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 의술이야기] 중의학의 근원
[동서고금 의술이야기] 중의학의 근원
  • 강선주, 이문필 등 20인(빅북 제공)
  • 승인 2018.10.17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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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고대 중국 의학 — 유교와 도교에 나타난 생명과학

춘추전국시대 지리학 저서인 《산해경 山海經》은 고대 중국의 산천, 특산물, 약재, 제례, 무속 등에 관련된 다양한 신화와 전설이 망라되어 있는 서적이다. 이 책에는 식물성약 52종을 비롯해 동물성약 67종, 광물성약 3종, 물약 1종 등 총 123종의 약재가 소개되어 있다.

《사기·강감 史記·綱鑒》에는 “신농씨가 백 가지 풀의 맛을 보면서 의약이 시작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농씨는 하루에 70여 종의 독을 경험할 정도로 다양한 초목을 접했다고 한다. 이 전설은 서한(西漢) 말엽까지 전해 내려왔는데 어떤 사람이 이를 바탕으로 약초 365종을 채집하여 《신농본초경 神農本草經》이란 책을 편찬했다. 그는 이 책을 신농씨가 집필했다고 꾸몄다. 사실 고대 중국의 삼황오제시대에는 제대로 된 문자도 형성되지 않았으므로 의약서적이 나올 리 만무했다. 이는 당연히 위작에 해당한다. 또한 이 책에 소개된 내용이 매우 방대한 것으로 보아 한 사람이 집필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한 가지 약초의 효과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체질의 사람들이 수없이 반복해서 복용한 뒤 관찰해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탐색과 실천을 반복하는 과정이 누적되면서 일련의 ‘본초학’이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농본초경》은 1세기경 동한시대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된다. 즉 《황제내경 黃帝內經》보다는 늦지만 《상한잡병론 傷寒雜病論》보다는 앞선 의학서에 해당한다.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365종의 약초를 독성과 약효에 따라 상, 중, 하품으로 나누고 있다. 이 가운데 독성이 없고 약효가 뛰어난 상품 약초가 120종, 병세 악화를 막고 보양 효과가 있으며 독성을 보유한 중품 약초 120종, 그리고 병마를 쫓을 수 있지만 독성이 많은 하품 약초 125종 등이 있다.

이 책은 또한 군신좌사(君臣佐使: 한약 처방을 할 때에 구성 약재의 작용에 따라 네 가지로 갈라놓은 것. 주된 약을 군약이라 하고 보조약을 신약, 좌약, 사약으로 구분함), 칠정화합(七情和合), 사기오미(四氣五味: 사기는 한(寒)·열(熱)·온(溫)·양(凉), 오미는 산(酸)·고(苦)·감(甘)·신(辛)·함(鹹)), 음양배합(陰陽配合) 등 중국 의학의 기초이론을 수록하고 있다. 즉 ‘한기’로 얻은 병은 ‘열기’를 가진 약재를 사용하고 ‘열기’로 얻은 병은 ‘한기’를 가진 약재로 다스리는 원칙에 따라 약재의 기능, 효과, 용법, 복용 등과 관련된 내용을 논술했다. 특히 약재의 생산지, 채집시기, 정제, 품질, 진위감별 등도 소개하고 있어 본초학의 기반을 형성했다.

《한서·평제기 漢書·平帝紀》에는 원시(元始) 5년(서기 5년), 한나라 조정에서 인문, 역사, 과학, 기술에 탁월한 재능을 지닌 인재를 모집했는데 이 가운데 ‘본초’ 항목도 포함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서한의 의학자 누호(樓護)는 의경(醫經), 본초, 방술에 관한 지식을 줄줄 욀 정도로 학식이 뛰어났던 인물로 당대 큰 존경을 받았다. 누호의 생존연대는 기원전 96년에서 기원전 31년 사이일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본초’는 이미 약학 저서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본초’에서 출발한 중국 의학은 의식동원(醫食同源: 치료와 식사는 모두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근원이 동일함) 사상으로 발전했다. 중국 옛말에 ‘민이식위본(民以食爲本)’이란 말이 있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밥’이 해결되어야 함을 가리킨다. 고대 중국인들은 파, 생강, 마늘 등에 강장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으며 농경시대로 접어들면서 이러한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또한 계피, 육류, 알류 등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특히 불을 사용할 줄 알게 되면서 육류, 채소 등을 익혀 먹게 되었으며 이러한 동식물에 일정한 약용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파를 생으로 먹으면 땀을 낼 수 있고 생강은 한기로 인해 생긴 관절통, 위통, 감기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한의사들이 가장 즐겨 사용했던 약재는 ‘탕약’이었다. 몇 가지 약재를 물과 함께 끓인 후 그 탕을 복용하는 것인데, 이 탕약은 이윤(伊尹)이 처음 선보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윤은 어떤 인물인가? 그는 상(商)나라 탕왕(湯王)시대의 재상으로서 본래는 노예 신분이었다. 요리 솜씨가 뛰어나 그가 만든 탕은 음식뿐만 아니라 병을 치료하는 탕약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상나라 탕왕의 총애를 받기 시작하면서 이윤은 재상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노자는 《도덕경 道德經》에서 “나라를 다스림은 요리를 만드는 것과 같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의식동원 사상은 요리사와 의사 두 가지 직분을 담당했던 이윤을 통해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볼 수 있다. 후에 한나라의 명의 장중경(張仲景)이 지은 《상한잡병론》이 등장했다.

이 책에 소개된 ‘계지탕’에는 계지(계수나무 가지), 작약, 생강, 대추, 감초 등 다섯 가지 재료가 사용되는데 이 가운데 계지, 대추, 생강 등은 지금도 주방에서 음식, 또는 조미료의 재료로 자주 등장하는 식품이다. 이밖에 고추, 회향, 술 등도 음식재료뿐만 아니라 약재로 사용된다. 호도, 용안육, 대추, 계피 등은 약방과 식품점 어디에서나 구입이 가능하다. 식품과 약재의 경계선을 짓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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