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아침 일찍 신문을 읽지 않는 편이다. 평생 신문을 만들었고,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현관 앞에 배달돼 온 몇 개 신문을 치열하게 읽는 것을 오랜 습관으로 만들어온 내가 언제부턴가 이런저런 일로 게으름을 피우다 느지막하게 신문을 펼치는 것이다. 그런 나를 내 자신이 생각해도 조금은 이상하다. 대관령 꼭대기나 섬에서 아침을 맞을 때에도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신문을 찾는 것이 아니었던가.

내가 이렇게 바뀐 이유는 새벽에 신문을 읽고 불쾌한 감정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신문들은 예외 없이 누군가를 비판하는 버릇을 갖고 있다. 한국의 신문에 의하면 세상의 모든 일은 비판거리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최근의 신문들은 지독한 편파성까지 보인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파에는 한없이 너그러운 자세로 보도를 하고, 자신들이 지지하지 않는 진영에는 아주 사소한 것도 시시콜콜 시비를 건다. 때로는 악의적이기까지 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있었더라면 그 반대 정파와 그 유착언론으로부터 얼마나 심하게 야유, 독설, 비아냥거림, 훈계를 당하고, 이에 대해 본인은 또 얼마나 피나는 전투를 치를 지는 상상만 해도 끔찍할 정도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어법을 참아낼 수 있을 정도로 대범할 수 있을까.

오래 전 미 국무부 초청을 받아 6주간 East West Center에서 하는 기자 세미나 프로그램인 Jefferson Fellowship에 참여한 적이 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언론인 13명이 모여서 미국 주요도시를 돌면서 주요 인사들과 하루에 7~8시간씩 세미나를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하와이에서 시작해 미국 워싱턴DC, 뉴욕, 시카고, 오마하 그런 도시를 6주간 방문해 미국의 주요정책담당자들과 세미나를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호텔 방도 하나씩 주고 미국 공무원에 준하는 출장수당도 매일 지급됐는데, 얼마나 강행군이었는지 매일 밤늦게까지 내일 있을 세미나 주제와 관련된 전문 영어단어 공부를 해놓지 않으면 다음날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힘이 들었다. 그래서 6주 동안 한국음식을 먹을 시간도 없었고, 한국 사람을 만날 시간도 없었고, 한국어를 사용할 시간도 없었다. 미국은 정말로 빡세게 일을 시키는 사회라는 것을 절감했다.

그렇게 6주간 프로그램을 마치고 한국비행기를 타고 비빔밥을 먹으며 돌아오자니까 감개가 무량했다. 마치 무슨 큰일이라도 성취하고 돌아오는 것처럼 기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비행기에 비치된 한국 신문을 있는 대로 다 같다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읽었다. 약 3시간이 걸렸다. 한국 신문을 다 읽고 난 첫 느낌은 이런 것이었다. “아, 정글로 다시 돌아왔구나!”

한국 신문을 장악하고 있는 내용은 싸움, 다툼, 패거리짓기, 음모, 갈등 등 온통 부정적이고도 치졸한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동안 6주간 호흡했던 미국언론이나 미국사회는 그렇지 않았다. 아, 정말 이런 분위기를 바꾸지 못하면 우리에게 밝은 미래가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몰려오기까지 했다.

우리 사회에는 작은 팩트가 하나 나오면 거기에 의심, 추측, 명예훼손, 비방, 악의, ‘카더라’ 하는 내용 등등 상대방의 허물을 부풀릴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보태진다. 정치권에서 이렇게 부풀리면 언론에서는 한 번 더 각색을 한다.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의 정보가 묘한 방식으로 흘러나간다. 그래서 정치권과 언론기관과 수사기관과 사회단체와 시민들이 한 덩어리가 되는 갈등구조가 형성된다. 여기 걸려든 사람은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게 된다. 일단 걸려든 사람은 지금까지 형성한 모든 명예와 업적과 피와 땀이 한 순간에 재가 되도록 짓밟히게 된다. 여기에 말려든 사람은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한국사회이고 한국언론이다. 만인이 만인을 향해서 미움과 증오와 갈등을 쏟아내는 사회, 한국은 그런 증세가 점점 심해져가고, 언론은 이를 부추기는 매개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화합은 너무 어려운 주제가 되고 있다. 우리는 유일하게 분단된 나라에서 살고 있으면서 점점 더 분열이 가속화되어 간다. 해마다 발표되는 사회통합지수를 보면 한국의 사회포용지수는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우리 사회의 갈등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발생하는 비용이 연간 최대 246조원에 이른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27%를 갈등 해소 비용으로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교사들의 평가에 의하면 나라마다 지배하고 있는 어두운 분위기가 있는데 일본과 중국, 한국을 지배하고 그것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일본은 음란의 분위기, 중국은 탐욕의 분위기, 한국은 분열의 분위기라고 한다. 한국은 여당과 야당이,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노인과 젊은이들이 다시는 만나지도 않고 내일도 없을 것처럼 깊은 갈등 속에서 반목한다. 국회와 검찰과 특검과 헌법재판소와 법원이 모두 합당한 절차를 밟았고, 그에 따라 유죄라고 판단한 사안에 대해 무죄라고 주장하는 집단이 기승을 부리는 사회, 이를 부추기는 언론이 존재하는 사회. 그것이 오늘의 한국이다.

우리 사회 갈등의 해법은 보수와 진보, 좌와 우의 이분법적 시각에서 탈피하는 것에서 시작돼야 할 것이다. 좌와 우의 굴레에 갇히면 옳고 그름의 판단력이 흐려진다. 분열은 우리사회 최고의 적이다. 어느 진영을 어떻게 지지하든 이대로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없을 것이다.

 

필자 약력

언론인. 전 국민일보 편집인 ·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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