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그림이 있는 풍경] 병원에 가다
[시와 그림이 있는 풍경] 병원에 가다
  • 김용국(시인)
  • 승인 2018.12.13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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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리 가는 막차, 캔버스 위에 유화, 50x44cm, 박용진
상리 가는 막차, 캔버스 위에 유화, 50x44cm, 박용진

병원에 가다


병원에 가면 병이 하나 더 늡니다.
진찰하던 의사가 먹는 약에 약을
하나 더 권하기 때문이지요.
겉만 멀쩡하지 속은 망가진 게 분명합니다.

마음이야 청춘에 비긴다고 호기를 부리지만,
몸은 약이 없으면 쉬 시들고 말겠지요.

친구들끼리 육십이면
노인정도 못 가는 나이라고 말하지만,
한 갑자甲子의 생이 짧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백로白露가 지나면 가을이라지요.
어딜 가도 들녘에는
둥글둥글한 열매가 만국기처럼 펄럭이는데,

지금 나는 가을인가요.
아님 이미 겨울의 초입에
서 있는가요.

 

몇 해 전 지방을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갑자기 배가 아파서 시장에 있는 병원을 찾았는데 그때 충격이 지금도 있습니다. 병원에 들어갔을 때 병원에 있는 분들은 아마도 간호사 빼고 모두가 호호백발 노인들이었습니다.

젊었을 때는 늙음과 죽음이 나와는 관계가 없는 거였지요. 있어도 멀리 아주 멀리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다가 내 주변 친구의 부모님이나 친척, 가까운 어른들의 부고를 받기 시작하면 죽음이 빠른 속도로 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을 연락받으면 깜짝 놀랍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지요. 일상으로 돌아와 보면 죽음은 다시 나와 관계가 없는 것이 됩니다.

머리칼이 점점 희어지고 기억이 깜빡거리기 시작합니다. 알던 단어들이 입까지 오지 않고 머릿속에서만 맴맴 합니다. 생각은 아직 젊은 것 같은데 행동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조금 아픈 것은 며칠 집에 가만히 있으면 나았는데 이제는 병원에 다녀와야지만 차도가 생깁니다.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이 늘면서 이게 늙는 것이구나 합니다. 죽음이 멀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몇 해 전 노인들만 가득했던 지방의 병원을 떠올립니다. 어느덧 나도 그 노인 중에 한 노인이 된 게지요.

점점 늙어 언젠가는 누구의 도움에 의지하여 살아가야 하는 때가 옵니다. 그렇게 늙고 죽는 겁니다. 그러나 죽는다는 것을 의식하는 순간 삶은 더욱 값지게 변하지 않을까요.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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