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고대 중국 의학 — 유교와 도교에 나타난 생명과학

장중경(張仲景)의 본명은 장기(張機)이며 고대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내과의사이다. 동한 말기 전란과 역병으로 혼란스럽던 시기에 활동했던 인물이다. 당시의 유명한 문인 조식(曹植)은 그때의 암울했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건안(建安) 22년, 병마가 온 마을을 뒤덮었다. 집집마다 시체가 뒹굴고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온 식구가 떼죽음을 당하거나 한 민족은 모두 병사하여 역사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장중경의 스승 장백조(張伯祖)는 한나라 영제(靈帝)시대에 과거에 급제하여 후에 장사 태수에까지 오른 인물로 의학이란 “위로 군주의 병을 치료하고 아래로는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하며 평소에는 건강을 지켜 장수하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여겼다. 장백조의 자필 전기에는 “우리 가문은 본래 2백여 명에 달할 정도로 번창했다. 그러나 건안 원년(196년)이래 10년이 채 되지 않은 시기에 이 중 3분의 2가 죽어나갔다. 열 명 가운데 일곱 명이 돌림병으로 죽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돌림병의 해로움에 대해 통감하고 있었다. 이에 과거의 선례를 꼼꼼히 찾아보고 민간에 유행하는 여러 가지 요법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는 과거와 현재의 경험을 종합하고 자신의 실전 의료 경험까지 망라하여 《상한잡병론》 총 16권을 완성했다. 이는 동한, 서한시대 이전의 의학을 집대성한 저서로 평가받는다. 현재에는 《상한론 傷寒論》과 《금궤요략 金匱要略》 두 권만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상한론》은 차가운 기운에 의한 발열성 질병을 논하고 있으며 발열성 전염병의 치료방법을 변증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금궤요략》은 내과의 각종 병과 외과, 부인병 등에 대해 논하고 있다.

장중경은 위 저서에서 진맥과 임상 경험을 종합하여 총 20여 종의 병과 관련된 맥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는 현재 사용하는 방법과도 큰 차이가 없다. 위 저서들은 특히 방제학(方劑學: 약재의 적절한 조합 등 처방 구성을 연구하는 학문)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상한론》에는 113개의 처방전이 기록되어 있으며 사용된 약재는 170여 종에 이른다. 《금궤요략》에는 총 262개의 처방전이 기록되어 있으며 사용된 약재는 214종이다. 여기에는 각 과에서 상용하는 다양한 처방전이 총망라되어 있다. 내복약으로는 환약, 가루약, 고약, 단약(丹藥: 환약 또는 분말 형태의 약), 탕제 등이 있으며 외용 처방전으로는 목욕, 훈약(薰藥: 불에 태워서 나오는 기운을 쐬어 병을 치료하는 약)을 비롯해 적이(滴耳: 귀에 약물 떨어뜨리기), 관비(灌鼻: 코에 약 불어넣기), 관장(灌腸), 좌약 등이 사용되었다.

중경의 처방전은 약을 많이 쓰지 않고 정확한 배율로 조제하여 치료효과를 높였다. 후대 중국 사람들은 그를 ‘의학의 원조’라고 부르고 있다. 특히 그는 유행성 열병에 대해 여섯 단계의 변증법적 치료를 체계화했다. 열병을 ‘육경(六經)’ 즉, 삼양(三陽), 삼음(三陰)에 따라 여섯 유형으로 나누어 치료하는 방법을 말한다. 그는 각 유형별로 병세, 증상, 맥박 등을 정리한 후 음양표리(陰陽表裏), 냉열허실(冷熱虛實) 등의 요소를 감안해 치료했던 것이다. 유형별 맞춤 치료법과 약제를 사용했기 때문에 후대 사람들도 이를 매우 존중하여 따르고 있다.

장중경은 “병의 원인을 규명하여 이에 대처하는 방법을 찾고 이 방법에 따라 처방을 내리며 처방전대로 약을 복용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는 중국 임상학의 초석이 되었다. 장중경의 이러한 처방 원칙은 매우 신중하고 엄밀하게 확립되었다. 그는 고대 중국의 수많은 명의들과 달리 질병에 관한 각종 이론을 탐구하지 않았으며 마법이나 초자연적 역량 같은 것을 믿지도 않았다. 오직 임상 경험만을 토대로 질병의 원인과 증세를 규명했다. 그의 이러한 연구 태도는 후에 중국 의학사상 특수한 ‘경방파(經方派: ‘경방’은 경험에 따른 처방이란 뜻으로 임상의학을 중시하는 학파)’를 형성하기도 했다.

《상한잡병론》은 후대 임상의학 본보기가 되었으며 현재도 일부 의사들이 이 저서에 기록된 내용을 토대로 처방을 내리고 있다. 당, 송 이후에는 일본, 조선, 동남아 등의 국가로 전파되어 수많은 학자들이 그의 저서를 아직까지도 연구하고 있다. 이처럼 후대 의학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장중경을 중국 의학계에서는 ‘의성’ 또는 ‘의학의 원조’로 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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