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 의술이야기] 페스트가 초래한 문명의 위기
[동서고금 의술이야기] 페스트가 초래한 문명의 위기
  • 강선주, 이문필 등 20인(빅북 제공)
  • 승인 2018.12.07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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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중세의 의학 — 암흑시대의 예고

온갖 전염병, 특히 페스트의 만연은 로마제국의 멸망을 재촉했다. 395년에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열되었으며 서로마는 5세기경 게르만, 프랑크, 서고트, 반달 등의 침입으로 멸망했다.

그 후 서로마는 이민족들에 의해 사분오열되었으며 이민족의 침입을 받은 로마 시민들은 불안과 공포에 휩싸였다. 당시 그리스 의학이 점차 쇠퇴하면서 로마 의학의 전성기도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진리와 과학에 대한 갈망이 퇴색하면서 찬란했던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의 문명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로마가 멸망에 이를 무렵 유목민족들이 로마에서 활보하기 시작했으며 대규모 페스트가 세 차례나 만연했다. 6세기 동로마제국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 황제시대에 처음 발생하여 ‘유스티니아누스 페스트’라고도 불리는 이 전염병은 로마 전역에서 1억에 가까운 목숨을 앗아갔으며 반세기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당시 전염병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시대적 요인을 살펴보면 첫째, 도시에 지나치게 많은 인구가 밀집되어 도시환경이 매우 불결했고 둘째, 동쪽에서 서쪽으로 인구의 대이동이 시작되었으며 셋째, 십자군원정(1096~1291, 8회) 등 전란이 끊이지 않았다.

전염병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었지만 의학은 이에 속수무책이었다. 특히 페스트는 도시 전체를 말살시킬 만큼 위협적이어서 페스트가 유행하면서 논밭이 황폐해지고 열 가구 가운데 아홉 가구가 텅텅 빌만큼 비참한 상황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돌아갈 곳도 잃고 거리를 배회하며 전염병의 공포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페스트에 걸리면 온몸에 물집과 고름이 생기고 붉은 반점, 흰 반점이 돋았으며 출혈과 질식으로 목숨을 잃게 되었다. 천연두, 선페스트(腺pest: 오염된 쥐벼룩에 물린 뒤 물린 부위에 종창이 나는 것을 시작으로 발열, 저혈압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병), 성홍열, 콜레라, 유행성 발진티푸스, 디프테리아 등 전염병에 속하는 이러한 병들의 공통점은 바로 높은 사망률이었다.

의사들은 이와 같이 파괴적인 질병 앞에 속수무책이었으며 아무도 과학적, 합리적으로 질병의 과정을 연구하려 들지 않았다. ‘세상의 빛’이라고 불리던 철학도 이미 그 의의를 상실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점성술사들이 다시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르네상스시대의 독일 화가 뒤러(Albrecht Dürer)의 1484년 목각 작품에는 토성, 목성, 화성이 전갈자리에서 만나 공기를 오염시킴으로써 매독이 유행하게 되었다는 내용이 묘사되어 있다. 사람들은 전염병이 만연하는 이유도 별자리가 불길해졌기 때문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천체는 신령과 필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신령스런 별자리에 의지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바빌론과 앗시리아에서 기원한 점성학에 빠져들었다. 세상의 모든 일, 특히 인간의 운명이 하늘의 별자리에 달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즉 인체의 오른쪽은 태양이 관장하고 왼쪽은 달이 관장하며 금성이 목과 배 부위를 관장한다고 여겼다. 의사는 먼저 천문학에 통달해야 한다는 점성학 성향의 의사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천문 지식이 있는 의사는 신체 각 부위를 이에 상응하는 별자리에 견주어 질병의 유형과 특징을 설명했다. 아울러 자연에서 어떠한 약을 취하여 병을 치료할 수 있는지 알려주었다.

또한 사혈요법 등 외과수술은 반드시 별자리를 따져 시행해야 했다. 사혈요법을 실시한 인체 도안에는 신체 각 부위에 사람의 열두 띠를 상징하는 동물의 그림을 표기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사혈요법을 실시할 최적의 시기와 최악의 시기를 비롯해 질병의 예방법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기독교가 흥성하면서 새로운 세계관이 대두하기에 이르렀다. 즉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은 천당이며 이 모든 것을 신에게 의지해야 한다는 사상이었다. 심판, 천국, 사망 등의 개념이 사람들의 뇌리 속에 깊이 박히게 되었으며 영혼은 존중하고 육체는 천시하는 의식이 대두했다. 기독교 사상에 따르면 만약 육체가 영혼의 선행을 방해하면 사망에 이른다고 했다. 인간은 죄를 씻기 위한 목적으로 사는 것이며 질병은 악에 대한 처벌이므로 누구나 감수해야 했다. 이러한 복음이 전파되면서 기독교는 의학의 새로운 인도주의적 모습을 선보였다. 즉 빈부, 신분, 인종, 계급에 관계없이 누구나 질병에서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교도의 의학이 무시무시한 전염병 앞에 속수무책일 때에도 기독교는 자애와 사랑으로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다시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의학이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오로지 기도에 희망을 걸었다. 기독교 선교사들은 가난한 마을과 오지를 다니며 영혼과 육체의 구세주인 그리스도만이 가장 존귀한 의사라고 전파했다.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 그리고 복음을 믿으면 질병과 장애, 고통에서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질병의 원인을 묻는 행위조차 죄악에 해당하며 의사들의 약 처방, 수술 등과 같은 치료 행위도 신의 영역을 간섭하는 것이므로 죄악이라고 여겼다.

기독교가 흥성하면서 의학도 스콜라 철학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8세기에 접어들어 샤를마뉴(Charlemagne, 742~814) 대제가 궁정과 각지의 수도원에 신학원(schola, 스콜라)을 설립해 왕족과 귀족 자제들에게 고전철학을 가르치도록 했다. 이때부터 기독교 교의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포함되었다. 하나님이 아담의 몸에서 갈비뼈를 취해 하와를 만들었을 때 아담은 통증이 없었을까? 그렇다면 아담의 갈비뼈는 스물세 개이고 하와의 갈비뼈는 스물다섯 개일까? …… 이와 같은 의문점들이 스콜라학파의 핵심 주제로 떠올랐다. 스콜라철학은 의학의 발전을 더욱 어둡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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