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 징게맹갱 외에밋들
[문학기행] 징게맹갱 외에밋들
  • 유성문 여행작가
  • 승인 2018.10.15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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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아리랑

그들 세 사람은 걸어도 걸어도 끝도 한정도 없이 펼쳐져 있는 들판을 걷기에 지쳐 있었다. 그 끝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넓디나 넓은 들녘은 어느 누구나 기를 쓰고 걸어도 언제나 제자리에 헛걸음질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 벌판은 ‘징게맹갱 외에밋들’이라고 불리는 김제·만경 평야로 곧 호남평야의 일부였다. 호남평야 안에서도 김제·만경 벌은 특히나 막히는 것 없이 탁 트여서 한반도 땅에서는 유일하게 지평선을 이루어내고 있는 곳이었다. -조정래 <아리랑> 중에서

엄뫼(모악산)에서 어머니의 자궁인 바다에 이르기까지, 들판은 오롯이 황금빛으로 빛난다. 바람마저 거칠 것 없으니 황금물결로 일렁인다. 그러나 그것은 풍요가 아니다. 풍요에의 기억일 뿐. 그마저도 수탈의 아픔을 안고 있는. 가을이면 ‘징게맹갱 외에밋들(김제 만경 너른들)’의 모든 나락들은 시름으로 고개를 떨군다.

벽골제에 올라서면 징게맹갱 외에밋들이 황금물결로 일렁인다. 그러나 그것은 풍요가 아니다. ⓒ유성문
벽골제에 올라서면 징게맹갱 외에밋들이 황금물결로 일렁인다. 그러나 그것은 풍요가 아니다. ⓒ유성문

서로가 서로를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 없이 떠나간다.…벼가 떠나가며 바치는/ 이 넓디넓은 사랑,/ 쓰러지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서 드리는/ 이 피 묻은 그리움,/ 이 넉넉한 힘…. -이성부 ‘벼’ 중에서

그랬으나, 이제 백성들은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지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팔아 더 황폐해져갈 뿐이다. 벼가 떠나면서 바치는 것은 여전히 사랑이지만, 우리는 애써 그 사랑을 잊는다. 아버지인 농부와 어머니인 대지는 그렇게 잊혀져간다. 고향을 떠나왔을 때, 고향인 어머니도 잊힌다. 그러나 세상의 거친 들판에서 홀로 상처입고 헤매일 때 비로소 고향을 떠올린다.

모악에서 만경으로 넘어갈 때, 첫 번째로 만나는 귀신사는 양귀자의 소설 '숨은 꽃'의 무대이다. ⓒ유성문
모악에서 만경으로 넘어갈 때, 첫 번째로 만나는 귀신사는 양귀자의 소설 '숨은 꽃'의 무대이다. ⓒ유성문

아줌마, 얼마나 더 가야 지평선이 나와요/ 여그가 바로 지평선이어라우/ 여그는 천지사방이 다 지평선이어라우/ 바람 들옹게 되창문이나 좀 닫으쇼잉/ 그렇구나 이 세상에는 천지사방/ 지평선 아닌 데가 없구나/ 보고 싶은 것들은 언제 어디서나/ 눈 감아도 떠도 다 가물거리겠구나 -정양 ‘지평선’ 중에서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의 무대를 찾아 문학기행을 떠난 이라면 아침 일찍 모악산에서 시작하여 한낮에 벽골제에 들러 저물 무렵 망해사에서 낙조를 맞이하기 바란다. 그래야만 ‘모악’은 왜 어머니 산이고 ‘볏골’의 너른 들은 왜 그렇게 가뭇없이 넘실거리며 ‘망해’에서 저녁은 왜 슬픔으로 잦아드는지, 비로소 김제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금산사. 선승의 사과공양은 또 다른 탑을 이룬다. ⓒ유성문
금산사. 선승의 사과공양은 또 다른 탑을 이룬다. ⓒ유성문

금산사와 귀신사를 거느리고 바다를 향해 김제·만경의 너른 들을 품에 안고 있는 모악산은 영락없이 어머니의 산이다. 금산사는 호남 미륵신앙의 모태이며, 그 아래 구릿골은 증산사상의 탄생지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모든 토착신앙은 모악산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동양 최대의 수리시설이었다는 벽골제는 그 엄청난 규모를 말해주듯 ‘신털뫼와 되배미’의 전설이 남아있다. ‘신털뫼’는 벽골제 공사에 동원된 인부들이 신에 묻은 흙을 털어 이룬 산이고, ‘되배미’는 수많은 인부들을 일일이 셀 수 없어 500명들이 논을 만들어 그 안에 인부들을 넣고 되로 되듯이 한꺼번에 500명씩 세었다는 이야기가 얽힌 논이다.

망해사에서 바라본 심포의 낙조. 하지만 이조차 새만금의 광대한 둑에 막혀지고 말았다. ⓒ유성문
망해사에서 바라본 심포의 낙조. 하지만 이조차 새만금의 광대한 둑에 막혀지고 말았다. ⓒ유성문

벽골제 한쪽에 세워진 비석에는 장보고의 죽음 이후에 청해진 유민들이 이곳에 끌려와 제방보수공사에 동원되었다는 기록이 새겨져 있어 애처롭다. 한때 바다를 주름잡았던 그들이 제방에 앉아 또 다른 ‘만경창파’를 바라보는 심경은 과연 어떠했을지….

망해사는 ‘바다를 바라보는 절’이다. 절은 영판 쇠락했지만 ‘낙서전(樂西殿)’이니 ‘청조헌(聽潮軒)’이니 절채의 이름은 그윽하고,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서해바다와 고군산군도가 아련하다. 발아래 심포에는 드넓은 ‘갯들’이 하루에 두 번씩 어김없이 제 몸을 드러낸다.

벽골제 부근에 있는 아리랑문학관은 소설 '아리랑'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1층 로비에서 안으로 몇 걸음 내딛으면 만나게 되는 제1전시실에는 어른 키보다 높이 쌓인 작가의 '아리랑' 육필원고지가 방문객을 압도한다. 무려 2만장에 이르는 원고지.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한 글쓰기의 체험밖에 갖지 못한 요즘 세대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창작 산고의 산 증언이다. '아리랑'이 시작되는 구한말의 국내외 정세, 소설의 배경인 김제가 일제강점기 식량 수탈의 표적이 됐던 이유 등을 통해 문학관의 각 전시공간은 갑자기 1세기를 거슬러 민족의 수난기로 우리를 안내한다. 또한 작가의 취재노트와 거기 삽입된 그림들은 이 작품이 얼마나 치열하게 역사를 증언하려 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유성문
벽골제 부근에 있는 아리랑문학관은 소설 '아리랑'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1층 로비에서 안으로 몇 걸음 내딛으면 만나게 되는 제1전시실에는 어른 키보다 높이 쌓인 작가의 '아리랑' 육필원고지가 방문객을 압도한다. 무려 2만장에 이르는 원고지. 워드프로세서를 이용한 글쓰기의 체험밖에 갖지 못한 요즘 세대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창작 산고의 산 증언이다. '아리랑'이 시작되는 구한말의 국내외 정세, 소설의 배경인 김제가 일제강점기 식량 수탈의 표적이 됐던 이유 등을 통해 문학관의 각 전시공간은 갑자기 1세기를 거슬러 민족의 수난기로 우리를 안내한다. 또한 작가의 취재노트와 거기 삽입된 그림들은 이 작품이 얼마나 치열하게 역사를 증언하려 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유성문

 

<필자 약력>

-여행작가

-편집회사 투레 대표

-한국기록문화연구협동조합 이사

-<문향을 따라가다>(어문각)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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