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그림이 있는 풍경] 이생에서 사랑할 수 없다면
[시와 그림이 있는 풍경] 이생에서 사랑할 수 없다면
  • 김용국(시인)
  • 승인 2018.11.01 10: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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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속에서. 26×42x11Cm. 조합토+테라시즐레타. 홍미자
자연속에서. 26×42x11Cm. 조합토+테라시즐레타. 홍미자

이생에서 사랑할 수 없다면


이생에서는 사랑할 수 없다면
다음 생에서는 사랑이 가능한가요.

한 세상이 지고
다른 세상이 오는 시간을
겁劫이라고 하지만,

내 비단 속옷으로
당신의 무쇠 마음을 열리게 하는 시간보다 길까요.

아직도 도달하지 않은
저 뒤편 별빛보다 더 먼 겁劫의 기다림.

잠들고 꿈꾸면 한 생애이듯
죽어 스스로 아득해 지면
한두 겁劫도 쉽게 가겠지요.

그때는 정말 당신의 사랑이 가능한가요.

나는 얼마 전에 친구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는 일 년에 한두 번 식사하고 차를 마시는 사이입니다. 얼마 전 두 사람의 아이들이 결혼을 하고, 어느덧 남자와 여자의 머리에는 드문드문 흰머리도 내렸습니다.

가을이었지요.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고 한 여자는 “당신과 내가 처음 알게 된지가 얼마나 되느냐”고 묻습니다. 남자는 머뭇거립니다. 여자는 “이십오 년”이라고 스스로 답합니다.

한 여자는 먼 곳을 쳐다보며 말합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했다”고, “사랑하고 있다”고. 그리고는 한 여자의 눈에서는 눈물이 서서히 차오르다 떨어집니다. 한 여자의 어깨도 손가락도 여울처럼 떨립니다. 한 여자는 떨림이 잠시 멈추자 다시 말합니다. 아니 묻습니다. “이생에서는 우리 함께 할 수 없으니 내생에서는 함께 할 수 있을까요?”

한 남자가 물었다지요. “어떻게 긴 시간을 기다릴 수 있겠냐하고요.”

그러자 한 여자가 대답합니다. “당신이 마음만 열어준다면 ‘잠들고 꿈꾸면 한 생애이듯/ 죽어 스스로 아득해 지면 /한두 겁도 쉽게 가겠지요.’”라고.

ㅡ한 남자도 자신의 아주 깊은 곳에서 떨려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후 자신도 언젠가는 흘려야 되는 눈물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겁劫은 불교에서 천지가 한 번 개벽한 때부터 다음번에 개벽할 때까지의 오랜 동안을 이르는 말입니다.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소달구지가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의 큰 바위를 1백년마다 한번 씩 비단 옷자락으로 닦아서 그 바위가 다 닳아 없어져도 겁은 끝나지 않는다는 시간입니다. 영원의 시간이지요.

우리는 오늘 하루만 살 것처럼 삽니다. 그러니 우리의 관계나 사랑은 짧고, 생활은 힘들고, 각박하고, 건조할 수밖에 없지요.

오늘은 영원이라는 시간에 자신의 영원한 사랑을 새기는 그 한 여자를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 있다면 그 한 여자의 몫일 겁니다.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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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sdltka 2018-11-12 11:12:31
잘 감상하고 갑니다.

vosdlqsl 2018-11-03 22:19:15
이런 좋은 시 오랫만이네...잘 감상하고 가요.

dlfjftnrk 2018-11-02 11:24:17
이건 반칙이예요. 이렇게 달콤한 슬픔이라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