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tvN 응답하라 1994 캡처
사진 = tvN 응답하라 1994 캡처

이제껏 아빠 엄마와 함께 우리의 전통밥상 속에 숨어 있는 재미난 이야기와 과학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여기 소개된 전통음식 외에도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전해오는 음식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어느 것 하나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정성이 담겨 있지 않은 음식이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저는 무엇보다 이번 밥상 여행에서 한 가지 느낀 점이 있습니다. 음식이란 단순히 배를 채우거나 영양 공급을 위한 수단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거죠. 일에 쫓기는 현대인들은 단지 배를 채우기 위해 패스트푸드를 허겁지겁 먹습니다. 또 귀찮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간편한 인스턴트식품을 장바구니에 담거나 가까운 식당에서 외식을 하곤 합니다. 우리 가족만 해도 얼마 전까지는 그렇게 식사를 해결했으니까요.

그러나 우리의 전통음식으로 차린 밥상을 대하면서부터는 음식을 보는 새로운 눈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밥상 위에 놓인 밥과 반찬들이 단지 하나의 음식이 아니라 자연으로부터 온 친구들이란 걸 느꼈습니다.

예전엔 미처 몰랐지만 그 친구들은 제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채소라도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으며, 잘 생긴 친구도 있고 벌레가 먹은 못생긴 친구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김새가 모두 다르듯이 자연에서 온 친구들도 제각기 생김새가 다른 거죠. 또 어떤 친구는 햇살을 많이 머금었고 어떤 친구는 비와 바람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게 다양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밥 한 그릇을 후딱 해치울 수 있죠. 마치 게임을 하듯 재미있고 맛있게 식사를 하게 된 겁니다.

음식은 자연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일도 합니다. 가족을 뜻하는 영어 패밀리(family)는 노예를 포함하여 한 지붕 밑에서 생활하는 모든 구성원을 뜻하는 라틴어 ‘파밀리아’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한 집안에 모여 사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가족을 일컫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국은 일가(一家), 일본은 가족이란 말을 주로 사용하죠.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식구(食口)라는 말을 주로 사용합니다. 즉, 같이 밥을 먹는 사람을 가족으로 여긴 거죠.

이처럼 밥을 먹는 문화, 즉 음식문화는 우리 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습니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온 식구가 반드시 함께 모여야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집안 식구 중 어느 누가 한 명이라도 늦으면 기다렸다가 함께 먹었습니다. 왜냐하면 식구라면 당연히 같이 밥을 먹어야 했으니까요.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하루 동안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었던 거죠.

그리고 밥상머리 교육이란 게 있었습니다. 어른들이 식사를 하며 자녀들에게 기본적인 식사예절부터 일상생활의 수칙을 세세하게 가르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인간의 됨됨이를 배우고 식사에 대한 감사와 가족 간의 정을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그럼 저는 무얼 깨우쳤냐고요? 우리 가족이 밥상 혁명을 시작할 때 아빠가 처음 내민 사진을 여러분도 기억하죠. 그 사진 속에 있는 음식과 그것을 담는 그릇까지 우리는 자세히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아빠는 두리반이라는 밥상 사진을 선택한 걸까요.

그 이유를 저는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두리’란 ‘하나로 뭉치게 되는 중심의 둘레’를 의미합니다. 즉, 여러 사람이 둘러 앉아 먹을 수 있는 둥근 두리반은 식구들이 음식을 먹으며 하나가 되기에 참 좋은 상입니다. 예전에 패스트푸드를 먹을 때는 아빠는 거실 소파에서 신문을 보며 치킨을 먹고, 저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피자를 먹었습니다. 각자 자기가 편한 위치에 앉아 따로 음식을 먹었던 거죠. 그러나 전통음식을 먹고부터는 그런 일이 없어졌습니다. 사진 속의 두리반은 아니더라도 모두 모여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엄마가 직접 만든 음식에는 우리만이 느낄 수 있는 엄마표 사랑이 담뿍 담겨 있으니까요. 그런 밥과 반찬과 찌개를 먹으며 저는 정말로 사랑받는 아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엄마와 아빠, 우리 가족 모두의 사랑이 다름 아닌 밥상 위에 놓여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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