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 의술이야기] 성형외과의 아버지
[동서고금 의술이야기] 성형외과의 아버지
  • 강선주, 이문필 등 20인(빅북 제공)
  • 승인 2019.02.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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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르네상스시대의 의학 — 휴머니즘 의학

코 복원 수술은 고대 인도에서 처음 등장했다. 고대 인도의 법률에는 죄수, 전쟁포로의 귀와 코를 자르는 규정이 있었다. 이에 2세기 의학 관련 문헌에 벌써 코 복원 수술을 실시한 한 외과의사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는 얼굴이 망가진 환자의 뺨과 이마에서 코 크기만큼 피부를 떼어 원래 코 부위에 꿰맨 후 붕대로 감아 두 피부를 봉합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코가 다시 생기긴 했지만 마치 흉측한 살덩어리를 붙여 놓은 것처럼 너무나 보기 흉했다.

15세기 나폴리의 한 시인이 자신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자네, 코를 새로 만들고 싶은가? 그렇다면 나를 찾아오게. 시실리에 브랑카(Branca)란 용한 의사가 있는데 팔에서 근육을 떼어내거나 노예의 코를 베서 새로 코를 만들어 준다네. 이곳에 오면 원하는 모양대로 얼마든지 코를 새로 만들 수 있단 말일세.”

이탈리아에는 14세기부터 성형수술이 발달했는데 당시 두 가문이 수술의 비법을 쥐고 있었다. 하나는 시실리의 브랑카 일가였으며 또 한 가문은 이탈리아 남서부 칼라브리아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들은 수술방법을 절대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았다.

1580년대에 볼로냐 대학의 해부학 교수 타글리아코치(Tagliacozzi, 1546~1599)가 드디어 이 수술의 비밀을 밝혀내게 되었다. 그의 코 복원 수술은 거의 완벽에 가까웠으므로 후대 사람들은 그를 ‘성형외과의 아버지’로 칭하고 있다. 당시는 매독 때문에 코가 무너지고 얼굴이 망가진 환자들이 매우 많았다. 또한 중세 유럽에도 범죄자나 부정을 저지른 여인은 코를 베는 형벌에 처했다.

타글리아코치 교수로 인해 볼로냐 대학은 코 복원 수술을 하려는 사람들의 성지처럼 인식되었다. 그러나 보수적인 가톨릭교회의 압박 속에서 타글리아코치는 의학과 윤리 두 가지 압력에 시달렸다. 그는 조물주가 부여한 외모가 손상되었을 때, 이를 회복시켜 주는 데 성형수술의 의의가 있다고 여겼다. 성형수술은 외모만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환자들의 정신을 고무시키는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의술보다도 더 빛을 발했다. 성형수술의 의의를 정신적 측면에서 해석해냈기 때문이었다.

새 코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에 필요한 피부 근육을 환자의 팔에서 절취해야 했으며, 절취한 피부 근육을 이식한 부위에서 떨어지지 않을 때까지 고정시키는 것이 관건이었다. 타글리아코치는 수술이 끝난 환자들에게 2~3주 동안 팔뚝과 전신을 붕대로 감아 놓았는데 마치 갑옷과 투구를 걸친 것 같았다. 이는 환자들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당시 이 과정을 목격한 한 법학자는 코를 벤 죄수에게 응당 다시 새로운 코를 붙이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 정도로 코 복원 수술은 코를 벨 때보다 몇 배나 더한 고통이 수반되었다. 수술이 끝난 후에도 환자는 새 코를 보호하는 데 면밀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특히 겨울이 되면 금속으로 모자를 만들어 코까지 덮었다.

1597년 타글리아코치는 자신의 첫 번째 성형수술 관련 저서 《이식수술에 관하여》를 발표했다. 그는 향년 54세로 생을 마감해 볼로냐의 한 여수도원에 묻혔다. 그가 죽은 후에 마귀들이 그 영혼을 괴롭히는 바람에 밤새 울부짖어 고요한 여수도원을 혼란 속에 빠뜨렸다고도 하고 그의 시신이 파헤쳐져 벌판에 버려지는 벌을 받았다는 설도 있지만 모두 확인된 바는 없다.

당시 사람들은 인간의 외모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간섭할 권리가 없다고 믿었다. 프랑스의 대문호 볼테르(Voltaire)의 시에서 타글리아코치를 조소하는 내용을 찾아볼 수 있으며 파레도 그를 비판했다고 한다. 신학자들의 공격은 더욱 맹렬했다. 그가 신의 영역에 간섭하고 나섰다고 비판했으며 그의 수술 성과는 마귀의 조화라고 치부하며 교회에서 추방할 것까지 주장했다. 당시 해부학자들과 같은 운명에 처했었다고 볼 수 있다.

코 복원 수술과 관련해 민간에서도 수많은 이야기가 떠돌았다. 결투에서 코를 베인 남자가 자기 팔에서 피부 근육을 절취하기 싫어 짐꾼에게 살 한 점을 사서 새 코를 만들었다. 그런데 13개월쯤 지났을 때 새로 만든 코가 점점 차가워지더니 결국 떨어지고 말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코가 차가워질 무렵에 그 짐꾼은 이미 병에 걸려 몸져누웠으며 그가 숨을 거두는 순간 코도 떨어졌다고 한다.

타글리아코치가 죽은 후에 그도, 그가 했던 코 복원 수술도 점차 잊혀졌다. 그러던 중 1816년 몽마르트 전쟁 때 베를린의 외과의사 칼이 코를 베인 병사에게 성공적으로 복원수술을 함으로써 이 기술이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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