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아랍 의학 - 알라의 음성

아랍 의학의 황금시대는 850~1050년까지로 이 시기에 우수한 번역 작품들이 대거 등장했다. 또한 대수(代數)와 아라비아 숫자체계 등도 확립되었으며 별자리 목록도 만들어졌다. 최초의 약국도 등장하여 화학이 탄생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신약이 탄생하기도 했다.

“의학은 종점이 없는 학문이다. 의사의 임상 경험은 책 속에 담긴 내용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다.” 이는 임상경험주의자란 별칭을 지닌 아랍의 천재의사 라제스(Rhazes)가 한 말이다. 그는 철학자이자 화학자였으며 무엇보다도 뛰어난 의학자였다. 총 237권의 저서 가운데 의학, 화학 분야의 저술은 후대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때문에 그는 아랍의 갈레노스, 이슬람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라제스는 페르시아 동부를 거쳐 바그다드로 들어왔다. 40세가 될 때까지 노래, 비파연주를 즐기며 철학 연구에 몰두했으며 40세가 지나서야 의학에 입문했다. 예루살렘, 아프리카, 코르도바 등지를 유랑하며 진료했는데 여인과 약국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물론 이를 통해 각종 자료를 수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어느 날 그는 정부로부터 바그다드 시내에 병원을 세울 곳을 알아봐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에 도시 곳곳을 다니며 신선한 고기를 걸어두었다. 며칠이 지나 다시 고기가 걸려 있는 곳을 돌아본 그는 가장 부패가 덜 된 고기가 걸려 있는 곳에 병원을 짓도록 했다.

당시 가장 뛰어난 임상의사였던 라제스의 강의를 듣기 위해 아랍 각지에서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환자들은 언제나 좀 더 편안한 치료를 원한다. 그러나 통증이 수반되지 않는 치료는 있을 수 없다. 환자는 의사의 말을 믿고 따라야 한다. 만약 의사가 환자의 말에만 의지하고 자신이 진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돌팔이가 되는 지름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지금 들어봐도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라제스는 다양한 치료법을 전수했으며 그의 저서는 중세 가장 유행한 의학교재였다. 그의 저서 《천연두와 홍역에 관한 논문 Treatise on the SmallPox and Measles》은 교의학(敎義學, 특정한 종교의 교의를 연구하는 학문)과 의학을 다루고 있는데 모두 그의 창의적인 학설에 해당한다. 그는 실험과 관찰을 통해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 내려 애썼다.

“구역질, 피로, 짜증 등은 ‘뉴캐슬병(바이러스에 의한 조류의 급성 전염병)’에서 자주 발견되는 증상이며 등의 통증은 천연두의 특징적인 증상이다. 천연두에 걸리면 열이 나고 잇몸이 붉게 변하기도 한다. 종기에 고름이 맺히기 시작하면 우선 두 눈을 먼저 치료하고 코, 귀 순으로 치료해야 한다. 작고 흰 고름 종기들이 무더기로 나타나기 시작하면 종기에 고름이 없어지고 딱딱해지는데 이는 위험한 시기에 진입한 것이다. 발진이 생긴 후에 이러한 증상이 계속된다면 이미 생사의 기로에 선 상태이며 녹색, 또는 검은색 고름이 맺힌 종기가 생겨난 후 열이 계속 오르고 가슴에 통증이 느껴지면 최악의 상황을 예상해야 한다.”

이 논문은 시대적으로는 중국의 《소씨병원 巢氏病源》(수나라의 소원방(巢元方)이 지은 의학저서, 610)보다 200여 년 정도 늦게 나왔다. 라제스는 중국 의사와 접촉한 적이 있었다고 하므로 중국 의학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한 천연두와 홍역을 명확하게 구분한 최초의 인물이다. 수은연고를 치료에 사용하기도 했으며 유럽에서는 ‘수은 화합물’을 최초로 사용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대표작 《의학집성》은 백과사전식 의학저서로써 15년의 시간을 들여 완성했다. 《의학집성》은 그리스, 인도, 페르시아, 아랍, 심지어 중국의 의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주로 질병과 그 진행과정, 치료효과 등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특히 탈장, 신장·방광 결석, 치질, 관절염 등 외과학 분야와 소아마비 등 소아과, 전염병, 원인 규명이 불분명한 병 등에 대한 풍부한 임상 경험과 이론이 망라되어 있다. 라제스는 또한 봉합술과 정신치료법을 처음 발명한 인물이다.

《의학집성》은 라틴어로 번역되어 유럽에 널리 전파된 후 갈레노스의 의학저서를 대체하기에 이르렀다. 르네상스시대에는 이 저서의 필사본이 여러 차례에 걸쳐 출판되었으며 당시의 유명한 의사들이 주석을 달기도 했다. 이밖에도 라제스의 저서로는 《의학입문》, 《의학의 끝》, 《정신병학》, 《약물학》, 《갈레노스 의학서의 의문점과 모순》 등이 있다. 라제스는 과학적 성과가 인간의 사고와 관점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선인들의 사상에 얽매이지 않고 심지어 그를 뛰어넘는 우수한 학자들에 의해 과학이 발전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10세기에 등장한 아랍의사 알부카시스(Albucasis, 936~1013)는 ‘외과학의 아버지’라는 찬사를 받는 인물이다. 이슬람 통치 시기에 스페인에서 태어났다.

당시 서유럽에서는 외과의사를 경시하는 풍조가 농후했다. 성직자 신분의 의사들이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1163년에는 의학교와 의사들에게 외과 선택을 금지시킴으로써 해부학이 쇠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는 동방, 특히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랍에서는 알라신의 계시에 따라 여성 환자를 가까이 할 수 없었으며 생사에 관계없이 신체를 절단하는 행위가 금지되었다. 따라서 해부학과 외과학이 발달할 수 없었다. 이러한 금기사항 때문에 외상에는 불로 태우는 소작법이 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산부인과와 외과 분야에서 아랍의사들의 성과는 거의 전무했다고 볼 수 있다.

알부카시스는 처음으로 백열소작법(초고온의 소작기로 조직을 태우는 방법)을 이용해 환자를 치료했다. 이처럼 ‘불을 이용한 치료법’으로 50여 종의 질환을 치료했다고 한다. 이밖에도 다양한 기기를 발명해 외과수술을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복수(腹水)를 빼내는 파이프, 요도에 삽입해 요로결석을 찾아내는 소식자, 고름 종기를 적출하는 메스 등은 그가 발명한 대표적인 외과 도구에 해당한다. 핀셋과 장선(양의 창자로 만든 수술용 봉합실), 그리고 오늘날 산부인과에서 사용하는 질 내시경, 질 확대용 겸자 등도 있었는데 당시 조산사들이 과연 실제로 이러한 도구를 사용했을지는 의문이다. 어쩌면 이 도구들은 모두 책 속에만 존재하는 발명품들인지도 모른다. 그는 오늘날 발허분만법이라고 불리는 분만자세에 대해서도 묘사했는데 이는 산모가 등을 대고 누워 둔부를 테이블 가장자리에 대고 두 다리를 늘어뜨리는 자세이다.

《의학 수첩》은 그가 10년 동안 쌓아온 의학지식과 경험을 기록한 책으로 방대한 임상 경험을 포함하고 있어 의사는 물론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 유용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또한 최초로 200여 개에 달하는 외과기기 도안과 사용법을 소개하고 있다. 알부카시스는 외과의 치료 과정을 소작법, 수술용 칼을 이용한 절개법, 사혈요법, 접골 등으로 구분했다. 초기의 결석제거, 치골궁(좌우의 두덩뼈가 연결된 아래쪽에 생기는 각) 벌리기 등의 방법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알부카시스는 치의학의 선구자로도 알려져 있는데 치아 교정 수술을 실시한 적도 있다고 한다.

알부카시스의 고향인 스페인 코르도바 시에는 지금도 그의 이름을 명명한 도로(Calle Albucasis)가 있으며 그가 설계한 외과용 도구들은 스페인, 튀니지, 파키스탄 등의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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