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 의술이야기] 로마제국의 요양제도
[동서고금 의술이야기] 로마제국의 요양제도
  • 강선주, 이문필 등 20인(빅북 제공)
  • 승인 2018.11.2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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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고대 로마 의학 — 고대 제국 최후의 전성기

알렉산더제국을 계승한 로마는 고대문명 제국의 최고 권좌에 올랐다. 로마제국은 방대한 영토는 물론 정치, 사회규범까지도 이미 완벽한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로마에는 법률이 제정되고 원로원이 탄생했으며 공공위생 개념이 등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최고의 과학자들로 손꼽혔던 바로(Varro), 아그리파(Agrippa), 세네카(Seneca) 등의 연구 범위도 지리, 원예, 의학의 범위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들은 사물에 대한 새로운 탐색을 시도했으나 과학실험에는 무관심했다. 서기 43년에는 지구 중앙에 열대지방이 분포하고 남반구와 북반구에 각각 온대지방이 분포한다는 것을 표시할 수 있을 정도였다. 여전히 물시계나 해시계로 시간을 계산했으며 지리학 이외의 학문은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룩하지 못했다. 따라서 수준 높은 그리스 문명이 로마에 유입되면서 과학, 예술 영역에 큰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기원전 293년 로마에 페스트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당시 로마의 의학은 여전히 신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로마 신들의 힘으로 병을 극복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들은 그리스 신의 힘을 빌고자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으로 사절단을 파견했다. 그들이 로마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티베르 강에 다다르자 그리스 신전에서 구해온 ‘신성한 뱀’이 갑자기 강물로 뛰어들었다. 기이하게도 이때부터 페스트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 후로부터 그리스 의사들이 로마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의사라는 직업을 매우 천시했다. 특히 고위계층이나 자유 시민계층은 의사를 볼품없는 직업으로 여겼기 때문에 노예나 포로들이 이를 담당했다. 과거 로마의 소박했던 시절을 그리워했던 로마 최초의 집정관 카토는 그리스 문명을 모두 거부했다. 물론 의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리스 의사들이 로마인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가 자신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인들의 지식 따위를 받아들인다면 그날이 바로 로마의 멸망일일 것이다. 특히 그리스 의사들은 자신들의 의학으로 야만인들을 멸망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들에게 야만인이란 바로 우리 로마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그리스 의사들을 조심해야 한다.”

카토는 로마에 있는 어떤 식물로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식물은 바로 양배추였다. 카토는 “양배추는 만병통치약이다. 타박상을 입었을 때 양배추 즙을 바르면 바로 회복되고 궤양이나 유방암에 걸렸을 때도 양배추를 갈아 치료할 수 있다.”라며 그 효능을 굳게 믿었다. 그러나 결국 그의 이러한 고집 때문에 아내와 아들이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카토는 가족들이 죽는 한이 있어도 외국 의사를 청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반해 로마의 최고 권력층은 우수한 그리스 의사를 거부하는 것은 곧 자신의 건강을 해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원전 91년 로마에 들어왔던 아스클레피아데스(Asclepiades)는 로마에서 최초로 받아들인 의사였다. 그는 성격이 원만하고 의술이 뛰어나 로마의 유명한 문인이자 정치가 키케로(Cicero), 집정관 크라수스(Crassus)의 총애를 받았다. 이것은 아스클레피아데스의 치료방법에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체내에는 수많은 원자가 순환하고 있는데 이 순환이 원활하지 않을 때 병이 생긴다고 여겼다. 이에 환자에게 목욕, 안마, 보행, 마차몰기 등을 시켜 체내의 무뎌진 원자들을 자극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당시 점술가들이 환자들에게 불결하기 짝이 없는 혼합약을 강제로 먹이던 상황에서 그의 치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스클레피아데스는 환자에게 보통 2~3가지 치료법을 동시에 적용했다. 또한 ‘신속, 신중, 신바람’이 그의 3대 치료 신조였다. 아스클레피아데스는 당대 로마의 가장 유명하고 가장 부유하며 가장 세련된 의사가 되었다. 지금까지도 그와 관련된 수많은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아마도 후세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들로 추정된다. 한 번은 그가 어떤 귀족의 장례식을 갑자기 중단시키고 곡을 하고 있던 가족들 앞에서 ‘시체’를 살려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유산과 작위를 상속받지 못하게 된 귀족의 가족들은 오히려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아스클레피아데스는 히포크라테스의 체액설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최초로 기관지 절개수술을 시도하고 급성병과 만성병을 구별하는 등 의학에 기여한 공로가 적지 않았다. 그는 또한 병의 주기를 관찰할 줄 알았으며 말라리아의 발열증상을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해 놓았다. 그동안 어두운 방안에 격리 수용되었던 정신병자들을 햇살이 비치는 밝은 방으로 옮기기도 했다.

기원전 46년 카이사르(Caesar, BC 100~44) 황제는 모든 의사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해 그들의 공로를 치하했다. 그 해 로마에는 큰 흉년이 들어 대부분의 외국인을 추방했으나 그리스 의사들은 예외를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포상금까지 두둑이 받았다. 독재자였던 카이사르는 수중의 방대한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능력 있는 의사들이 많이 필요했다. 따라서 외국인이나 심지어 적군이더라도 의사를 우대했다. 그를 보좌한 의사 가운데는 벌써 세균의 개념을 인지한 사람도 있었다. 그는 세균에 대해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작은 생물이 있는데 코로 들어가 인체의 질병을 일으킨다.”라고 정의했다.

카이사르 황제가 암살당한 후에도 아스클레피아데스의 제자였던 무사스는 오히려 더욱 중용되었다. 당시 로마의 아우구스투스(Augustus) 황제는 고질적인 류머티즘을 앓고 있었다. 수많은 의사들이 온갖 방법을 동원해 치료했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다. 이에 무사스는 황제에게 양배추 즙과 냉수를 대량 복용하게 했다. 그의 이 대담한 치료법으로 황제는 건강을 되찾았으며 그에게 수많은 상금을 내린 것은 물론, 서기 10년에는 의사들의 세금을 면제하는 칙령을 특별 반포했다.

로마는 군사의학 발전에 매우 큰 공헌을 했다. 전쟁이 빈번하게 발생했던 로마에서는 전쟁 시의 응급구조 제도가 확립되었다. 로마 군대는 보병 1대대(420명으로 구성)마다 한 명에서 네 명까지 의사를 배정했으며 매 군단, 또는 열 개 보병 대대에는 반드시 고위 외과 군의관을 두었다. 이는 그리스 국왕이나 장군이 부상을 당해 신에게 구원을 청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의료행위는 자비의 산물이 아니라 군대 병력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제왕절개술로 태어난 카이사르(14세기 삽화)윌리엄 세익스피어의 '줄리어스시저'에는 카이사르가 간질을 앓고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 병약한 존재로 표현하였다.
제왕절개술로 태어난 카이사르(14세기 삽화)윌리엄 세익스피어의 '줄리어스시저'에는 카이사르가 간질을 앓고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 병약한 존재로 표현하였다.

네로 왕조시대의 외과의사였던 디오스코리데스(Dioskorides, 40~90)는 원정 중에 수많은 약재를 수집해 서기 77년 《약물학》이란 저서를 남겼다. 이 저서에는 약의 조제, 진위 감별, 용도, 용량, 기능 등의 내용이 실려 있으며 600여 종의 식물이 소개되어 있다. 현재까지도 100여 종에 육박하는 약재가 현대 약물백과사전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는 디오스코리데스가 최초로 발견했다고 알려진 아편도 포함되어 있다.

로마에는 요양제도가 확립되어 있었다. 전쟁이 장기간 계속되었으므로 부상당한 병사들을 로마로 돌려보내 쉬게 할 수 없었다. 결국 전문적으로 이들을 수용하는 기구를 설립하게 되었으며 뒤에 군병원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병원은 ‘긴 복도식 구조’를 띠고 있었으며 원활한 통풍을 유지하는 등 관리에 신경을 썼다.

지금도 도나우 강과 라인 강변에는 이와 같은 초기의 요양시설 유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요양시설은 병실을 비롯해 회복실, 욕실, 약방, 숙소 등이 구비되어 있었으며 의사가 아닌 군대에서 관리했다. 아우렐리우스(Aurelianus, 270~275 재위)는 270년 칙령을 반포하여 다음과 같이 요양시설에 대한 관리를 강화했다.

“모든 병사는 무료로 치료를 받는다. …… 병원에서는 정숙해야 한다. …… 소란을 일으킨 자는 태형(笞刑)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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