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 의술이야기] 산부인과 창시자
[동서고금 의술이야기] 산부인과 창시자
  • 강선주, 이문필 등 20인(빅북 제공)
  • 승인 2018.12.0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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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고대 로마 의학 — 고대 제국 최후의 전성기

고대 의사들은 임종 직전의 환자와 출산이 임박한 임산부를 가장 꺼렸다. 임종 직전의 환자는 그나마 신중을 기할 수 있었지만 임신과 출산은 실로 그들 능력 밖의 일이었다. 피임약도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야 겨우 발명되었다. 고대 이집트에는 피임 방법을 개발해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1869년 영국의학총회의 연례회의 석상에서는 “임신과 출산을 가로막는 모든 발명은 저급하기 짝이 없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1955년 미국의 유명한 산아제한주의자 마거릿 생어(Margaret Sanger)의 영향을 받아 핀커스(Gregory Pincus) 박사는 그의 동료들과 최초의 피임약을 개발했다. 마거릿은 당시 사회풍조를 저해한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은 도덕, 윤리, 사회풍조 등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여성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집안에 구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임신과 출산에 무지할 수밖에 없었다. 출산에 있어서는 점술가와 산파의 기술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고대에 이미 제왕절개 수술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산모가 이미 사망했거나 죽기 직전에 행해지던 방법이었다. 그때까지도 수정(受精)과정에 대한 생리적 지식은 무지한 상태였다. 물론 ‘경험 의학’의 발전으로 의사들은 일부 태아의 위치가 난산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러나 태아를 받아내는 일은 여전히 산파의 몫이었으며 의사는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일부 의견을 건의하는 정도에 그쳤다.

임신한 여성을 그린 동양화. 예로부터 임신과 출산은 도덕, 윤리, 사회풍조 등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임신한 여성을 그린 동양화. 예로부터 임신과 출산은 도덕, 윤리, 사회풍조 등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고대 로마제국에 이르러 사회 전반에 걸쳐 성 개방 풍조가 만연했다. 고대 학자들이 ‘음란의 도시’라고 개탄했던 로마에는 도처에 매음굴이 난립하고 있었다. 클라우디우스(Claudius, 41~54 재위) 황제의 왕비 메살리나는 금발의 가발을 쓰고 유두에 금장식을 한 채 문 앞에 서서 거리를 지나가는 모든 사람을 유혹했다고 한다. 여성은 더 이상 집안에 구속되지 않았으며 드러내놓고 주색을 즐길 정도로 방탕한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러한 사회풍조 속에서 원하지 않는 임신을 피할 길이 없게 된 여성들이 몰래 낙태를 시도하다가 사망하는 사고가 줄을 이었다. 방탕한 생활로 뜻하지 않은 곤란한 지경에 직면한 여성들 사이에서 피임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고 이들은 의사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갈망하게 되었다.

그리스 에페수스의 소라누스(Soranus)는 산부인과의 창시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의학 교육을 받고 로마에서 40년 동안 의술을 펼쳤다. 그의 논문은 각종 미신을 잠재우는 역할을 했으며 임신, 피임, 낙태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또한 그의 사상은 체계적이고 상당 수준 현대화된 면모를 보이고 있어 향후 1500년 동안 이 분야의 교과서가 되었다.

소라누스는 자궁과 질에 대해 매우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자궁은 일종의 컵 모양을 하고 있으며 성교와 월경을 할 때 열린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월경, 임신과 출산, 피임, 임신중독, 산후조리, 분만 후 조리, 신생아 보호, 자궁출혈, 난산의 원인, 부적절한 태위(胎位)의 교정법, 개두술(craniotomy: 태아의 머리를 바수어 자궁에서 추출하는 수술), 태아 적출술(출산과 같은 방법으로 태아를 끄집어내는 방법), 태아말살(자궁 내의 태아를 각종 도구로 찧은 후 핀셋으로 집어내는 방법), 자궁종양, 성병, 임질 등에 대해 논술했다. 히포크라테스는 임신 중절을 원한다면 두 다리를 쭉 편 상태에서 마구 뛸 것을 권했다. 그러나 소라누스는 인공적인 유산을 매우 혐오했다. 그는 지방 또는 다른 혼합액체에 적신 모직물을 자궁에 집어넣는 피임 방법을 권했다.

소라누스는 소아과 분야의 발전에도 큰 공헌을 했다. 신생아는 출생한 지 3일째부터 모유 수유를 하며 처음 이틀 동안은 희석하거나 끓인 꿀을 먹이도록 했다. 이밖에도 이유(離乳), 치아 성장, 걸음마 교육 방법 등과 함께 다양한 소아 질병 예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또한 급성질병, 골절에 관한 저서를 남겼으며 그의 저서는 수 세기에 걸쳐 수많은 학자들이 활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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