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실사리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구실사리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꽃이 없는 침묵의 계절이기에 산은 침묵하고, 구름사이로 조각난 햇빛이 모여서 바위산을 감싸고 있었다. 바위에 몸부림치듯 용동치는 무리를 만난다. 용이 똬리를 틀고 있다가 날아가려는 형상 같은 ‘구실사리’이다. 부처손과의 상록양치식물로 뻗어가는 줄기의 작은 잎이 4열로 배열하여 마치 구슬을 꿴 사리와 비슷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구슬사리’ ‘구슬살이’ ‘바위비닐이끼’라고도 한다.

대한민국에는 실사리, 왜구실사리, 부처손 등 1속 9종이 서식한다. 구실사리는 양치류보다 원시적인 석송의 무리로 지구의 하늘을 가린 거대한 숲을 이루었다고 한다. 원줄기는 구리철사같이 단단하고, 여름에는 녹색이지만 겨울이면 갈색 빛이 돌면서 치렁치렁하게 바위에 착생하여 있다. 바위에 웅크린 모습이 방석처럼 퍼져서 암벽를 포근히 감싸는 모습 같기도 하고 암벽이 옷을 입고 있는 모습 같기도 하다.

구실사리 물방울
구실사리 물방울

생약명은 ‘지백(地栢’) 또는 ‘녹각권백(鹿角卷柏)’이라고 한다. 백(柏)은 측백나무와 잣나무를 말한다. 효능이 항암, 지혈, 간염, 항암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리’라는 말이 정겹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사리분간을 잘하고, 사리판단을 명확히 하여 사람구실 하시게” “사리사욕이 없는 청빈한 분이시다” “부처님 사리 친견하고 왔습니다.” “사리 때이니 해안가에 조심 하셔요” “라면사리 추가요” “충고 덕분에 마음 고쳐먹고 사람구실 하고 삽니다.” 주위에서 많이 듣던 말들이다.

이러한 연유로 꽃말을 “겸손한 지혜”라고 정했다. 바위에서 강인하게 살아가는 지혜를 배운다. 그래서 사리판단을 잘해서 사람구실 하며 더불어 살아가고 싶다. 얄팍한 지식으로 교만하지 않기를 다짐 한다. 아픈 산을 겨울에라도 보듬어 주자. 아픈 산은 겨울에 더 잘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아픔 마음들을 위로하자. 미루지 말고 지금하자. 순간조차 잡을 수 없는 시공간은 허구이다. 지금이 최고의 순간이고, 시간이다. 지금이 지천에 널려있고, 지금 역시 흘러간다.

 

<필자 약력>

야생화 생태학을 전공했다. 순천대학교 대학원에서 농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국내 여러 대학과 기업 등에서 강연을 해오고 있다. 현재 한국야생화사회적협동조합 총괄본부장과 경남과학기술대학교 겸임교수로 일하며 야생화 사랑을 실천해오고 있다.

저작권자 © 뉴스로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