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그림이 있는 풍경] 그녀의 손
[시와 그림이 있는 풍경] 그녀의 손
  • 김용국(시인)
  • 승인 2018.11.29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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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다리는 여인, 혼합재료, 52x37cm, 양희자
차 다리는 여인, 혼합재료, 52x37cm, 양희자

그녀의 손


그녀의 손이 
옥수수 한 개, 감자 한 알, 
쌀 한 줌을 익히는 동안 ㅡ

우리는 잠시 멈춘다.

익힌다는 것은
차가운 것들이 서로의 몸을 부비고
따스해지는 것,
부드러워지는 것.
나직하고 순해지면서
맛깔 나는 이야기도 구워내는 것.

그녀의 손이 분주해지는 동안
화덕은 빠알간 귓불을 수줍게 펼치고,
도란도란 불은 소리를 낸다.
튀기거나 부서지거나 섞이거나 하면서
둘도 없는 맛을 풍기게 한다.

그녀의 손이
멸치를 볶거나, 
갈치나 꽁치를 조리고
명태의 찌개를 끓일 때,
그것들의 바다보다 더 멀리 떠났던 우리들이 방향을 바꾼다.
간절한 휴식을 위해서 회항의 돛을 올린다.

그녀의 손이 펼쳐놓은 음식을 
함께 나누기 위해

우리는 먼저 
욕망의 힘을 빼고
축복의 기도를 하고
평화의 결심을 해야 한다.

그녀의 손이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그리운 곡선을 그리며 돌아온다.

 

가정의 중심은 여자라고 나는 며느리에게 자주 말합니다. 그렇다고 가정에서 남자의 역할을 폄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나는 오랫동안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교직에 있는 동안 내가 다른 학생들보다도 관심을 가졌던 학생들은 한부모 자녀들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아버지가 혼자 기르는 아이들이었습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한부모 자녀라 하더라도 어머니가 함께 하는 자녀들은 문제 학생이 거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 비해 부드럽고 섬세하며 따뜻하기 때문일 겁니다. 지각과 결석, 가출을 하고 교복과 몸을 깨끗이 하지 않은 학생들은 대부분 아버지가 혼자 양육하는 학생들이었지요. 

집은 최고의 안식처입니다. 아내나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나에게 아내는, 아버지께 어머니는 ‘집사람’입니다. 집은 여성의 상징이지요. 그리고 여성은 곡선입니다. 곡선은 용서와 화해와 사랑을 닮았습니다. 이 곡선이 만들어내는 너그럽고 순한 충만함을 직선이 감히 생각할 수 없지요. 우리 모두가 집을 안식으로 여기는 이유일 겁니다.

그리고 음식을 만드는 일은 역시 ‘차가운 것들이 서로의 몸을 부비고 따스해지는 것,/부드러워지는 것./나직하고 순해지면서‘ 생명을 만드는 일입니다. 이 정성으로 모든 존재들은 숨을 얻고 형태를 얻고 성장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욕망의 힘을 빼고/축복의 기도를 하고/평화의 결심을 해야.’하지요.

나는 남성이더라도 남성의 내면에 잠재돼 있은 여성성[아니마anima]을 꺼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녀의 손’처럼 음식을 만들어 보고 마음속으로 곡선을 그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여성성에서 좀 더 나은 미래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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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sdlqsl 2018-12-03 11:53:21
팬입니다. 좋은 시 잘 감상하고 감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