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아랍 의학 - 알라의 음성

연금술은 세계 각국에서 고루 발달했다. 연금술이 발달한 목적은 값싼 금속을 귀금속으로 바꾸고 불로장생의 약을 만들어내는 데 있었다. 아랍의 연금술은 이집트에서 전해졌다는 설과 중국에서 전해졌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중국은 최초로 연금술과 관련된 내용을 기록으로 남겼다. 비잔틴의 그리스인과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아랍인들은 모두 중세 초 중국과 왕래했다는 기록이 있다. 연금술의 용어도 중국 도교 저서에 나오는 용어와 공통점을 보이는 것들이 많다.

무수한 실험을 거치면서도 연금술의 본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이 과정에서 화학의 기초가 형성되었다. 증류, 승화, 결정, 여과 등을 통해 다양한 약을 조제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전문 약국이 등장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지금 서양에서 사용하는 화학 용어 가운데는 에틸알코올, 알칼리, 알칼로이드, 알데히드, 화학(Chemistry), 증류기(distiller) 등 아랍어에서 유래한 것들이 매우 많다.

화학의 시조로 불리는 아랍의 유명한 연금술사 게베르(Geber, 본명은 자비르 이븐-하이잔(Jabir ibn-Haijan))는 8세기 무렵에 태어났다. 그는 동양의 연금술을 유럽에 전파해 이염화수은(HgCl2), 질산(HNO3), 질산은(Silver Nitrate)등을 질병 치료에 활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증류기를 발명해 여과, 승화, 증류의 과정을 처음으로 시도했으며 혈액과 대소변을 검사하기도 했다.

아랍인의 의학지식은 대부분 그리스로마의 고대 문헌에서 얻은 것이다. 그러나 약재와 관련된 지식은 아랍에서 시작되었다. 영토가 확장되면서 아랍인들은 새로운 의학, 약학 관련 지식도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은 이집트, 아프리카, 스페인, 인도, 페르시아 등지에서 다양한 식물의 뿌리, 줄기, 잎사귀, 종자, 나뭇진 등을 채집해 정리한 후 보관했다가 새롭고 신기한 약재들을 만들어냈다. 에틸알코올, 계피, 감로, 비소, 용연향(향유고래에서 채취하는 송진 비슷한 향료), 장뇌, 발삼, 붕사(붕산나트륨의 결정체) 등이 모두 이에 속했다. 당시 페르시아에서 제공되는 약재가 세계 6대 도시에서 제공되는 것보다도 많았다고 한다. 라제스, 아비센나 등 뛰어난 의사들은 다양한 식물을 이용해 수많은 질병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해 이 분야에 깊이 파고들었다. 그들은 화학적 요령과 기계까지 동원해 당의정, 은박 포장의 환약 등 달콤한 약을 만들어냈다. 심지어 약에 장미 향수를 넣어 향기가 나도록 한 것도 있었다. 이밖에도 팅크, 연약(가루약에 시럽·꿀을 섞은 달콤한 약), 시럽, 발삼, 경고(단단한 고약), 연고 등을 발명했다. 약의 정제 과정이 발전하면서 합성화학(종류가 다른 화합물을 더 간단한 원료로부터 합성하는 분야)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로써 약학은 빠르게 의학에서 분리되었다. 약사들은 명망 높은 기술자로 인정받았다. 정부의 법령에서도 약제사의 지위를 특별히 규정할 정도였다. 약의 조제는 더 이상 의사들의 영역에 속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독약과 독이 있는 성분의 약재 판매를 엄격하게 규제했으므로 약제사는 반드시 의사의 지시에 따라 약을 조제해야 했다. 이러한 규정들이 등장하면서 전문약사제도의 탄생을 앞당기긴 했지만 약사들이 완전히 약방의 통제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아랍 상선은 대규모 약재를 이탈리아로 운반하기도 했으며 15세기 초에는 중국 명나라 정화(鄭和, 명나라의 환관으로 1405년부터 일곱 차례 해상 원정을 실시한 인물)의 함대가 아랍에서 대규모 약재를 구입하고 의학지식을 교류했다고 한다.

아바스 왕조는 9세기 무렵 바그다드에 세계 최초의 병원을 설립한 후 1세기 동안 5개의 병원을 더 세웠다. 도시에서 의사 개인이 병원을 개업하려면 반드시 먼저 시험을 통과해야만 했다. 10세기 초에는 이동병원이 등장했는데 이는 의료기술을 외진 산골 농촌까지 확대 보급시키기 위해서였다. 982년 바그다드에 최초로, 체계화된 큰 병원이 지어졌다. 초기에는 의사가 안과의사와 외과의사(정형외과 포함) 등 25명 가량 되었다. 1184년 한 여행가의 기록에 따르면 병원이 마치 거대한 궁전 같았다고 묘사하고 있다.

십자군원정으로 이슬람 세계를 접한 유럽에도 드디어 병원이 설립되었다. 13세기 파리에 최초로 등장했는데 이는 아랍보다 무려 400년이나 뒤진 기록이다.

12, 13세기의 시리아, 이집트의 병원들을 살펴보면 아랍인들이 매우 합리적인 방법으로 병원을 설계한 것을 알 수 있다. 내부구조는 대개 십자 형태로 배치되었는데 중앙에 거대한 아치형의 로비 네 개가 자리했으며 로비마다 깨끗한 물이 공급되는 분수를 각각 설치했다. 이밖에 약방, 저장고, 도서실, 직원 생활구역, 주방 등의 시설도 갖추었다. 질병에 따라 진료를 받는 구역이 정해져 있었으며 정신질환자 전문병동도 마련되었다. 병원에는 담당 의사, 약제사 등이 대기하고 있었으며 당직 의사가 진료를 볼 때는 예약, 재진 등을 안배하도록 했다. 현대 대도시의 대형 병원과 마찬가지로 아랍의 병원도 의학교육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다. 병원의 건립과 운영과 관련된 재정은 대개 국가의 예산에 의존했다. 국가는 이 예산을 부유층의 상속세로 충당했다. 물론 부유층과 통치계급의 기부금도 병원의 자금 운영에 도움을 주었다. 의사가 개인적으로 환자를 치료해주고 소정의 치료비를 받는 경우가 있었지만 병원에서 이뤄지는 모든 의료행위는 무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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