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고대 로마 의학 — 고대 제국 최후의 전성기

로마시대 의료업은 여전히 사회의 천시를 받고 있었다. 진정한 로마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외국인이나 노예, 평민에게 약을 조제해 줄 때 의식적으로 사전에 미리 정한 한 손만 사용할 정도였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학자였던 플리니우스는 박학다식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지방장관과 재정부 부장, 해군제독을 역임했으며 백과사전에 해당하는 《박물지 Natural History》를 저술했다. 서기 79년 화산을 관찰하기 위해 베수비오 화산에 올랐던 플리니우스는 화산 분출물에 화상을 입고 사망했다고 한다. 끊임없이 지식을 갈망했던 그는 호기심 때문에 목숨까지 잃게 된 것이다.

백과사전적 저서에 해당하는 《박물지》는 2만여 개의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당시의 자연과학적인 지식과 사상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박물지》에는 약용 식물학 분야의 지식을 비롯해 각종 질병의 치료방법 등 의학 관련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 특히 유전형질이 한 대를 걸러 나타나고 출생 후 성의 변이가 나타난다는 등 흥미로운 내용도 찾아볼 수 있다. 플리니우스는 당시의 보건위생 관련 내용도 기록하고 있는데 현대 의학지식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해석해 놓은 것도 있다.

이 밖에도 미신, 예언, 마술치료 등을 대거 수집해 놓은 것으로 미루어 그가 이와 같은 내용을 일말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하긴 했지만 자신들의 귀중한 문화유산은 대부분 상실해 버렸다. 심지어 《박물지》는 로마인의 우매함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셀수스(Celsus)가 부유한 지주들을 위해 저술한 《의학 De medicine》백과전서가 《박물지》보다는 의학적 공헌도가 더 크다. 이 백과전서에는 농업, 군사이론, 철학, 법률학, 그리고 의학 등이 총망라되어 있다. 의학 관련 부분이 현재까지 유일하게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전문이 라틴어로 되어 있다. 이 부분은 14세기 교황 니콜라스 5세가 발견하여 1478년 플로렌스에서 출판했다. 이 책에는 고대에 유실된 의학저술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초기 알렉산드리아시대와 초기 로마시대의 귀중한 자료를 볼 수 있다.

셀수스는 이 책에서 의학의 체계적 분류를 시도했다. 이에 그리스 호메로스시대 이후의 의학 발전사를 비롯해 학파, 70여 명의 의사 명부 등을 기록했으며 이론과 실천의 균형적 발전을 강조했다. 그러나 당시 의사들에게 이 책은 무용지물이었다. 로마시대의 의사는 가업으로 이어지거나 사제지간에 전수되었으므로 제자들은 스승을 따라 진료소나 또한 환자를 찾아 떠돌며 의료행위를 했다. 즉 배움과 의료행위가 동시에 이루어졌다. 남녀를 막론하고 의사에 자원하거나 의사를 자칭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의료행위를 할 수 있었으며 나라에서 특별히 간섭하지도 않았다. 일반적으로 의사들은 인문지식에 무지했으며 이러한 상황은 특히 외과의사들이 더 심해서 오직 경험에 의해서만 치료를 하기 일쑤였다.

이 책 1권은 음식과 위생에 대해 다루고 있다. 특히 청결을 강조했다. 상처 부위는 깨끗이 씻은 후 식초를 발라 소독의 효과를 거두었다. 2권은 병의 원인, 증세, 예후에 대해 논하고 있다. 3권에는 발열과 이에 대한 치료가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특히 말라리아의 발열증상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고 있으며 염증의 4가지 증상으로 붉고 부으며 열이 나고 통증을 동반한다는 특징을 기술했다. 4권에는 해부학 지식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기침, 이질, 관절염, 근육경련, 전신부종, 척추후만증(척추가 휘어지는 증세), 편도선염, 비장비대증 등에 대한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 5권은 약물치료와 외상치료를 다루고 있다. 6권은 피부병과 궤양에 대한 내용으로 치질, 물사마귀, 음경암 등 40여 종의 피부병이 기술되어 있다. 셀수스가 명명한 피부병 가운데 현재까지 그대로 사용되는 것도 많이 있다. 7권, 8권은 외과, 골절, 탈골 등을 다루고 있어 더욱 중시되었다. 실질적인 면을 따졌던 로마인들이었기에 외과를 특히 중시했던 것이다.

여기에 기록된 사례를 보면 먼저 손가락을 이용해 편도선을 적출하는 수술, 그리고 랜싯, 불에 달구는 도구, 관상톱 등 외과수술 도구를 이용해 결석을 잘게 부수는 수술, 탈장, 부종 등을 치료하는 방법 등이 기술되어 있다. 셀수스는 최초로 심장병과 정신병을 언급했으며 결찰술을 통해 동맥의 출혈을 막는 방법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상처처리 방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즉 상처 내부를 깨끗하게 처리하여 혈액이 응결되는 현상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염증과 고름이 생겨 상처가 잘 낫지 않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상처 주변을 꿰매거나 집게 같은 것으로 고정을 시키면 회복이 빨라진다고 기록해 놓고 있다. 셀수스가 기록한 외과 자료는 히포크라테스보다도 더 우수했다. 현재 소위 그리스 의학, 알렉산드리아의 해부학, 외과학이라고 불리는 지식은 모두 셀수스의 바로 저서 《의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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