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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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민요에는 나물을 소재로 한 노래가 많습니다. 그만큼 나물이 우리 민족의 생활과 밀접한 식품이란 증거겠죠. 조선시대에는 우리 산야에서 나는 나물이 무려 851종에 이르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지금도 우리가 먹고 있는 나물들은 300여 종에 이릅니다. 참으로 종류가 많죠. 때문에 나물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구황식품이기도 합니다.

“수박서리나 참외서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지. 그처럼 예전에는 나물서리라는 것도 있었단다.”

아빠의 말에 의하면 나물서리는 어렵던 시절 우리 조상들이 서로 함께 나누었던 아주 아름다운 풍속이었다고 합니다. 이른 봄, 산에 나물이 돋기 시작하면 동네 아낙네들은 하루 종일 산나물을 따다가 잘 고르고 다듬어서 커다란 광주리에 이고는 마을의 부잣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마당에 산나물 광주리를 내려놓으면 부잣집 마나님이 큰 바가지에 곡식을 가득 담아 와서는 나물과 맞바꾸었죠.

그것은 보릿고개를 넘기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배려가 담긴 아름다운 물물교환이었습니다. 가난했던 서민들은 보릿고개에 하루 종일 나물을 뜯어 양식을 얻을 수 있었고, 부잣집에서는 먹고 싶은 봄나물을 일찍 먹을 수 있어 좋았던 것입니다.

흔히 묵은 나물을 두고 겨울철 밥상의 영양보고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식품이 시래기라고 합니다. 요즘도 시골집에 가보면 뒤뜰 추녀 밑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바로 그 시래기 말예요.

시래기라고 하면 흔히 쓰레기로 잘못 들을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정말 시래기가 쓰레기처럼 흔하고 값싼 식품 취급을 받았죠. 유난히 얼굴이 허옇거나 기운이 없어 보이는 아이들에게 “시래기죽도 한 그릇 못 얻어먹었느냐”라고도 했답니다.

그만큼 자주 먹던 음식이면서 천대받던 음식이기도 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시래기가 가진 장점이 속속 밝혀지면서 요즘은 웰빙 식품으로 아주 귀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우선 시래기는 채소 중에서 식이섬유와 칼슘이 가장 많이 들어 있는 식품입니다. 흔히 칼슘이 가장 많은 채소로 시금치가 꼽히는데, 시래기는 시금치의 2배에 달하는 칼슘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또 시래기 100그램에는 식이섬유가 11그램이나 들어 있어 장내 독성 물질을 없애주는 역할을 합니다. 인스턴트식품이나 패스트푸드를 많이 먹는 현대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식품이죠.

또 칼로리가 적어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다이어트 식품이며, 철분이 많아 빈혈 예방에도 좋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시래기처럼 고기와 궁합이 잘 맞는 식품도 없습니다. 고등어조림을 할 때나 붕어찜을 할 때 시래기를 함께 넣으면 비린내를 없애줄 뿐더러 맛을 아주 좋게 해줍니다. 감자탕이나 돼지갈비찜에 넣어도 맛이 그만이죠.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시래기에도 우리 조상들만의 과학이 숨어 있다는 점입니다. 시래기를 말릴 때 중요한 점은 그늘에 말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햇볕에 말리게 되면 색깔이 누렇게 변하는데, 그것은 무청의 엽록소가 햇볕에 파괴되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따라서 시래기는 통풍이 잘 되고 그늘진 곳에 말려야 엽록소와 비타민C가 파괴되지 않고 푸른색을 띠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무청을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다음 그늘에 말리면 시래기의 색깔이 더 보기 좋은 녹색이 됩니다. 채소는 오래 보관할 경우 자체 내의 효소에 의해 영양소의 파괴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살짝 데쳐서 효소의 작용을 억제시키면 영양소의 파괴를 막을 수 있어서 말리기에 더 좋았던 거죠.

그뿐 아니라 시래기는 말리는 과정에서 비타민D까지 새로 생겨난답니다. 비타민D는 칼슘의 흡수를 도와주는 성분인데, 말리는 과정에서 없던 성분까지 새로 만들어진다니 정말 놀라운 뿐입니다.

무말랭이도 말려서 더 좋은 성분이 생기는 사례 중의 하나입니다. 무를 잘라 말리면 수분이 증발하면서 영양분이 농축됩니다. 또 무의 잘린 단면에서 세포를 복구하기 위해 베타 글루칸이라는 면역 증강 물질이 많이 만들어집니다.

싱싱한 무의 아삭거리며 씹히는 맛과 영양도 일품이지만 채로 썰어서 말린 무말랭이도 그에 못지않다는 것을 알겠죠. 이처럼 묵은 나물에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곳곳에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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