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유인개발계획이 발표한 2018년 성불평등지수(GII)에서 지난해에 이어 10위를 차지했다. 사진=UNDP 홈페이지 갈무리.
한국이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한 2018년 성불평등지수(GII)에서 지난해에 이어 10위를 차지했다. 사진=UNDP 홈페이지 갈무리.

[뉴스로드] 유엔개발계획(UNDP)의 2018년 성불평등지수(Gender Inequality Index) 조사에서 한국이 189개국 중 10위를 기록한 것을 두고 누리꾼들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남성 누리꾼들은 이번 결과가 성차별의 심각성을 과장해온 국내 여성운동에 대한 반박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여성 누리꾼들은 GII 10위가 성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GII는 유엔개발계획이 매년 전 세계 189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하는 자료로, 각 나라에서 여성의 삶의 질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2018년 발표에서는 스위스가 1위를 차지했고, 한국은 지난해에 이어 아시아 최고 순위인 10위를 차지했다. 상위권은 대체로 서·북유럽 국가들이 차지했으며 일본은 22위, 미국은 41위로 한국보다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

이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2017년 성격차지수(GGI)에서 한국이 144개국 중 118위를 기록한 것과 상반되는 결과다. 이 때문에 어떤 지표를 더 신뢰해야 하는지를 두고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서는 다시 성별 간 논쟁이 점화되는 분위기다.

◇ 한국 GII 10위, 왜?

하지만 GII의 산출 방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논쟁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UNDP는 모성사망률(신생아 10만명당 사망한 산모의 수), 청소년 출산율(신생아 1000명 당 15~19세 산모의 수), 국회에서 여성 의원이 차지하는 비율, 중등 교육 이상 받은 여성인구 비율,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등을 종합해 GII를 산출한다. 이 때문에 GII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사회경제적 격차를 측정하는 GGI와 달리, 여성의 삶의 질에 대한 절대적 지표에 가깝다. 

실제로 GII에서 한국이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한 것은 청소년 출산율(1.6, 전체 1위)이다. 낮은 청소년 출산율은 미성년자 여성에 대한 사회적 보호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보수적인 성문화로 인해 청소년의 성관계가 죄악시 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사회적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해당 지표를 성평등의 척도로 볼 수 없는 이유다.

또한 GII를 측정하기 위해 집계되는 다른 지표에서 한국은 전체 10위에 걸맞지 않은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 UNDP는 기대 수명, 실질 소득, 교육 수준 등을 종합 평가하는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 Index) 순위에 따라 상위 59개국을 초상위그룹으로 분류하는데, 이 그룹에서 한국의 여성의원 비율(17.0%)은 45위에 그쳤다. 중등교육을 받은 여성 인구 비율은 27위,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34위, 모성사망률은 38위였다. 결국 한국이 성불평등지수 10위를 기록한 것은 낮은 청소년 출산율의 영향이 크며, 여타 지표에서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

◇ GDI로 본 한국의 성차별은 어느 정도?

그렇다면 UNDP에서는 GGI처럼 성별 격차를 측정하는 지표는 산출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다. UNDP는 매년 GII와함께 인간개발지수(HDI), 성평등지수(Gender Development Index)를 발표하고 있다. 이중 GDI는 기대수명과 실질소득, 교육 기간을 종합해 산출하는 HDI를 기반으로 한 지표다. 각국의 여성 HDI를 계산한 뒤 이를 남성 HDI로 나눠 남녀 간 삶의 질의 차이를 측정한다.

UNDP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한국의 GDI는 0.932로 189개국(미집계 25개국) 중 109위다. 한국은 HDI 분류 기준인 초상위·상위·중위·하위 그룹에서는 초상위그룹에 속했지만, GDI 기준으로는 세 번째인 중위 그룹에 속한다. 

물론 GDI완벽하게 신뢰하기는 어렵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내전 중인 국가의 경우 젊은 남성들이 다수 사망해 남성의 평균 기대수명이 낮아지고 여성이 가계를 짊어지면서 GDI가 1.0을 상회할 수도 있다. 즉, 여성의 삶의 질이 낮은 국가라도 성별 격차가 작으면 GDI가 높게 나올 수 있다는 것. 실제로 GDI 순위에서 상위권에 위치한 국가 중에는 한국보다 여성이 살기 좋다고 보기 어려운 나라도 있다. GDI 1.0 이상인 국가 중에는 남성의 기대수명이 상당히 낮거나, 평균 교육기간이 전반적으로 짧은 국가들이 대다수다. 

하지만 소득의 경우는 좀 더 정확한 판별이 가능하다. GDI 산출을 위해 집계된 남녀 실질소득을 비교해보면 한국의 남녀실질소득비는 45.8%로 189개국(미집계 11개국) 중 147위에 해당한다. 남녀실질소득비가 50% 이하인 국가들은 대체로 여성의 경제활동이 극도로 제한된 이슬람권 국가들이다. HDI 초상위그룹 59개국으로 한정해서 비교해봐도 한국보다 여성의 남성 대비 소득이 낮은 국가는 카타르, 쿠웨이트, 바레인,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등 6개국뿐이다.

◇ 여성이 살기 좋은 나라? 의미는 두 가지.

결국 이번 GII 10위 논쟁은 지표가 가지는 구체적인 의미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일어난 해프닝에 가깝다. GII를 이유로 한국을 성평등국가라고 치켜세우는 것도, GGI를 이유로 한국을 여성이 살 수 없는 국가로 비하하는 것 모두 지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오독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의료·치안 등의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의 여성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분명 다른 국가에 비해 높은 수준이며, 이는 GII 10위라는 높은 순위로 나타난다. 하지만 여성의 정치·경제적 참여에 있어서 한국은 선진국이라는 위치에 걸맞지 않게 뒤떨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며, 이 또한 GDI의 낮은 순위로 나타난다. 

최근 여성들이 계속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결국 나아진 삶의 수준에 비해 좁혀지지 않는 성별 격차를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의 2018년 GII 순위와 GDI 순위를 자의적으로 끌어다 일방적인 주장을 강화하는데 쓰기 보다는, 두 순위가 보여주는 커다란 격차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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