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한라산을 중심으로 동서가 완만한 반면 남북으로는 급경사를 이룬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남북으로 오가는 여섯 개 도로와 그것을 다시 동서로 가로지르는 산록도로가 있는데, 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기가 막힌 곳에 공동묘지가 있다. 중산간 아래쪽에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산 위쪽에 죽은 이들의 안식처가 있으니 산 사람들과 죽은 영혼들이 사이 좋게 영역을 나누고 있는 셈이다. 나중에 이야기를 하겠지만 제주도만큼 죽은 이들을 산 사람만큼 대접해 주는 곳도 드문 것 같다.

각설.

지석묘, 돌멘이라고도 부르는 고인돌이 제주도에서 170여 기나 확인되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거나 물에 띄워 보내기도 하고, 풍장, 조장, 수목장 등 간단하고 편리한 방법도 많은데 고대인들은 왜 하필 고인돌을 고집했을까. 변변한 도구조차 없었던 시절에 고인돌 하나 만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위쪽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창천리1호, 광령리, 색달동, 제주사대부고 고인돌
위쪽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창천리1호, 광령리, 색달동, 제주사대부고 고인돌

우선 암벽의 틈에 도끼날처럼 예리한 나뭇결, 그러니까 나무로 쐐기를 만들어 박아 넣은 다음 물을 부으면 물 먹은 나무의 부피가 커지면서 바위가 쩍 하고 떨어져 나간다. 거기서 떼어낸 큰 돌 아래에 일정한 규격의 나무토막을 바닥에 늘어놓고 그것을 바퀴 삼아 굴려가며 바위를 이동했을 것이다. 그런 다음 땅을 파서 굄돌로 사용할 돌을 세워 묻은 다음 주위에 흙을 덮어 굄돌 위까지 쌓고, 그 다음에 상판으로 사용할 바위를 끌고 밀고 하면서 위까지 올린 후에 주변의 흙을 제거하면 어엿한 고인돌이 완성되었을 것이다.

이런 과정에는 마을사람 모두가 나서 협동작업을 했을 게 분명하다. 공동작업을 마친 후에 사람들은 서로의 노고를 치하하며 결속을 다졌을 것이다. 그러니까 일을 손쉽게 할 수 있는 도구가 부족한 사회일수록 이웃들의 힘이 더 절실할 것이고, 그에 따라 이웃에 대한 고마움과 신뢰는 깊었을 것이다.

건축 양식이 지역마다 다르듯 제주의 고인돌도 나름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살펴본 바에 의하면 두 개, 또는 네 개의 지주석 위에 상석을 올려놓은 것과 경사면에 한 쪽 굄돌만 받치고 있는 것, 그리고 돌 밑을 파내어 시신을 매장했을 것으로 보이는 것 등이 그것인데 그 중에는 잘 생긴 것들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들도 있다. 이런 모양이 다른 지역의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지는 비전문가 입장에서 설명할 길은 없으나 고인돌의 주인공은 부족장 등 특수 계층에 한정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죽은 뒤에도 특별한 의식을 치름으로써 피라미드 형태의 안정된 사회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고인돌은 제주 전역에서 골고루 발견되는데, 제주시 광령리와 외도의 중간쯤 되는 언덕에는 고인돌 7기가 모여있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다. 아마 예전의 공동묘지가 있던 자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예나 지금이나 산 사람의 집이든 죽은 사람의 집이든 전망 좋은 곳을 선호하는 모양이다.

아무튼 광령리 고인돌1호부터 죽 살펴보던 중에 갑자기 밭과 붙어있는 마당 끝에서 손님 맞이하는 주막집 사람들처럼 어미개와 새끼들이 요란하게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낯선 이를 경계할 줄 모르는 순박함에 마음이 끌려 쓰다듬어줬더니 마치 옛 주인 만난 듯 겅중겅중 뛰며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그런데 그 녀석들이 모여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장소가 바로 커다란 돌판 아래였던 것이다. 안내 표지는 없어도 누가 봐도 고인돌이 분명했다. 옛 사람의 무덤을 이 놈들은 제 집으로 삼고 있던 것이다. 이를테면 죽은 사람과 살아있는 짐승이 동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는 어미개와 강아지들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는 어미개와 강아지들

문화재가 땅주인에게 밥을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상장을 주는 것도 아닐 테니 뭐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흰색, 누런색, 검정색 등 아비가 누군지 궁금해지는 강아지 다섯 마리를 데리고 반갑다고 꼬리 치는 어미개. 한 지붕 여섯 식구의 다문화가족 같다.

비록 지금은 남의 집 개가 안방으로 삼은 채 가치절하가 되었지만 한때는 마을사람 모두가 동원된 공사 끝에 완성된 성스러운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우리만 있는 줄 알았는데 몇 명의 청소년들도 답사를 하러 온 모양이다. 마침 고인돌 앞에 바짝 붙어서 안을 들여다 보고 있는 소녀가 눈에 띄길래 장난기가 발동하여 “넌 누구냐?” 하니 깜짝 놀라 자빠졌다. 돌 밑에 누워있던 석기시대 사람이 벌떡 일어나 소리치는 줄 알았다는 거다. 그 얘기에 주변에 있던 모두가 한바탕 웃음보를 터뜨리고 강아지들은 강아지들대로 또 깡충깡충 뛴다.

남의 무덤 앞에서 모두가 즐겁다.

무덤 속 선사인도 웃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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