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평양 방문 특별수행원으로 방북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이 지난 9월 19일 오후 평양 옥류관에서 열린 오찬에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 위원장(좌측 두번째) 등 북측 인사들과 식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평양 방문 특별수행원으로 방북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이 지난 9월 19일 오후 평양 옥류관에서 열린 오찬에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 위원장(좌측 두번째) 등 북측 인사들과 식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로드]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지난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남측 기업 총수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나”라고 막말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자유한국당 측에서는 정부가 북한을 상대로 지나치게 저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비난하는 가운데, 해당 발언의 출처가 불분명하다며 정확한 팩트체크가 필요하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본지는 정진석 의원이 주장한 '리선권 목구멍 냉면'의 실체를 따져봤다.

◇ 정진석, “리선권 냉면발언, 국민 자존심 문제”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달 29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에게 “옥류관 행사에서 리선권은 난데없이 대기업 총수들 모여 앉아 냉면 먹는 자리에 불쑥 와가지고 정색을 하고 ‘아니, 지금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 이렇게 얘기를 했다. 보고를 받았을 거다. 그렇나?”라고 질문했다.

조 장관이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불쑥 온 것은 아니고 그 자리에 같이 있었다”라고 답하자 정 의원은 “경제인들이 와서 경제협력 이야기도 많이 하고 그런 걸 기대했는데 그냥 따라서 구경만 다니니까 자기네들은 좀 못마땅했던 것 아니냐?”라고 다시 공세를 이어갔다. 조 장관이 “그런 추정에 대해서는 말씀드리기 조심스럽다”라고 답하자 정 의원은 다시 “이걸 지켜보는 우리 국민들의 자존심도 지켜주셔야 되겠다”고 지적했다.

◇ 조명균 “건너들은 것. 냉면 발언 확인된 바 없다”

리 위원장 냉면 발언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지만, 정 의원은 해당 발언을 어떻게 전해 들었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출처를 밝히지 않고 있다. 정 의원은 1일 국민일보를 통해 “오래 전부터 국회 주변에서 돌던 얘기”라며 “지난달 11일 통일부 첫 국감을 마치고 조 장관과 저녁을 먹으면서도 조 장관에게 확인했다”고 밝혔다.

반면 정 의원의 주장과 달리 조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한반도평화번영포럼 창립총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저도 전달 전달해서 들은 것이다. 평양 정상회담할 때 바쁜 일정 중에 얼핏얼핏 얘기한 것”이라며 “제가 그 자리에 직접 없어서 뭐라고 말씀드리기 적절치 않다. 더 확인해보겠다”고 답했다. 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보고받은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경로는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통일부 관계자 또한 “리 위원장의 발언을 확인한 것은 아니다”라며 “식사자리를 따로 모니터링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식사를 각자 하는 상황이어서, 거기 참여하시는 분들이 정확히 아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 재계 특별수행단, “냉면 발언은 사실무근”

그렇다면 실제 당시 오찬에서 리 위원장 근처에 있었던 남측 인사들의 증언은 어떨까? 당시 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동행했던 경제인들은 정 의원의 주장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오찬 당시 리 위원장 바로 좌측에 자리했던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 1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냉면 발언에 대해 “그런 얘기는 들은 바 없다”며 “어떻게 나온 얘기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현장 분위기가 괜찮았다며 대북 투자요청도 원론적 취지의 발언이 있었을 뿐 많이 나온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또한 이날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기자들과 만나 냉면 발언과 관련해 “그런 이야기를 가지고 이러니 저러니 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한상의 관계자 또한 “그런 얘기를 듣지 못했다는 게 박 회장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 실체 없는 냉면 논쟁에 남북관계 우려 시각도

정 의원은 이번 논란과 관련해 자기 주장의 명확한 근거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조 장관이 국감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섣부르게 답하면서 리 위원장의 냉면 발언은 기정사실이 됐다. 보수성향 언론들은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대해 과도하게 포용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며 화살을 돌렸고, 자유한국당은 조 장관을 교체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문제는 해당 발언의 진위가 여전히 불분명하다는 것. 만약 실제로 냉면 발언이 있었더라도, 당시 테이블의 분위기나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결국 최근 이어지고 있는 냉면 논란과 조 장관 교체론은 실체 없는 주장위에 서있는 셈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냉면 논란에 대해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31일 국회 정보위원회 국가정보원 국정감사에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재벌총수 3∼4명에게 직접 전화를 했는데 그런 일이 없다고 말했다”며 논란을 일축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냉면 논란을 계기로 정부·여당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는 분위기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2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 지도부의 눈물겨운 노력 끝에 리선권 냉면발언이 결국 미궁 속으로 빠졌다”며 조 장관 해임을 주장했다. 실체 없는 냉면 논쟁에서 양당의 대결구도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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