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그림이 있는 풍경] 모두 아프다 한다
[시와 그림이 있는 풍경] 모두 아프다 한다
  • 김용국(시인)
  • 승인 2019.02.11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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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화선지+목판, 23x17cm, 박용진
노동자, 화선지+목판, 23x17cm, 박용진

모두 아프다 한다


목이며 허리며 다리 같은 데가
이유 없이 아프다.
누구에게 맞은 것도 아닌데
쿡쿡 쑤시고 결린다.

꿈속에서는 가파른 내 몸이 보이고
아침에 일어나면 
하혈 같은 이부자리
안 아픈 데가 없다.

머리며 가슴이며 속 깊은 데까지
이유 없이 아프다.
나만 아픈가 하고 물으면
그 사람 역시 아프다고 말한다.

만나면 모두 아프다고 한다.
이유 없이 아프다고 한다.
어둠이 오면 얼굴도 없는 것들이
밟고 도리깨질을 하는지,

모두 아프다고 한다.
그것도 이유 없이 아프다고 한다.

담이 결릴 때가 있습니다. 심하면 얼마동안 숨도 못 쉴 정도로 통증이 심합니다. 왜 이렇게 담이 왔을까 추측해 보지만 추측만 될 뿐 어떤 이유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침을 맞거나 주사를 맞지만 그 통증은 쉬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떨 때는 담이 돌아다니기도 합니다. 어깨였다가 등이였다가 가슴 쪽으로도 이동합니다.

담만 그런 게 아닙니다. 다른 질병도 그렇지요. 건강만은 자신이 있다고 살아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병원에서 간이 나쁘다든가 콩팥에 이상이 왔다든가 갑상선에 나쁜 결절이 생겼다고 알려옵니다. 가슴이 떨컥 내려앉습니다, 곰곰이 자신이 살아온 삶의 형식이나 생활 태도, 식습관을 곱씹어 보면서 그런 병들이 왜 왔는지 찾아보지만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병을 일으키는 인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지요. 늙음으로 자연스레 온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 병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적 요인일 수도 있습니다.

매스컴이나 사람들이 경제가 좋다. 장사가 잘 된다. 여유가 생겼다라는 말은 여느 때도 듣기 힘들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한 것 같습니다. 신문은 기업이 쓰러지고, 파산 신청이 ‘역대 최고’라는 제호를 달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직장을 못 구해서 떠돌고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도 언제 그곳을 고만둬야 할지 불안해한다고 합니다. 많은 노인들도 희망이 없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도 하지요. 그렇게 보면 주변에 힘들지 않은 사람,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어 보입니다. 사회 전체가 어떤 아픔의, 고통의 도가니 속에 펄펄 끓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아픔은 경제적 이유나 사회적 원인으로 오지만은 않습니다. 돈에 여유가 많지 않은 사람도 사회적 결함 속에 사는 사람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히려 더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 구조적으로 안전하게 보이는 사회에서도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지금보다 못 살았을 때, 사회적으로도 지금보다 미비했을 때 나름 행복했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아픔은 밖에서 오는 것도 있지만 안에서 생기는 것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개나 고양이에게서, 어떤 사람은 식물을 기르거나 악기를 연주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취미에서 행복을 찾는다고 하지만 사람의 진실한 행복은 사람에게서 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람과의 사랑에서 옵니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아프다고 부르짖는 것은 우리가 진실로 함께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진실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가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정말 힘들 때, 고통스러울 때, 답답하고 억울할 때, 우리 자신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 우리의 말을 들어주고 온몸으로 동의해 주는, 우리를 소중히 여겨주고, 존중해 주는 그 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무조건 '당신이 옳다(지은이 정혜신/영감자 이명수, 해냄출판사)'라고 공감해 주는 그 한 사람이 곁에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 곁에, 우리 앞에, 우리 마음속에 있는 사람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사람’인가요. ‘모두 아프다고 한다./그것도 이유 없이 아프다고’하지만 이 '어떤 사람'에게서 행복도 불행도 나옵니다. 우리는 이 '어떤 사람'에게서 정말 아픈 이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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