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 의술이야기] 로마제국의 공중위생
[동서고금 의술이야기] 로마제국의 공중위생
  • 강선주, 이문필 등 20인(빅북 제공)
  • 승인 2018.11.3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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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고대 로마 의학 — 고대 제국 최후의 전성기

최초로 공중위생을 제도화한 민족은 유대인이었다. 로마는 이 공중위생의 범위를 행정과 건축 분야에서 확대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기계를 잘 다루었던 재능을 발휘해 하수도, 하천 유량 조절 시스템 등 발달된 수로 체계를 확립했다. 기록상으로도 상수도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도시도 로마로 확인되었다. 로마에는 14개의 상수도가 있었으며 하루 용수량이 100갤런(약 380리터)이 넘었다. 이는 현대의 위생학상 요구되는 1일 용수량의 수배에 달한다. 로마의 관개 시설은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버금갈 만큼 불가사의한 일로 여겨지고 있다. 하수도 시설은 이보다 더 이른 시기인 기원전 5~6세기경에 만들어졌으며 그 유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로마에 흐르는 티베르 강은 식수로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로마 정부는 사빈 산의 샘물을 식수로 지정했다.

당시 로마에는 865개의 공중목욕탕과 800개의 개인목욕탕이 존재할 정도로 목욕탕이 성황을 이루었다. 기원전 3세기 무렵에는 욕탕이 3000간이나 되는 대형 공중목욕탕이 등장해 수천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었다. 목욕탕 부근에는 체육관, 경기장, 도서관, 휴게소, 화원, 식당, 집회장까지 들어서게 되었다. 생활오수는 체계적으로 설계된 배수 시설을 통해 배출되었으며 정부에서 보수를 받는 전문 관리인이 관리했다. 로마는 늪지대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수해를 자주 입었으며 도시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번영과 함께 오염도 심해졌으므로 공중위생이 절실했다. 따라서 식품에 대한 전문 조항과 규정이 정해져 있었다. 육류는 통풍이 잘 되는 곳에서 판매해야 했으며 부패한 식품의 유통을 엄격히 금지했다. 로마 최초의 법전인 《12표법》에는 성안에 시신을 매장하는 것을 금하고 기녀, 출산, 낙태를 엄격히 관리하는 등의 규정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전염병을 막기 위해 로마 정부는 행정기구에 속하는 ‘의무총독(醫務總督)’을 설치했다. 이 기관에서 실시하는 시험에 통과하면 정부에서 허가한 의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 이로써 사회적으로 천시 받던 의사라는 직업은 법률의 보호를 받으며 일정한 권리를 보장받게 되었다. 로마제국 후기에는 의사는 환자를 돌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치에 참여해 통치자와 밀접한 관계를 맺기도 했다.

깨끗한 식수, 오염되지 않은 식품 공급은 전염병을 예방할 수 있었으며 도시생활의 위험요소를 크게 줄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현대 의학의 관점으로는 일종의 도시 복지정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초기의 로마 의사들도 그리스 의사들처럼 왕진 가방을 들고 다녔다. 그 속에는 약상자와 아스클레피오스의 형상이 새겨진 상아 용기도 담겨 있었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의사로 자칭하기만 하면 되었다. 200년이 되기까지 의사는 등기제도도 없었고 국가의 감독도 받지 않았다. 또한 그들의 자격을 심사하는 제도도 없었다. 구두공, 이발사, 목수처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의사가 될 수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연히 돌팔이 의사들이 속출했다. 이 가운데 테살로스(Thessalus)라는 떠돌이 의사가 특히 유명했다. 그는 본래 방직공의 아들이었으나 로마에 들어온 후 누구든지 6개월 내에 의사로 만들어줄 수 있다고 큰 소리쳤다. 그는 히포크라테스를 ‘가련한 무식쟁이’로 치부했으며 자신의 묘비에 ‘모든 의사의 정복자’라고 새겨 놓았다고 한다. 플리니우스는 테살로스가 수많은 하류계층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기록한 바 있다. 그렇다고 테살로스에게서 배울만한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임상 경험을 중시해 자신이 환자를 치료하는 자리에 언제나 수많은 제자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약사’들의 약 장사 행위 또한 문란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들은 제멋대로 약을 조제해 팔아 도처에서 원성을 사고 있었다. 심지어 ‘독약제조자’라고 불릴 정도였다. 사람들은 약의 명칭이 독특하고 값이 비쌀수록 쉽게 현혹되었다. 로마의 천재의사 갈레노스가 부잣집 종의 종양을 고쳐준 적이 있었다. 부잣집 주인이 갈레노스에게 비방을 가르쳐 달라고 청했는데 그가 쓴 약이 모두 값싼 약임을 알고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갈레노스가 거지한테나 쓰는 값싼 약을 썼겠느냐며 진짜 비방을 숨기고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원망했을 정도였다. 로마에서는 약을 잘못 복용해 숨지는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죽는 사람보다 많았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로마 정부는 점차 의학교육을 중시하기 시작했다. 의학교육은 ‘스승과 제자’의 전형에서 ‘교사와 학생’의 전형으로 바뀌게 되었다. 로마제국 말기, 3세기경에는 진정한 의미의 ‘의학교’가 생겨났다.

알렉산더 세베루스 황제의 통치 기간에는 칙령을 반포해 의사에게 의학을 가르칠 권리를 부여했으며 의학교를 설립했다. 갈레노스, 히포크라테스 등이 저술한 저서를 교재로 삼아 해부학(동물해부), 검시(檢視), 약물 등의 지식을 가르쳤다. 또한 의사 자격이 있는 사람만이 개업할 수 있으며 치료기술과 의학지식이 없는 사람이 의료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후 로마정부는 로마에서 의학을 가르치는 사람은 외국인을 포함해 모두 시민권을 얻도록 하는 규정을 반포했다.

당시의 의학교는 이미 직업적 성격이 강한 대규모 조직을 형성했다. 이 학교를 졸업한 사람은 나라의 합법적인 의사 자격을 얻게 되었다. 우수한 의사가 수없이 배출되면서 의사 직업은 고도의 전문성을 띠게 되었다. 비뇨기과, 산부인과, 안과 의사를 비롯해 이과(耳科), 수의학과, 치과 등이 생겨났으며 여성의사들도 많이 탄생했다. 군의관은 고대 의학에 있어서 최고의 권위를 상징했다. 의사들이 개인적으로 세운 사립병원은 중세에 이르러 공립병원으로 발전했으며 부자들은 개인 주치의를 두기 시작했다. 세계 최초의 자선 공립병원은 4세기에 한 노부인이 일반 시민들을 위해 세운 병원으로 로마에 위치하고 있다. 이는 세계 최초의 병원이라고 할 수 있다. 중세, 특히 11세기 이후에는 수많은 병원들이 속속 등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로마의 공중위생 체계도 훗날 몇 차례 유럽을 휩쓴 대규모 전염병을 막지는 못했다. 갈레노스와 같은 사고력과 관찰력이 뛰어난 의사가 수많은 저술을 남겼지만 제대로 계승되지 못함으로써 의학은 ‘교조주의’로 흐르게 되었다. 대규모 전염병이 만연하는 가운데 의학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자 의학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감은 크게 떨어졌으며 다시 종교, 귀신, 마술 등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결국 로마가 멸망하고 기독교가 부흥하면서 의학은 다시 암울한 시대로 접어들었으며 이러한 풍조는 문예부흥이 일어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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