가. 일자진(一字陣)의 바다는 가뭇없이 해상유람(海上遊覽)으로나 출렁이고 있으니. ⓒ유성문
통제영의 전설은 이제 마리나리조트쯤에 눌러앉아버렸는가. 일자진(一字陣)의 바다는 가뭇없이 해상유람(海上遊覽)으로나 출렁이고 있으니. ⓒ유성문

통영을 통영으로 만든 건 이순신이다. 그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서 전라도와 경상도 앞바다를 누비고 다니며 적을 무찔렀다. 특히 한산도 앞바다에서 벌인 싸움에서 왜군의 기세를 크게 꺾는 놀라운 전공을 거두자, 조정에서는 일찍이 수군의 편제에도 없던 경상도·전라도·충청도의 수군을 두루 통솔할 수 있는 삼도수군통제사 자리를 만들어 그로 하여금 맡도록 하고, 그 본영인 통제영을 한산도에 두었다.

통제영에는 부속기관으로 12공방이 있었는데, 이들에 의해 호방한 풍류와 뛰어난 공예가 어우러지는 독특한 통제영문화가 형성되었다. 통영에서 갓이나 나전칠기와 같은 그토록 우수한 공예가 발달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통제영문화 덕분이었다. 나아가 통영이 오늘날까지 무수한 예술가들을 배출할 수 있었던 것 또한 그러한 바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리라.

통영에는 당연히 이순신과 그가 벌인 싸움과 관련한 유적들이 곳곳에 산재되어 있다. 최초의 통제영이 있던 한산도의 제승당은 말할 것도 없고, 착량묘, 세병관, 충렬사들이 그런 곳들이다. 착량묘는 1598년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이 죽자 그 이듬해 이 지방 주민들이 그 충절을 잊지 못하여 지었다. 세병관은 한산도에서 통제영이 옮겨온 이듬해인 1603년 제6대 통제사 이경준이 이순신의 위업을 기림과 함께 통제영의 본영 건물로 삼으려고 세웠다. 충렬사는 제7대 통제사로 온 이운용이 현종의 시킴을 받아 모신 이순신의 사당이다.

미륵도 달아공원에서 바라본 한려해상(閑麗海上). 바다는 해지기 전 유독 코발트빛으로 하염없이 물든다. ⓒ유성문
미륵도 달아공원에서 바라본 한려해상(閑麗海上). 바다는 해지기 전 유독 코발트빛으로 하염없이 물든다. ⓒ유성문

 

통영에 딸린 섬 미륵도는 통영대교를 통해서 건너갈 수도 있지만, 해저를 통해서도 들어갈 수 있다. 통영반도와 미륵도 사이의 좁은 물목인 착량은 임진왜란 당시 쫓기던 왜선들이 물길로 착각하고 들어왔다가 빠져나갈 수 없게 되자, 급히 땅을 파고 수로를 뚫어 도망쳤다는 곳이다. 그때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죽은 왜군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하여 ‘송장목’이라고도 불린다. 이후 일제는 이곳에 운하를 파서 물길을 넓히고 그 밑에 터널을 뚫었다. 굳이 다리를 놓지 않고 터널을 뚫은 것은 왜군들이 죽은 곳 위로 조선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2005년 문화재청은 이 해저터널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하면서 ‘통영 태합굴(太閤掘) 해저터널’이란 일제 때 명칭을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썼다가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태합’이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존칭이라는 지적 때문이었다. 부랴부랴 문화재청장이 사죄하고 그냥 ‘통영 해저터널’로 고쳐 부르기는 했으나,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야 어찌 비단 이뿐이랴.

미륵도의 달아공원에 서면 한려해상의 물빛이 화려하다. 그러나 그뿐. 그 바다 위로 해가 떨어지면 바다는 이내 핏빛 노을로 물들어버린다. 하면 그 바다 위에 떠있던 배조차 길을 잃고 헤맨다. 불현듯 이순신의 칼에 새겨진 길이 떠오른다. 김훈이 전하는 바 이순신의 검명(劍名)은 이러하다.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통영 한산대첩제에서 재연된 학익진(鶴翼陣). ‘날개는 멀리서부터 적을 조인다’(칼의 노래) 했거늘, 적은 너무도 아득하여 보이지 않는다. ⓒ유성문
통영 한산대첩제에서 재연된 학익진(鶴翼陣). ‘날개는 멀리서부터 적을 조인다’(칼의 노래) 했거늘, 적은 너무도 아득하여 보이지 않는다. ⓒ유성문

칼은 그렇게 노래하건만 나 역시 이제는 나누어가질 희망이나 믿음이 없다. 김훈이 이순신의 칼을 바라보았을 때, 칼은 그에게 말해주었다. 사랑은 불가능에 대한 사랑일 뿐이라고. 영웅이 아닌 그는 쓸쓸해서 속으로 울었다. 그래서 2001년 봄에 펴낸 그의 소설 <칼의 노래>는 그 칼의 전언에 대한 그의 가난한 응답이었다.

사랑이여, 아득한 적이여. 너의 모든 생명의 함대는 바람 불고 물결 높은 날 내 마지막 바다 노량으로 오라. 오라. 내 거기서 한줄기 일자진(一字陣)으로 적을 맞으리.

나는 아무래도 노량의 마지막 바다로 가야 할 모양이다.

 

<필자 약력>

-여행작가

-편집회사 투레 대표

-한국기록문화연구협동조합 이사

-<문향을 따라가다>(어문각)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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