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그림이 있는 풍경] 정동진에서
[시와 그림이 있는 풍경] 정동진에서
  • 김용국(시인)
  • 승인 2019.01.02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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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애항 일출, 전영권
남애항 일출, 사진 전영권

정동진에서


이곳에서만 일출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꼭두새벽을 달려갈 때
이미 우리의 가슴에는
해가 돋고 있었을 것이니,

바른 동쪽포구이라는 정동진正東津
이 동쪽에 다다라서도
다시 동쪽을 바라보는 것은
이미 해돋이의 마음이 아니냐.

바람의 바닷가에 발자국을 찍으며
한 해의 시작을 기다리는 동안
바다안개는 일출을 쉽게 허락하지 않지만,

기다리며,
소망을 되뇌어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해를 품은 게 아니냐.

하여,
이제는 해돋이를 보지 않아도
이곳을 떠날 수 있나니,

잠 씻으며 칠흑의 어둠을 달려올 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이미 해를 가졌을 것이니,

정동진
이곳에서만 일출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초에는 동해안 주변에서 숙박을 위해 방을 잡기는 쉽지 않습니다. 해맞이 관광객들 때문에 이미 빈 방이 없거나 있어도 너무 비쌉니다. 동해로 가는 도로가 정체가 되기도 합니다. 매년 해맞이로 생기는 현상입니다.

동해 바닷가와 서울의 해돋이 시간차는 7분 정도입니다. 비싼 방을 얻고 애써서 붐비는 찻길로 달려도 7분 정도 빨리 해를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연초에 동쪽으로 향하는 것은 동해의 아름다운 바다와 그 바다에서 웅장하게 용출하는 태양을 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우리 마음속의 해를 보고 싶기 때문이겠지요. 마음속의 해를 꺼내고 싶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니 해맞이에 대한 욕심은 마음속에 있는 새로운 결심을 공고하게 하려는 의식일 겁니다. 지난날의 걱정과 불운을 없애달라는 간절한 소망도 있겠지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원효(617~686, 신라의 고승)는 의상(625~702, 신라의 고승)과 당나라로 불법을 배우러 가는 중에 동굴에서 잠을 자다가 목이 말라 물을 마셨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지난밤에 마셨던 물이 해골 물이었다지요. 토했겠지요. 지난밤에는 그렇게 달게 마셨던 물었는데 말입니다. 마음이 ‘물’을 ‘해골 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원효는 이때 깨닫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진리. 의상은 계획대로 당나라로 향하지만 원효는 고국인 신라로 돌아옵니다. 불법의 길은 마음에 있기 때문에 당나라에 가지 않아도 가능하다고 생각했겠지요.

2019년 1월 1일 동해로 가지 않아도 해돋이에 맞춰 창의 커튼을 열거나, 가까운 민둥산에 오르거나 묵상을 하거나 해돋이 사진을 친구에게 보내는 것만으로도 해맞이를 한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진정한 해맞이는 해맞이를 하려는 마음입니다. 해맞이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해를 스며들게 하는 것이지요. 마음에 해를 심는 것입니다.

정동진, 동해의 한 바닷가로 가지 않더라도 설령 가다가 돌아올지라도 ‘잠 씻으며 칠흑의 어둠을 달려올 때/우리의 가슴과 가슴/이미 해를 가졌을 것이니/정동진/이곳에서만 일출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이겠지요.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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