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혁명] 전통밥상과 오지그릇
[밥상혁명] 전통밥상과 오지그릇
  • 이성규
  • 승인 2018.11.01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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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EBS 클립뱅크
사진 출처 = EBS 클립뱅크

시골집에 가면 어느 집이나 장독대가 있습니다. 뒤쪽의 키가 큰 독부터 중간 키의 독, 앞쪽에 작은 옹기까지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이렇게 장독이 많은 까닭은 예로부터 우리 밥상에 발효음식이 많이 놓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발효음식과 장독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옹기란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통틀어 가리키는 말입니다. 질그릇이란 진흙으로 빚어 유약을 칠하지 않고 그대로 구운 것을 말합니다. 굽는 온도에 따라 질그릇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900℃ 이하의 비교적 약한 불에 구운 것과 1200℃의 높은 온도에서 구운 것이 있습니다. 약한 불에 구운 것은 떡시루 같은 작은 그릇들이며, 높은 온도에서 구운 것은 물이나 김치 등을 담는 독처럼 큰 종류입니다.

이에 비해 오지그릇은 약토라 불리는 흙과 나뭇재를 섞어서 만든 유약을 칠한 후에 1200℃ 전후의 온도에서 구운 그릇을 가리킵니다. 즉, 유약을 칠했느냐 안 칠했느냐에 따라 오지그릇과 질그릇으로 나누어지는 거죠. 단순히 유약 하나지만 그것으로 인해 질그릇과 오지그릇은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등의 열대지방에 가보면 빗물을 질그릇에 받아 보관하면서 식수로 사용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전에 물이 귀했던 제주도에서는 질그릇을 물통으로 사용하곤 했죠.

그 이유는 질그릇에 물을 담아두면 물이 오랫동안 변하지 않으며 또한 항상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옹기는 원래 조그만 숨구멍이 있어서 공기가 통하는데, 유약을 칠하지 않은 질그릇은 바람만 통하는 것이 아니라 물도 아주 조금씩 새게 됩니다. 때문에 질그릇 내부로 조금씩 스며든 물이 밖에서 기화되면서 그 속에 담겨진 물을 시원하게 해줍니다.

“기화는 물이 수증기로 변하는 현상이잖아요. 그런데 왜 질그릇 속의 물이 시원해지는 거죠?”

저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질그릇이 냉장고도 아닌데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다니요.

“거기에도 과학의 원리가 숨어 있단다. 무더운 여름날 마당에 물을 뿌리면 시원해지지. 또 주사를 맞을 때 소독약을 바르면 팔이 시원하지. 바로 그런 것과 똑같은 원리야.”

아빠는 그 같은 기화 작용이 일어나면 왜 주변이 시원해지는지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물질은 고체와 액체, 기체의 세 가지 상태로 되어 있습니다. 그 중 고체일 때 에너지가 가장 낮고 액체는 중간이며 기체일 때의 에너지가 가장 높습니다. 따라서 액체인 물이 기체인 수증기로 변하는 기화작용이 일어나면 주위의 열을 흡수하게 됩니다. 즉, 주위의 열을 빼앗아 가니 당연히 주위가 시원해지겠죠.

실제로 질그릇 속의 물은 표면으로 조금씩 스며 나온 물이 기화되면서 바깥 온도보다 약 5~10℃ 정도 낮아 시원하게 느껴진답니다.

숨을 쉬는 옹기! 아, 이제야 알겠습니다. 된장과 간장, 김치 등의 발효음식이 우리나라에 유난히 많은 것은 다 숨을 쉬는 옹기 덕분이었습니다. 미생물이 그 속에서 우리 몸에 유익한 성분을 만드는 발효작용을 일으키려면 옹기처럼 숨을 쉬는 그릇이 필요하겠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으로 신기합니다. 폐나 아가미 같은 호흡기관이 있는 것도 아닌데 옹기가 숨을 쉬다니요. 그럼 혹시 호흡기관이 없는 지렁이나 거머리처럼 피부호흡을 하는 것일까요.

옹기는 겉으로 볼 때 매끈하게 보이지만 전자현미경으로 그 파편을 확대해 보면 아주 미세한 구멍이 수도 없이 많다고 합니다. 그 구멍은 너무 작아 공기는 통과시키지만 물이나 그 밖의 내용물들을 통과시키지 않죠. 물론 유약을 칠하지 않은 질그릇의 경우 물을 아주 조금씩 통과시키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럼 옹기에 이 같은 작은 구멍이 왜 생기는 걸까요. 옹기는 굽는 동안 최소 800℃ 이상의 높은 온도를 오랫동안 받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옹기 벽에 루사이트 현상이 나타납니다. 루사이트란 백류석이라고도 부르는 일종의 화산암인데, 옹기 벽에 그처럼 작고 동그란 구멍이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즉, 옹기 재료 속에 포함되어 있던 결정수들이 열을 받아 빠져나가면서 미세한 구멍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긴 구멍들은 산소 분자보다는 훨씬 크고 물방울보다는 훨씬 작기 때문에 옹기는 숨을 쉴 수 있습니다. 때문에 물보다는 작고 산소보다는 큰 소금이나 설탕 등이 옹기 표면으로 흘러나가 맺히기도 합니다.

이를 두고 옹기가 땀을 낸다고 표현하는데, 간장독이나 된장독에 허옇게 소금기가 서리는 현상을 볼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따라서 옛날 어른들은 이처럼 땀을 내는 옹기를 좋은 옹기로 쳐주었습니다.

하지만 된장이나 간장, 김치 같은 발효식품의 경우 소금기가 너무 많이 빠져나가면 좋지 않겠죠. 따라서 이런 발효식품은 질그릇 대신 오지그릇에 담아 보관했습니다. 약토와 재를 섞어 만든 유약을 입혀 구우면 표면이 매끄러워지면서 바람은 통해도 물은 통하지 않게 막아줍니다.

유약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반들반들 빛이 나는 옹기는 보기엔 좋지만 숨구멍까지 막혀 바람이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신문물이 소개되기 시작한 19세기 말엽부터 사용된 광명단이라는 유약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광명단은 산화된 납을 주성분으로 하는 유약인데, 오지그릇에 입혀 구우면 붉은색이 나고 표면이 유리알같이 매끈하며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또 광명단은 가격도 싸고 사용하기도 편리하죠. 때문에 일제시대 이후에는 거의 모든 옹기가 광명단으로 제작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광명단을 발라 구운 옹기는 숨을 쉬지 못할 뿐 아니라 맑지 않은 울림을 갖고 깨지기 쉽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화학약품으로 만들었으니 사람에게 좋지 않은 성분이 들어 있을 수도 있죠.

따라서 옹기가 붉은색을 띠고 매끈하며 지나치게 광택을 낸다면 광명단 유약을 발라 만든 것인지 한번쯤 의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옹기는 우리 조상들이 오래 전부터 사용해온 천연 유약으로 만든 것이 제일 좋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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