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 고운 꽃, 뭉게구름
[문학기행] 고운 꽃, 뭉게구름
  • 유성문 여행작가
  • 승인 2018.09.19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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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권정생동화나라

“내가 거름이 되어 별처럼 고운 꽃이 피어난다면 온몸을 녹여 네 살이 될게.” -권정생 <강아지똥> 중에서

권정생 선생이 살던 집. 주인이 떠난 지 10년이 다 되었지만 마당 수돗가에 놓인 플라스틱 세숫대야며 섬돌 옆에 가지런히 세워진 지팡이며 금방이라도 누군가 방문을 열고 나올 것만 같다. 마분지에 손으로 눌러 써 방문 위에 붙여놓은 종이문패도 여전히 생생하다. ⓒ유성문
권정생 선생이 살던 집. 주인이 떠난 지 10년이 다 되었지만 마당 수돗가에 놓인 플라스틱 세숫대야며 섬돌 옆에 가지런히 세워진 지팡이며 금방이라도 누군가 방문을 열고 나올 것만 같다. 마분지에 손으로 눌러 써 방문 위에 붙여놓은 종이문패도 여전히 생생하다. ⓒ유성문

<강아지똥>, <몽실언니>의 작가 권정생(1937~2007)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평생을 가난과 병고 속에 살면서도 결코 절망하지 않았던 그는 이 땅의 아이들 가슴에 따뜻한 위로와 희망을 남기고 하늘나라로 돌아갔다. 경북 안동시 일직면의 그가 살던 집과 ‘권정생동화나라’를 찾아가는 길은 슬픔과, 그 슬픔을 넘어서는 어떤 마음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그가 종지기 노릇을 했던 일직교회의 종을 울리면 삶보다 마음이 더 가난한 우리에게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동화가 왜 그렇게 어둡냐고요? 그게 진실이기에, 아이들에게 감추는 것만이 대수는 아니지요. 좋은 글은 읽고 나면 불편한 느낌이 듭니다.”

중앙고속도로 남안동톨게이트를 빠져나오면 일직면 조탑리다. 통일신라시대에 쌓은 5층전탑(보물 제57호)이 있어 붙여진 이름인데, 정작 그 탑은 현재 몇 번씩 공사기간을 어겨가며 보수공사 중이라 살펴보기 어렵다. 그 맞은편 빌뱅이언덕 밑에 권정생 선생이 살던 집이 있다. 붉은 슬레이트 지붕의 8평짜리 흙집. 울도 담도 없으니 대문이 있을 리 없다. 옹색한 방 두 개에 따로 낸 화장실이 전부다.

권정생 선생이 살던 집 방안에는 앉은뱅이책상에 영정사진과 향이 올려져 있었다. 아마도 그를 못 잊는 추모객들이 다녀간 모양인데, 꽃들은 시들고 향은 사위었다. 방명록을 들쳐보니 부산 사는 최우석 어린이가 또박또박 이렇게 적어놓았다. “책 열심히 읽고 성공해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바둑기사가 되게 해주세요.” ⓒ유성문
권정생 선생이 살던 집 방안에는 앉은뱅이책상에 영정사진과 향이 올려져 있었다. 아마도 그를 못 잊는 추모객들이 다녀간 모양인데, 꽃들은 시들고 향은 사위었다. 방명록을 들쳐보니 부산 사는 최우석 어린이가 또박또박 이렇게 적어놓았다. “책 열심히 읽고 성공해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바둑기사가 되게 해주세요.” ⓒ유성문

일본에서 태어나서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귀국하여 1947년 12월, 이곳 조탑리에 정착했다. 1968년에는 일직교회 문간방에서 종지기로 살았고, 그곳에서 <강아지똥>과 <몽실언니>를 썼다. <몽실언니> 인세를 받은 돈에다 조금 더 보태 이 집을 지었다. 마을 청년들이 집터를 다듬고 벽돌을 쌓고 슬레이트 지붕을 덮어주었다. 선생은 1983년 가을에 이 집으로 이사를 와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살았다. 사는 동안 마당의 풀도 함부로 베지 않고, 자연 그대로 피고 지는 온갖 꽃들과 함께 살았다. 선생이 이 집에서 가장 좋아한 건 저녁시간이었다. 해거름이면 집 뒤 빌뱅이언덕에 올라 노을 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권정생 선생 살던 집 표지판 중에서

하루 글을 쓰면 이틀은 누워 있어야 하는 아픈 몸이었지만 선생은 이곳 허름한 방에서 마지막까지 쉼 없이 글을 썼다. 통장에 점점 돈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스스로 가난하게 살았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는 선뜻 돈을 내놓아도 자신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생활비와 원고지를 사는 것 외에는 쓰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은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는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며 통장에 남은 돈을 ‘북쪽 굶주린 아이들’에게 보내줄 것을 유언했다.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주십시오.”

권정생동화나라 뜨락의 강아지똥과 민들레. 태어나면서부터 천대받은 강아지똥은 온몸에 비를 맞고 땅속으로 스며들어가 겨울을 나면서,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민들레꽃으로 피어난다. ⓒ유성문
권정생동화나라 뜨락의 강아지똥과 민들레. 태어나면서부터 천대받은 강아지똥은 온몸에 비를 맞고 땅속으로 스며들어가 겨울을 나면서,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민들레꽃으로 피어난다. ⓒ유성문

선생이 살던 집에서 1.5㎞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권정생동화나라’는 폐교된 옛 일직남부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지난 2014년 10월 개관했다. 전시실과 체험관, 도서관,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사무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실에는 유언장, 책상, 소반, 일기장 등 그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중요 유품들과 함께 다양한 판본의 저작들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본관 앞뜰에는 ‘강아지똥’과 ‘몽실언니’ 등 작품 속 캐릭터가 설치되어 있어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길 수 있다.

일직에서 의성 쪽으로 길을 잡으면 고운사 가는 길이 나온다. 고운사 가는 길은 깊은 산속 같은 길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꼬불꼬불한 산길 20리는 멀고도 아득하지만 가히 구름을 타고 가는 길이어서 자신이 지금 어디를 가고 있는지조차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다. 이 길의 끝, 나지막한 산자락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자리에 고운사가 있다. 특히 절 입구에서 등운교까지 이어지는 1㎞가 채 안 되는 숲길은 천천히 걸으면 마음까지 맑아지는 길이다. 맨발로 걷기에도 좋은 흙길을 굳이 자동차 타이어에 양보할 일은 아니다.

고운사는 유독 구름과 인연이 많은 절이다. 절 이름부터 ‘높이 뜬 구름’ 고운사(高雲寺)이고, 절이 자리한 산은 ‘구름을 타고 오른다’는 등운산(騰雲山)이다. 우연인지 한때 이 절에 머물렀다는 신라 말기의 처사 최치원(崔致遠, 857~?)의 호도 고운(孤雲)이고, 그가 건립에 관여했다는 가운루(駕雲樓)는 절을 대표하는 누각이다. 고운사는 최치원과의 인연을 기려 ‘고운사(孤雲寺)’라 부르기도 했다. ‘외로운 구름’처럼 세상을 떠돌았던 그가 이곳에 남기고자 했던 자취는 무엇일까.

고운사 일주문과 천왕문을 지나면 계곡 가에 2층 누각 가운루가 보인다. ‘구름 위에 올라탄다’는 뜻이니, 가운루에 올라서서 계류에 비친 구름을 내려다보면 절로 구름 위에 올라탄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유성문
고운사 일주문과 천왕문을 지나면 계곡 가에 2층 누각 가운루가 보인다. ‘구름 위에 올라탄다’는 뜻이니, 가운루에 올라서서 계류에 비친 구름을 내려다보면 절로 구름 위에 올라탄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유성문

내친 김에 점곡면의 사촌마을로 향한다. 사촌마을은 오랜 내력을 가지고 있는 옛 마을로 ‘만취당(晩翠堂)’이라 하는 조선 중기에 만들어진 집과 함께 500년 수령의 향나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가로숲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의성은 안동과 함께 곳곳이 종택이고 고택이며 마을마다 서원이나 향교가 있다. 무엇보다 의성의 수많은 고택이나 종택들이 남다른 것은 사람의 온기가 떠나고 대신 적막감만 감도는 박제된 건축물이 아니라, 선인들이 남긴 자취와 함께 여전히 그를 보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온기가 가득한 생활의 터전이라는 점이다.

사촌마을은 양반마을로 유명한데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이 태어난 곳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류성룡 하면 안동의 하회마을이 떠오르지만, 이곳 사촌마을은 어머니의 친가, 즉 류성룡의 외가 자리였다. 마을 어느 곳에서나 바라보이는 향나무를 심은 이가 바로 류성룡의 외조부인 송은(松隱) 김광수(金光粹, 1468~1563)다. 김광수는 연산군 때에 진사시험에 합격했으나 벼슬살이에 나가지 않고 고향인 이 마을에서 시를 읊으며 평생을 보냈다. 가난한 살림살이에도 강가에 ‘영귀정(詠歸亭)’이라는 이름의 정자를 짓고 자연에 묻혀 안분자족의 삶을 살았다. 사촌리 향나무는 500년 전에 그가 손수 심은 여러 나무 가운데 한 그루다.

만취당에 오르면 당당한 기품으로 서 있는 향나무를 마주하게 된다. 나무를 스쳐 간 모진 풍파를 이겨낸 자취라도 되듯 굵은 줄기를 중심으로 의연하게 뻗은 나뭇가지와 이파리들이 몽실몽실 피어나는 뭉게구름처럼 올망졸망 덩어리를 이루고, 그 끝은 부챗살처럼 하늘을 향해 펼쳐져 있다. 평생을 가난하고 외롭게 살았던 한 작가의 여운이 아직 남아서일까. 문득 향나무 위에 피어오른 뭉게구름이 동화나라에서부터 따라온 것은 아닌지 가슴 뭉클해진다. 하지만 구름은 정처 없다.

사촌마을 숲은 마을 서쪽의 비어 있는 지세를 보완하고자 만든 인공림이다. ‘서쪽이 허하면 마을에 인물이 나지 않는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숲을 만들었다고 한다. 마을을 가로질러 조성된 숲이라 해서 ‘가로숲’이다. ⓒ유성문
사촌마을 숲은 마을 서쪽의 비어 있는 지세를 보완하고자 만든 인공림이다. ‘서쪽이 허하면 마을에 인물이 나지 않는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숲을 만들었다고 한다. 마을을 가로질러 조성된 숲이라 해서 ‘가로숲’이다. ⓒ유성문

바위 벼랑 위로/ 흘러가는 구름이/ 자꾸 눈앞을 어지럽힙니다./ 어머니/ 배가 고픕니다. -권정생 <딸기밭> 중에서

 

<필자 약력>

-여행작가

-편집회사 투레 대표

-한국기록문화연구협동조합 이사

-<문향을 따라가다>(어문각)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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