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고대 이집트 의학 - 신화적 처방

미라를 싸는 천에 새긴 상형문자(기원전 300년경) 한자의 기원이 된 한자는 갑골문에 새겼으나 고대 이집트인들은 석주나 파피루스에 남겼다.
미라를 싸는 천에 새긴 상형문자(기원전 300년경) 한자의 기원이 된 한자는 갑골문에 새겼으나 고대 이집트인들은 석주나 파피루스에 남겼다.

파피루스(papyrus)는 나일 강 유역에 특별히 많이 분포하는 사초과의 식물로 줄기가 넓어 얇게 자른 후 편평하게 눌러서 햇빛에 말리면 종이 대신 사용할 수 있다. 파피루스로 만든 책은 이집트 약학의 기반을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의사는 자신의 경험을 파피루스에 적어 의학의 전통을 확립했던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다른 문화지식은 단명하는 운명을 맞았지만 의학지식만은 파피루스를 통해 보전되었다.

19세기 말 게오르크 에버스(George Ebers)와 에드윈 스미스(Edwin Smith)가 의학지식이 적힌 파피루스를 발견하기 전까지 이집트의 의학지식은 호메로스, 헤로도토스, 히포크라테스, 플리니우스(Plinius) 등 주로 그리스, 로마인의 기록에 의존했다.

1873년 에버스는 이집트의 수도 테베 룩소르 지역에서 파피루스를 발견했다. 이때 발견된 파피루스는 기원전 1553~1550년에 작성된 것으로 기원전 3300~2360년까지 고대 제국시대의 의학논문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는 이집트 제8왕조 시대로, 그 전대 왕조인 쿠푸(Khufu), 카프레(Khafre), 멘카우레(Menkaure) 등 세 개의 피라미드가 이미 지어진 상태였다. 이 파피루스에는 악어에 발가락을 물렸을 때 치료하는 방법 등 총 700여 종의 병에 대한 치료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 변비 등 위장과 관련된 병에 대한 설명이 20페이지에 달한다. 변비에는 식용유와 맥주를 혼합해서 복용하라고 적혀 있는데 이 방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된다.

파피루스에 기록된 처방전 가운데 일부는 이집트의 의성(醫聖) 임호텝(Imhotep)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임호텝은 이집트 제3왕조 시대 인물로 이집트인들은 아직도 그를 매우 신성시한다. 이에 비해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와 대등하게 보고 있다. 에버스가 파피루스를 발견한 후 대여섯 개의 파피루스가 더 발견되었으며, 모두 발견한 인물의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파피루스가 발견되자 그 안에 고스란히 담긴 이집트의 외과 의술도 세상에 윤곽을 드러냈다.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 파라오 시대의 외과의사는 머리, 코, 턱, 귀, 입술, 후두, 목, 척추, 가슴 등 신체 모든 부위를 치료했을 뿐만 아니라 해부, 생리, 병리 등의 영역과 관련하여 근육골격, 심장, 대뇌의 기능 등에 대해 초보적인 지식을 숙지하고 있었다.

외과 분야에서는 고름 덩어리를 제거하는 절개 수술을 비롯해 불로 상처 부위를 지지는 방법, 흔들리는 치아 고정, 골절 부위에 부목 대기, 고름과 염증 처리, 동물에게 물린 상처, 타박상 등을 치료하는 방법 등이 기록되어 있다. 약재로는 기침 멈추는 약, 흡입하는 약, 향기를 쐬는 약, 좌약, 관장약 등이 소개되었으며 안과 수술과 관련된 기록도 적혀 있다.

특히 집과 신체를 청결하게 하는 위생 관련 규정도 볼 수 있는데 이 규정에 소개된 약재는 약초, 광물질, 분비물, 동물 등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다. 동물성 약재로는 소, 박쥐, 당나귀, 쥐, 코끼리, 악어, 사자, 낙타, 늑대, 대머리 독수리 등이 있으며 사람의 타액, 소변, 담즙, 배설물, 그리고 곤충과 뱀도 모두 약재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약재를 혼합하여 구강을 헹구는 약, 연고, 코로 냄새를 흡입하는 약, 완화제, 환약, 흡입약, 향기약, 설사약 등을 조제했으며 아편과 독초 등도 포함되었다.

이밖에 주문, 마술 등 미신적 색채가 강한 방법들과 문진(問診), 촉진(觸診), 시진(視診), 청진(聽診), 그리고 환자의 움직이는 모양 등을 살펴 환자의 상태를 진단하는 방법도 소개했다. 예컨대 귀는 청각기관인 동시에 호흡기관으로 여겨서 사람이 살아있을 때 숨이 오른쪽 귀로 들어가지만 죽으면 숨이 왼쪽 귀로 들어간다고 보았다.

당시 이집트인들은 심장과 맥박의 관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어서 손가락을 정수리, 손, 윗배, 팔뚝, 발 위에 대고 심장 박동을 느끼곤 했다. 치료에 사용된 약재는 총 700여 종에 이르며 처방전은 1000여 건에 육박한다. 이 가운데는 “혈관에 생긴 종양이 돌처럼 딱딱하게 만져질 때 수술로 제거하고 수술 부위는 불로 지져 과다출혈을 막는다.”는 매우 현대적인 처방도 있다. 의사는 환자의 맥을 짚고 신체를 살펴본 후 견갑골과 흉부에 귀를 대고 흉강에서 나는 소리를 들어보기도 했다.

자신이 시행한 치료의 효과와 간략한 설명을 덧붙여 놓은 의사도 있었는데 환자의 병세가 호전되면 “나는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치료효과가 불투명하면 “다른 방법이 없다.”는 초조함을, 그리고 병세가 악화되면 “환자를 살릴 방법이 없다.”는 절망감을 기록했다.

1862년 미국의 고고학자 에드윈 스미스에 의해 발견된 ‘스미스 파피루스’는 기원전 1700년경에 완성된 것으로 ‘세계 최초의 외과 교과서’로 불린다. 이 파피루스에는 각종 난치병과 그에 대한 치료방법이 체계적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48종의 외상을 분석하여 진찰, 진단, 의사가 직접 치료를 실시할지 여부, 치료 과정 등의 순서에 따라 기록되어 있다.

일례로 복통을 호소하는 한 여성 환자를 진단한 결과 음문(陰門)에 문제가 생겨 월경을 할 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의사는 환자에게, 혈액이 막혀 있으니 혈지와 달콤한 맥주를 섞어 나흘 동안 복용하도록 하는 한편 안약연고와 유향(乳香)을 섞은 연고를 음부에 바르도록 했다. ‘스미스 파피루스’에는 종교 의식과 주문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최소화되어 있다. 의학은 이미 고위 성직자들의 손을 떠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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