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음식남녀' 스틸컷.
영화 '음식남녀' 스틸컷.

밥상에서 가장 중요한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밥’입니다. 주식인 밥을 먹기 위해 여러 가지 반찬들이 곁들여지는 거죠. 그러나 아무리 ‘밥이 보약’이라고 해도 딱 한 가지 단점이 있습니다. 바로 맛이 없다는 겁니다.

밥이 좋은 줄은 알고 있지만 밋밋한 그 맛이 싫어서 저처럼 밥을 먹기 싫어하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밥보다 더 맛있는 빵이나 라면, 햄버거에 눈이 돌아갈 수밖에요.

빵과 라면, 햄버거……, 그러고 보니 이것들은 모두 밀가루로 만든 음식이네요. 자, 그럼 이제 아빠가 들려주는 쌀과 밀의 과학 한판 대결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밥이 맛이 없다니 천만의 말씀! 그건 네가 아마 밥알을 오래 씹지 않고 삼켜서 그럴 거야. 밥은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나. 아주 오랫동안 씹다보면 단맛과 더불어 고소한 맛까지 느낄 수 있지.”

아빠는 제가 보는 앞에서 밥을 한 숟가락 가득 입안에 넣습니다. 저도 아빠를 따라 아무 반찬 없이 밥만 넣고 입을 오물거리며 씹어 보았습니다. 자꾸 자꾸 씹으니 정말 아빠 말처럼 단맛이 느껴지는 게 아니겠어요. 구수한 밥 냄새와 함께 입안에 감도는 단맛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사실 밥을 오래 씹어서 먹으라고 하는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오래 씹을수록 밥알이 잘게 부서져 소화가 잘 됩니다. 둘째, 오래 씹으면 침이 많이 나오게 됩니다. 침은 가장 좋은 천연 소화제로서, 특히 밥과 같은 전분을 분해시키는 능력이 아주 뛰어납니다. 또 세균을 없애주는 작용을 하고 치아를 단단하게 해주는 역할도 하죠. 거기에다가 밥을 오래 씹어 먹으면 소식을 할 수 있습니다. 소식이란 음식을 적게 먹는 습관을 일컫는 말로서, 건강에 아주 좋습니다.

하지만 밥이 좋다고 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에 대해 아빠는 일본 도쿄 근처에 있는 ‘유즈리하라’라는 마을에서 일어난 일을 들려주었습니다.

유즈리하라는 그루지아의 코카스 마을, 파키스탄의 훈자 마을, 중국의 위그루 마을, 스페인의 루르드 마을, 남미의 빌카밤바 마을과 함께 세계 6대 장수촌으로 꼽히는 유명한 장수마을입니다. 그런데 이 마을에서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70~80세 노인들은 논밭에서 건강하게 일을 하는 데 반해 40~50대 계층은 갖가지 질병에 시달리게 된 거죠. 따라서 늙은 부모들이 젊은 자식들의 장례식을 치러야 하는 일이 많아질 정도로 전통적인 장수 마을로서의 명성을 잃어가게 되었습니다.

과연 그 원인이 어디에 있었을까요. 해답은 바로 식생활의 변화에 숨어 있었습니다. 1950년대 이후 산골마을인 유즈리하라에도 고속도로가 뚫리고 산업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젊은 세대들은 자연히 빵과 고기, 우유, 가공식품 같은 서구식 식품을 즐겨 먹게 되었습니다. 잡곡밥과 제철에 나는 채소와 산나물 등 장수촌의 전통음식을 멀리 한 거죠.

즉, 옛날 방식의 초라한 밥상을 지켜온 노인들은 건강을 유지한 반면 풍부한 서양식 식생활에 젖어버린 젊은이들은 나이가 들면서 병에 걸린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몸이 건강해지려면 영양분이 많은 음식을 많이 먹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유즈리하라 마을의 사례는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잘 가르쳐 주었습니다.

과학 한판 대결! 쌀 vs 밀가루

우리 조상들이 예로부터 귀하게 여겨온 쌀이 더 좋을까요 아니면 서양인들이 많이 먹는 밀가루가 몸에 더 좋을까요. 196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서는 국민들에게 분식을 장려하면서 쌀보다 밀가루에 더 영양분이 많다고 홍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과학실험 결과 그것은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습니다.

일본 도쿄해양대학에서는 실험용 쥐들에게 밀가루와 쌀가루로 만든 사료를 각각 먹인 후 어느 그룹의 쥐들이 체력에서 뛰어난지 알아보는 실험을 했습니다. 쥐의 꼬리에 추를 미달아 물속에서 누가 더 오래 헤엄칠 수 있는지 비교한 것이죠.

그러자 밀가루 사료를 먹은 쥐들은 물에서 약 200초 정도를 버틴 데 비해 쌀가루 사료를 먹은 쥐들은 그 두 배인 400초 정도를 헤엄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빵을 먹는 것보다 밥을 먹으면 훨씬 더 체력과 지구력에서 앞설 수 있다는 거죠.

또한 고기를 먹을 때도 밀가루 음식보다 밥과 함께 먹으면 훨씬 좋습니다. 이 역시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그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한 그룹의 쥐들에게는 기름을 먹인 뒤 밀가루를 먹이고, 또 다른 그룹의 쥐들에게는 기름을 먹인 뒤 쌀을 각각 먹였습니다. 3시간 후 각 그룹의 쥐들에 대해 중성지방 농도를 측정한 결과, 밀가루를 먹인 쥐에 비해 쌀을 먹인 쥐의 중성지방 수치가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밀가루보다 쌀이 지방의 흡수를 더욱 효과적으로 차단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기름기가 많은 고기나 반찬을 먹을 때는 빵보다 밥과 함께 먹는 것이 지방 섭취를 줄일 수 있습니다. 쓸데없는 지방의 흡수를 막아주니까 그만큼 비만의 위험이 줄어드는 거죠.

자, 이만하면 갈비집에서 고기를 먹을 때 국수와 밥 중 어느 걸 시켜 먹어야 몸에 더 좋은지 알게 되었나요?

여기서 잠깐! 쉬어가는 의미에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퀴즈 하나를 내보겠습니다. 쌀 한 톨에 글자를 쓴다면 과연 몇 자나 새겨 넣을 수 있을까요? 참고로 설명하면 우리나라 타악기 연주자로서 이름을 떨쳤던 김대환이라는 분이 이 분야의 세계 기네스 기록을 세운 적이 있습니다.

2자? 아니면 세계 기록이라니 10자 정도? 제가 찾아본 바에 의하면 정답은 놀랍게도 283자입니다. 가로 4.5㎜, 세로 2㎜, 두께 1.5㎜에 불과한 이 작은 쌀 한 톨에 김대환 선생은 불교의 반야심경 전문과 연도, 자기 이름 3자까지 모두 283자의 글자를 새겨 넣었다고 합니다. 정말 상상하기 힘든 놀라운 일이죠.

알고 보면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쌀 한 톨에는 이와 같이 아주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건 쌀을 뜻하는 한자 ‘미(米)’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벼 이삭을 본떠 만들어진 상형문자 ‘米’의 자획을 풀어서 나누어보면 가운데의 '十'과 위아래로 ‘八’자가 2개 붙여진 모양이 됩니다.

즉, 八十八이 되는 거죠. 이는 농부가 모를 심어 추수를 해 한 톨의 쌀을 얻기까지 무려 88번의 손길을 거쳐야 한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88세가 된 어르신의 나이를 다른 말로 미수(米壽)라고 하기도 합니다. 88을 나타내는 ‘米’자를 넣어 축복의 뜻으로 일컫는 말이죠.

이런 쌀의 깊은 뜻이 널리 알려진 탓인지 요즘은 서양에서도 쌀을 먹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에서는 매년 쌀 소비량이 50%씩 증가하는가 하면 미국에서도 최근 쌀 소비량이 2배로 늘어났습니다. 이제 흰 쌀밥을 숟가락으로 먹는 풍경을 세계 어디서든지 흔히 볼 수 있게 된 거죠.

“두리는 쌀을 찾는 서양인들이 왜 그처럼 늘어난다고 생각하니?”

잠자코 제 말을 듣고 있는 아빠가 마침내 질문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그건 쌀이 영양 면에서 건강에 좋다는 걸 그들도 알았기 때문이죠.”

앞의 과학 실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쌀은 지구력을 높여주고 지방의 흡수를 막아주는 역할뿐만 아니라 소화가 잘 되며 변비와 당뇨병을 예방하는 등 좋은 점이 아주 많습니다. 또한 영양적인 면에서도 쌀은 탄수화물과 단백질의 균형을 이루어주는 최고의 음식 재료라고 하죠.

이런 장점으로 인해 서구인들도 이제는 쌀에 주목하고 있는 겁니다. 제가 이렇게 술술 말을 잘 하는 걸 보니 역시 자료를 찾아보길 잘한 모양입니다.

“아주 정확하게 설명했어. 그럼 서구에서는 쌀 소비가 늘어나는데 우리나라는 어떨까?”

아빠는 1970년대 한국인의 한 해 쌀 소비량이 1인당 130㎏ 이상이었으나 점차 감소해 2006년에는 78.8㎏에 불과하다는 통계 자료를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식탁에서 밥이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추세인 것입니다. 1년에 78㎏이면 하루에 두 공기가 채 안 되는 밥을 먹고 있는 셈이죠.

대신 라면 같은 인스턴트식품과 빵, 패스트푸드 등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 밀가루 소비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원래 서구의 주식인 밀은 알곡으로 그냥 먹기가 어려운 거친 곡물입니다. 따라서 밀가루로 만들어 빵으로 먹는데, 쌀과 달리 맛이 없으므로 거기에 달걀이나 설탕을 넣어서 먹게 된 거죠.

한편 밀에는 글루텐이라는 단백질이 있습니다. 밀가루 반죽을 만들어 발효시키면 부풀어 오르는 것은 글루텐 때문이죠. 빵을 만드는 데 밀이 가장 좋은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글루텐은 일부 사람들에게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의사들이 아토피나 알레르기 비염이 심한 사람들에게 밀가루 음식을 피하라고 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 쌀은 알레르기 반응이 가장 적은 식품입니다. 어느 조사결과에 의하면 우유나 달걀, 돼지고기, 밀가루 등에 대해서는 각각 10%가 넘는 사람들이 알레르기를 보인 반면 쌀은 그 수가 2.7%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서구에서는 알레르기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쌀을 권하고 있습니다.

또한 쌀은 밀이나 감자 등의 다른 곡류보다 뚱뚱보로 만드는 비율이 낮은 식품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듀크대학에서는 남녀 545명에게 밥을 주로 먹는 쌀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실시한 적이 있답니다. 그 결과 여성은 평균 8.6㎏, 남성은 평균 13.6㎏의 체중 감량에 성공했습니다. 지금보다 밥을 훨씬 많이 먹은 옛날에 오히려 뚱뚱보가 적었던 이유를 이제 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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