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 근원에 대한 그리움
[문학기행] 근원에 대한 그리움
  • 유성문 여행작가
  • 승인 2018.10.29 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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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과 남원

그리하여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풍화 마모되지 않는 모국어 몇 모금을 그 자리에 고이게 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만일 그것이 어는 날인가 새암을 이룰 수만 있다면, 새암은 흘러서 냇물이 되고, 냇물은 강물을 이루며, 강물은 또 넘쳐서 바다에 이르기도 하련만. 그 물길이 도는 굽이마다 고을마다 깊이 쓸어안고 함께 울어 흐르는 목숨의 혼불들이, 그 바다에서는 드디어 위로와 해원의 눈물 나는 꽃빛으로 피어나기도 하련마는. 나의 꿈은 그 모국어의 바다에 있다. -최명희 <혼불> 후기 중에서

남원 사매의 혼불문학관과 노봉마을 최명희문학비. 혼불문학관은 근원에 대한 그리움을 해소하고자 혼을 불사른 작가 최명희의 뜻을 기리고 널리 알리고자 하는 아우름의 터전이다. '혼불'의 문학정신은 이제 혼불문학관과 백대 천손의 ‘천추락만세향(千秋樂萬歲享)’ 노봉마을에서 맑은 샘을 이루어 넓디넓은 대양으로까지 힘차게 흘러나가리라. ⓒ유성문
남원 사매의 혼불문학관과 노봉마을 최명희문학비. 혼불문학관은 근원에 대한 그리움을 해소하고자 혼을 불사른 작가 최명희의 뜻을 기리고 널리 알리고자 하는 아우름의 터전이다. '혼불'의 문학정신은 이제 혼불문학관과 백대 천손의 ‘천추락만세향(千秋樂萬歲享)’ 노봉마을에서 맑은 샘을 이루어 넓디넓은 대양으로까지 힘차게 흘러나가리라. ⓒ유성문

20세기 말 한국문학에 큰 획을 그은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은 우리 문학계에 생태문학이라는 또 다른 영역과 현대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펼쳐 보였다. 그런가 하면 박제화되어가는 우리 민속문화를 생생하게 복원, 재현했다. 게다가 국어사전을 시집처럼 읽었던 작가는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운율을 살려 모국어의 감미로움과 미려함, 풍성함을 돋보이게 하여 찬탄을 자아냈다.

<혼불>에서 우러나는 아름다움과 애련함, 근엄함과 서러움, 밝음과 어둠이 은행나무, 살구나무를 스친 댓바람 소리와 함께 대실을 건너 노봉마을과 사매면을 감싸고돈다. 노봉마을의 이곳저곳에서, 또 울분의 꿈틀거림이 녹아 있는 거멍굴의 이 골목 저 골목에서 <혼불>의 소살거림을 느낄 수 있다. 꾸불꾸불한 길을 <혼불>과 함께 한 식경 정도 걷노라면 작가의 내밀한 속삭임이 들려오는 듯도 하다.

최명희는 1947년 10월 10일 전북 전주에서 아버지 최성무와 어머니 허묘순의 2남4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작가는 자신의 소설에서 ‘묘순’이라는 실명의 주인공을 등장시키기도 하며, <혼불>의 ‘효원’ 또한 허씨이다). 관향은 삭녕이며, 부친의 고향이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이다. 이 마을은 삭녕 최씨의 500년 세거지로, 입향조 최수웅은 세조 때 명신 최항의 손자이며, 그의 5대손 최온이 ‘폄재(貶齋)'라는 호를 사용하여 그의 집안은 세칭 ‘폄재집안'으로 불렸다.

오수 의견상과 오리정. '혼불' 문학기행은 전주에서 출발하여 임실, 남원으로 이어진다. 그 길은 우리의 혼과 뿌리를 찾아나서는 길이기도 하다. ⓒ유성문
오수 의견상과 오리정. '혼불' 문학기행은 전주에서 출발하여 임실, 남원으로 이어진다. 그 길은 우리의 혼과 뿌리를 찾아나서는 길이기도 하다. ⓒ유성문

소설 <혼불>은 전라도 남원땅 한 양반가문의 몰락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내용은 무너져가는 종가를 지키는 며느리 3대와 잡초 같은 삶을 이어가는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일제라는 시대적 배경과 독립운동과 같은 숨 가쁜 역사도 담고 있지만 정작 그 내용은 고난의 시대를 이겨나가는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집중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무엇보다도 감동적인 것은 그 문장이 우리말 고유의 리듬과 울림을 고스란히 살리고 있다는 데 있다.

작가는 ‘<혼불>을 사랑하는 모임’에서 ‘혼불’이란 우리 몸 안에 있는 불덩어리라고 했다. 사람이 제 수명을 다하고 죽을 때 미리 그 몸에서 빠져나간다는 혼불은 목숨의 불, 정신의 불이었다. 그러니까 존재의 핵이 되는 불꽃이다. <혼불>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재생시켰고 우리의 풍속사를 정리해 주었다. 작품의 무대는 1930년대부터 1943년까지였다. 그 이후의 현대사를 이어가기 위해서 작가는 애써 ‘완간’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그것은 근원에 대한 그리움이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그 윗대로 이어지는 분들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가를 캐고 싶었다. -최명희 ‘<혼불>을 쓴 이유’ 중에서

광한루의 야경. 춘향과 몽룡의 사랑은 밤새 오작교를 타고 노닌다. ⓒ유성문
광한루의 야경. 춘향과 몽룡의 사랑은 밤새 오작교를 타고 노닌다. ⓒ유성문

<혼불> 문학기행의 출발은 마땅히 전주여야 한다. 전주는 작가 최명희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 문학을 시작하게 되면서 자신의 뿌리가 있는 남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래서 <혼불> 문학기행을 그 뒤를 좇아가는 길이 된다. 또 전주에는 최명희문학관과 그의 생가터와 묘소가 있기도 하다.

전주에서 남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임실을 거쳐야 한다. 임실은 사선대와 치즈마을로 유명하지만, 그보다는 오수에 더 눈길이 간다. 오수에는 주인을 구하고 죽은 개를 기리는 의견비가 있는 곳이다. 그런데 그를 기념하여 의견공원에 세워놓은 의견상이 마치 ‘플란다스의 개’를 연상케 하는 것은 어인 까닭일까. 더욱 아이러니 한 것은 가까이 ‘신포집’이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보신탕집이라는 사실이다. 한때 이를 놓고 왈가왈부도 있으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의견의 전통만큼 노포의 전통도 그만큼 소중한 것은 아닐까.

남원은 ‘춘향골’이다. 마치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들머리에 오리정이 서있다. 이곳은 춘향이가 한양으로 떠나는 이도령과 애절하게 이별을 나눈 곳이다. 광한루는 춘향이와 이도령의 ‘사랑의 현장’이다. 봄이면 ‘춘향제’도 열리고 주변엔 남원의 명물인 추어탕집들이 즐비하다. 남원기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만복사지다. 만복사지는 김시습의 소설 <만복사저포기>의 무대로, 절 입구 길 한켠에 온몸은 땅 속에 묻힌 채 머리만 드러내고 있는 석인상이 기이한 듯 애처롭다.

남원 만복사지는 김시습의 소설 '만복사저포기'의 무대이기도 하다. ⓒ유성문
남원 만복사지는 김시습의 소설 '만복사저포기'의 무대이기도 하다. ⓒ유성문

 

<필자 약력>

-여행작가

-편집회사 투레 대표

-한국기록문화연구협동조합 이사

-<문향을 따라가다>(어문각)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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