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르네상스시대의 의학 — 휴머니즘 의학

중세, 길고 긴 암흑의 시간이 흐른 후, 14세기에 발생한 페스트가 세계를 황폐화시키고 있었지만 문명의 진보를 막을 수는 없었다. 14세기 초부터 이미 새로운 시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1453년 터키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면서 동로마제국은 멸망했다. 이때 수많은 학자들이 그리스 문화유산을 들고 서방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리스 문화는 교조주의, 스콜라철학의 맹렬한 기세 속에서도 여전히 굳건히 살아남았다. 또한 상업이 급속하게 발달하면서 자유로운 경쟁 환경이 필요했던 상공업자들은 개성의 해방과 인문주의(人文主義)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인문주의는 인간을 사상의 중심에 둔 이념으로 인간이 신앙의 속박에서 벗어나 현실세계에 관심을 갖도록 했다. 당시는 중국의 화약, 나침반, 제지기술 등이 유럽으로 전파되던 시기였다. 인쇄술을 비롯해 예술, 시가, 건축 등에 응용된 신기술로 인해 지식의 홍수를 이루게 되었으며 이는 문예부흥시대로 진입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1543년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가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하면서 자연과학분야에서 기독교의 천동설에 도전했으며 자연과학은 이를 계기로 신학에서 해방되었다.

16세기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마젤란이 세계 일주를 하는 등 지리상의 발견이 이뤄지면서 사람들의 견문과 지식이 크게 높아졌다. 중세의 제한적 세계관은 이러한 항해가 성공을 거두면서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이때는 두 가지 사상이 크게 유행했다. 하나는 그리스로마시대 문헌에서 진리를 찾으려는 복고 조류였으며, 또 하나는 특히 인체와 예술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갈망하는 개성 해방의 조류였다.

쾌락을 용인하고 개성을 추구하는 인간 중심의 사상으로 무장한 이 새로운 조류는 ‘인문주의(humanism)’라 일컬어졌다. 인문주의는 라틴어의 후마니타스(humanitas), 인간애에서 유래했으며 고대 로마시대의 작가 키케로가 사용한 적이 있다. 당시의 인문주의자들은 스스로를 휴머니스트(humanist)라고 칭했다. 인문주의는 다양한 사상, 문화 유파를 흡수했는데 “나는 인간이다. 인간의 모든 것을 나는 이해해야 한다.”라는 기치를 내걸었다. 그들은 중세와 완전히 결별한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고 있었다.

‘르네상스(Renaissance, 문예부흥)’는 1855년 프랑스의 역사학자 미슐레(Michelet)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16세기 ‘세계와 인류에 대한 탐색’을 총칭하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인간이 다시 역사 무대의 주인공이 되었으며 천당과 지옥이 아니라 자신과 우주의 신비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지식과 미에 대한 갈구로 학자들은 고대문헌을 탐독하고 그리스 예술의 항구성에 다시 매료되었다. 그리고 그 문헌 속에 담긴 지혜를 통해 자아를 발견하게 되었다. 과학 연구는 양적인 팽창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치밀한 측량이 관찰과 추론을 대신하고 수학은 실험 과학의 잣대로 변신했다. 이는 의학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이 때문에 르네상스시대는 ‘탐색의 시대(The Age of the Eye)’라고도 불렸다. 예술은 진부한 모방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영감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가져온 성과는 소수의 부유층만이 누릴 수 있었다. 대부분의 유럽 사람들은 여전히 중세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생활을 영위했다. 오늘날의 역사학자들은 르네상스가 이성, 사고의 절대적 변화를 이끈 것은 사실이지만 물질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의학 분야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점성술이 사용되고 있었고 질병 진단과 치료 역시 소변 검사, 사혈요법에 의지했으므로 돌팔이 의사와 사기꾼이 도처에서 들끓고 있었다.

그러나 이성, 사고의 변혁이 이뤄지면서 의학계에 혁명의 새바람을 몰고 온 네 명의 의학자가 탄생했다. 바로 갈레노스와 아비센나의 저작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모든 질병은 고유의 치료방법이 존재한다고 주장한 파라셀수스(Paracelsus), 상처 감염의 개념을 정리한 파레(Pare), 정신병리학의 개념을 재정립한 와이어(Weyer), 갈레노스의 그늘에서 벗어나 해부학의 역사를 다시 쓴 베살리우스(Vesalius) 등이다.

르네상스가 의학에 끼친 영향은 크게 ‘인문주의’와 ‘해부학’ 두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전자는 의사들의 치료방법을 개선하고 새로운 의료기기를 등장시킴으로써 치료 과정에서 환자가 받는 고통과 통증을 최대한 경감시켰다. 후자는 해부학을 외과에서 분리시켜 그 독립성을 인정받음으로써 스콜라철학의 추론적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의사들은 의학, 건강, 과학 등에 새로운 의의를 부여하며 이론 연구와 실험 관찰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의학은 기존의 성과를 토대로 새로운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당시 화가들도 그들의 뛰어난 기량을 발휘해 의학교재에 사용될 도안을 제공함으로써 의학 발전에 기여했다.

의학은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분야이므로 다른 과학 분야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르네상스를 계기로 의학은 큰 발전을 이룩했으며 대학은 더 이상 교회의 속박을 받지 않고 의학의 새로운 지식들을 다룰 수 있었다. 자유로운 학술 연구가 이뤄지면서 전통 속에 뿌리박힌 오류들을 찾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인체해부를 통한 진정한 생명교육과 인본주의적 치료의 물꼬가 트였다. 중세 의학의 발전을 가로막던 견고한 종교적 성벽이 무너지면서 의학이 드디어 인간의 의학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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