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CNN 방송화면 갈무리
사진=CNN 방송화면 갈무리

[뉴스로드] 25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일어난 ‘폭탄 소포’ 소동으로 논란이 격화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가짜 뉴스’가 극단적인 행동을 조장하고 있다며 언론에게 화살을 돌렸다. 미국 언론들도 트럼프 대통령이 더 이상 미국을 하나로 만들 수 없는 지도자라고 반발하면서 폭탄 소동이 백악관과 언론 간의 갈등으로 확전되고 있다.

◇ 트럼프 VS 언론, 폭탄테러 책임 놓고 '네 탓'

소형 폭탄이 담긴 소포의 배송지가 모두 대표적인 반(反)트럼프 인사들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 같은 극단적인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신중하게 가다듬은 정치적 수사를 사용했던 전임 대통령들과는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지나치게 공격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 미국 내 주요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극단적 발언들이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물리적 공격마저 허용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을 중심으로 대두되고 있는 책임론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트위터를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보이는 분노의 가장 큰 부분은 내가 ‘가짜 뉴스’라고 부르는 주류 언론들의 고의적인 거짓과 부정확한 보도 때문”이라며 “이는 너무 나쁘고 혐오스러워 표현하기조차 어렵다. 주류 언론은 그들의 행태를 빨리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있었던 선거캠페인에서도 언론들이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점에서 이번 테러 사태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적반하장’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폭탄이 뉴욕 지국으로 배송돼 곤란을 겪은 CNN은 이날 “트럼프는 우리를 통합시킬 수 없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고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를 초래한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다시 한 번 지목했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은 증오에 찬 연설의 힘으로 미국인들을 완전히 분열시켰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 특히 CNN을 비난하면서 기자들을 ‘쓰레기’, ‘끔찍하다’는 말로 모독했다. 그 중 최악은 ‘공공의 적’이라는 비난”이라고 말했다. CNN은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수년 간 오바마 전 대통령의 출생지에 대한 분열적이고 음모론적인 수사를 통해 그의 정당성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려 노력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나”라며 트럼프 대통령에게이번 사태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퓨리서치센터 홈페이지 갈무리
미국 정치의 양극화를 보여주는 그래프. 파란색 영역이 민주당 지지자, 빨간색 영역이 공화당 지지자의 정치 성향 분포를 의미한다. 사진=퓨리서치센터 홈페이지 갈무리

◇ 미국은 정말 양극화되고 있을까?

미국 언론들의 반트럼프 성향을 고려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치적 양극화의 책임을 묻는 것은 근거없는 비난으로 보기 어렵다. 실제로 미국 사회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들의 정치성향이 양극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에서 확인되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색깔이 강한 지도자가 부상하면서 이러한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비판도 여러 차례 제기됐다.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가 지난 2014년 1만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의 정치성향의 차이는 지난 1994년에 비해 확연하게 벌여졌다. 20년 전에도 민주당 지지자들이 공화당 지지자들에 비해 진보적인 성향을 보였지만 양당 지지자들의 이념에는 차이보다는 공통점이 더 컸다. 하지만 2014년 결과에서는 양당 지지자들이 공통된 성향을 보이는 이슈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에도 여전히 심각하다. 퓨리서치가 지난 8월 발표한 바에 따르면 상대 정당 지지자와는 정치적 이슈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고 대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78%였다. 이는 미국 대선 기간이었던 지난 2016년 10월 발표된 조사 결과(81%)와 비슷한 수치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퓨리서치가 같은 시기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들의 트럼프 지지도는 84%인 반면, 민주당 지지자들은 겨우 7%에 불과했다. 지지도의 당파성이 가장 옅었던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공화당 67%, 민주당 36%)에 비해 두 배 이상 양극화가 심해진 셈이다.

사진=퓨리서치센터 홈페이지 갈무리
정치적 성향이나 지지 정당이 확고한 사람일수록 투표 등의 정치적 행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확률이 높다. 사진=퓨리서치센터 홈페이지 갈무리

◇ 정치적 양극화, 트럼프에게 유리하게 작용

문제는 미국 사회의 정치적 양극화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퓨리서치의 보고서에 따르면 정치성향이나 당파성이 분명한 사람일수록 더 적극적으로 투표를 비롯한 정치적 행동에 참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양극화에 관한 조사에서도 백인, 장년층, 공화당 지지자일수록 정치성향이 다른 사람과는 기본적 사실에 있어서도 의견이 다르다고 대답할 확률이 높았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지지층의 인구학적 특성과 일치한다.

즉, 미국사회가 정치적으로 더욱 분열될 수록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적극적으로 응원하며 표를 던져 줄 ‘콘크리트’ 지지층을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각종 인종차별 발언, 성추문, 러시아 대선조작 의혹 등으로 여러 차례 위기를 맞았지만 안정적인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퓨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취임 후 약 1년 반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39%에서 40%로 1% 상승했다. 취임 2년간 64%에서 45%로 20%나 지지율을 상실한 오바마 전 대통령이나, 53%에서 61%로 인기가 오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에 비해 지지율 변동이 아예 없는 셈이다.

미국 사회의 양극화는 비록 높지는 않지만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확고한 트럼프 지지층을 다져놨다.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 번의 정치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답지 않은 과격한 수사를 계속하는 것 또한 이러한 든든한 지지층에 힘입은 바 크다. 반대파에 대한 폭탄 테러 시도에도 언론을 향해 뻔뻔하게 책임을 묻는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도 ‘양극화’라는 렌즈를 들이대면 쉽게 해석할 수 있다.

FBI 수사 결과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반대파에게 배송된 폭탄은 대부분 구조가 조잡하고 폭발력이 약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이번 폭탄 테러가 중간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일종의 정치적 쇼라는 루머가 확산되고 있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민주당 지지자들의 자작극이라는 비난이 퍼지는 판면,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극렬 공화당원이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벌인 연극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번 폭탄 테러는 물리적 폭발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나, 미국 사회의 갈라진 틈을 더욱 넓히고 있다는 점에서 제대로 폭발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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