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그림이 있는 풍경] 당신, 성聖 로사의 바다 
[시와 그림이 있는 풍경] 당신, 성聖 로사의 바다 
  • 김용국(시인)
  • 승인 2019.03.11 0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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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53.4X38cm, water color on paper, 신의숙
기다림, 53.4X38cm, water color on paper, 신의숙

당신, 성聖 로사*의 바다 


왜 나는 바다를 떠올리는지 모릅니다.
천 개의 밤을 지나 다시
천 개의 바다를 지난
하나의 물방울을
왜 나는 당신에게서 떠올리는지 모릅니다.

바다의 색깔을 보고
바다의 깊이를 가늠하지만
바다는 바다의 깊이보다 더 깊은
강의, 냇물의, 지하수의 기억이 있다는 걸
나는 당신에게서 짐작할 뿐입니다.

상처 하나에 눈물 하나를
상처 하나에 사랑 하나를 
상처 하나에 그리움 
그리고 용서 하나를…….

당신이 만든 바다를 보며
나는 그런 것들을 헤아리지만,

당신이 만든 바다가 얼마나 넓은 슬픔인지
나는 아직 짐작도 하지 못합니다.

상처 속에 다시 상처를 끼우고
상처 위에 다시 상처를 얹고서도,
상처를 따스한 가슴으로 만드는 당신을 보면
이 세상의 하늘보다 더 넓은
별의 바다를 떠올리지만,
그것이 얼마나 지독한 
당신의 눈물이었는지, 절망이었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당신의 밤과, 눈물, 끝 간 데 없는 절망이 만든
당신의 찬란한 바다를, 내 스스로
성聖 로사의 바다라 부르지만
아직 나는 그 깊이를 알지 못합니다.
알 수가 없습니다.

 

연세가 많으신 사람들 중에서는 ‘내가 솜씨가 없어서 그렇지 내 얘기를 책으로 쓰면 백 권을 넘는다.’라는 말을 우리는 많이 들었지요. 어찌 보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의 이야기 창고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 이야기 공장이라고 하는 말이 더 적합하겠네요.

우리가 삼삼오오로 모여서 신문에 커다랗게 얼굴을 내민 사람들에 대해서 얘기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신문의 간단한 내용만 가지고 그 사람에 대해서 잘했느니 못했느니 하면서 나름 그 사람을 결정해 버립니다.

친구들끼리도 그렇습니다. 상대편의 상세한 입장이나 변명을 듣지도 않고 잘했다든지 잘못했다든지 평가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편 친구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정을 듣고 나면 우리는 상대에 대한 평가가 뭔가 잘못되었거나 성급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너무 결과로만 달려갑니다. 자신의 인생도 남의 인생도 결과에만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넓게 보면 결과도 과정 위에 놓여 있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한 인생의 과정을 풀어 놓는 것이 바로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는 삶의 모든 과정이 녹아있습니다. 어떤 시대를 어떤 환경에서 누구와 어떻게 살아왔는지의 기록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 사람이 사회적으로 평판이 나쁠지라도 그 사람에 대해 단순하게 선악이나 윤리적으로 판단하는 것을 유보하게 됩니다. 그 사람에 대한 동정과 공감과 너그러움이 생기기 때문이지요. 그 사람의 인생이 우리 인생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람에게는 이야기가 존재이고 존재가 다시 이야기가 됩니다.

오래 전에 나는 어느 여자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잔잔함과 폭풍, 추위와 더위, 갈증과 배고픔, 공포와 절망, 사랑과 증오 그리고 아무리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그 여자의 생의 깊이 ― 어찌 보면 바다가 가지고 있는 속성을 다 겪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삶을 ‘성聖 로사의 바다’라고 했지요.

위대한 사람들의 이름 앞에 우리는 ‘성聖’ 자를 붙입니다. 성聖은 함부로 가까이할 수 없을 만큼 고결하고 거룩함이라는 뜻이지요. 나는 그 여자의 이름 앞에 ‘성聖’ 자를 붙인 것처럼 자기 나름의 인생의 바다를 건너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聖’ 자를 받치고 싶습니다. 어찌 보면 사는 것, 살아내는 것 자체가 ‘거룩한 행위’이니까요.

오늘은 자신의 이름 앞에 ‘성聖’ 자를 붙여 스스로 호명해 보면 어떨까요. ‘성聖 김철수’, ‘성聖 이영희’ 이렇게 말입니다.

*로사 : 천주교 세례명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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