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그림이 있는 풍경] 우리는 모두 가난뱅이입니다
[시와 그림이 있는 풍경] 우리는 모두 가난뱅이입니다
  • 김용국(시인)
  • 승인 2019.03.18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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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상, 종이 위에 크레파스, 54.5x57.8cm, 1990, 양호규
제목 미상, 종이 위에 크레파스, 54.5x57.8cm, 1990, 양호규

우리는 모두 가난뱅이입니다


우리는 모두 가난뱅이입니다.
부자들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말씀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으므로
우리들 중에 부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걸인이 구걸하는 손을 내밀면
동전 한 닢 줄 수가 없습니다.
줄 것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담을 높이 쌓고 아름다운 정원수를 기르고
황금의 문에 황금 빗장을 거는 것에
오해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오직 찌든 우리의 사나운 꼴을
가리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진실로 가난뱅이임으로
하늘나라까지 먹고 갈
쌀과 기름을 위해 욕심을 내야 합니다.

종종 낭비와 사치를 하지만
남을 위할 정도의 여유는 없습니다.
우리는 가난하기로 약속을 했으므로
아무도 도울 수가 없습니다.

부자라는 소문이 하늘에 이르면 
낭패이기 때문입니다.
천 마리 낙타의 털보다 
더 많은 돈을 갖고 살아가지만,
천국의 문까지는 진실로 가난뱅이입니다.
가난뱅이여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스갯소리지만 삼대 거짓말이라는 게 있지요. 어르신들이 오래 살기 싫다는 말이 첫째고 처녀들이 시집가기 싫다는 말이 둘째, 장사꾼들이 밑지고 판다는 말이 셋째라고 합니다. 거기에 하나를 더 첨가 한다면 돈이 있어도 ‘돈 없다는 말’이 될 성싶네요.

친구들에게 돈이 있냐고 물으면 고개를 옆으로 세차게 흔듭니다. 부부끼리도 서로 돈 있냐고 물으면 혹 돈 없다고 말하지 않나요. 세상에 어디를 둘러봐도 ‘돈 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는 이유가 많겠지만요.

나는 글자 그대로의 ‘무소유無所有’나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마태복음19:23)*’ 등의 말에―물론 성경학자들의 해석은 다르겠지만―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이라는 게 소유 없이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착한 부자들도 주변에 심심찮게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명도 세월이 가면 소멸하는데 우리가 소유한 돈이 멀쩡할 리 없지요. 적당히 벌고, 적당히 쓰고, 적당히 나누는 것은 지혜 중에 지혜일 겁니다. 돈을 위해서 일생이라는 시간을 버리고, 건강을 버리고, 종국에는 돈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는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평생 ‘가난한 부자’로 사는 것은 아닌가요. ‘돈 있어’도 ‘돈 없음’으로 사는 게 아닌가요. 마셔도 마셔도 갈증이 가시지 않는 소금물을 마시는 사람처럼 돈의 갈증에 시달리는 것은 아닌가요. 돈의 욕망이 인생을 집어삼키는 꼴이 되는 건 아닌가요. 그러니 역설적이게도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돈에 대한 욕망을 줄이거나 멈춘 사람이기가 쉽습니다.

‘부자라는 소문이 하늘에 이르면/낭패이기 때문입니다./천 마리 낙타의 털보다/더 많은 돈을 갖고 살아가지만/천국의 문까지는 진실로 가난뱅이입니다./가난뱅이여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자이면서도 부자가 되기 위해 삶의 많은 것을 포기한 사람이 가난뱅이입니다.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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