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그림이 있는 풍경] 들꽃
[시와 그림이 있는 풍경] 들꽃
  • 김용국(시인)
  • 승인 2019.04.01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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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오다 35.  Mixed media. 32×85cm. 2018. 홍미자
꽃으로 오다 35. Mixed media. 32×85cm. 2018. 홍미자

들꽃


오가다 보았어요,
싹 틔우고 잎 키우다가
어느 날은 한 송이
빨간 꽃도 피우는 것을.

너무 예뻐서, 그 꽃 
무심결에
꺾어서 두었는데
나만 위해서 핀 꽃처럼
꽃 향이 뜨거웠어요.

그날은 
이유도 없이 미열이 나고 
깊은 꿈속처럼 며칠을 앓았는데.

꺾인 건 꽃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네요.

 

현대는 소유의 유무로 존재가 결정되는 사회입니다. 무엇을 얼마나 많이 소유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평가가 된다는 겁니다.

예전에 사람들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만을 스스로 만들어 소유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필요의 소유를 넘어 욕망을 소유합니다. 손목시계가 있어도 또 손목시계를, 핸드백이 있어도 또 핸드백을 구두가 있어도 또 구두를 삽니다. 명품 백이나 명품 시계, 명품 구두를 사는 것도 그것을 소유함으로 존재가 명품이 된다는 신념 때문에 그렇겠지요. 이것을 돈이 가능하게 합니다. 돈이면 다되는 세상이니 돈이 권력이 되고 돈이 인격이 되고 돈이 명품이 되고 돈이 사랑이 됩니다. 이렇게 소유가 존재를 압도합니다.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인격이나 학식이나 됨됨이를 보지 않고 소유의 정도로 파악합니다. 그래서 현대를 황금만능 시대니, 물신주의 시대라고 합니다.

이런 소유는 욕망이 실현되면 버려집니다. 소유가 오래 가지 않으니 소유로 구축된 존재는 흔들립니다. 그래서 이렇게 많이 소유하고도 우리들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소유를 존재로 착각하는 한 이런 위태로움은 계속될 수밖에 없지요.

우리가 타자와의 사랑이나 관계에서 실패하는 요인 중에 하나가 상대를 소유하려는 욕망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는 어떻든 자기만을 위해서 관심을 쏟게 하거나 희생을 강요합니다.

사랑을 소유로 인식할 때 비극이 생깁니다. 사랑은 사이의 예술입니다. 사랑은 사이를 좁히는 것이지 아주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사이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사이를 신뢰라든지 평화라든지 정결이라든지 봉사라든지 이런 따뜻함으로 채우는 것이지요. 이래야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존재나 인격에 흡수되지 않고 고유하게 유지됩니다. 서로의 노예가 되지 않고 자유가 되는 겁니다. 자유가 없는 사랑은 몸만 얻고 맘을 얻지 못하는 사랑이기가 쉽습니다.

들녘이라도 나갔다가 꽃을 한 송이 꺾어옵니다. 그리고 그 꽃을 머리맡에 놓았지만 금방 시들어 버립니다. 소유가 존재를 소멸시킨 것이지요. 소유가 생명을 죽인 것이지요.

소유의 사랑이 최고의 사랑인 줄 알았던 때가 있었지요. ‘너무 예뻐서, 그 꽃/ 무심결에/꺾어서 두었는데/나만 위해서 핀 꽃처럼/꽃 향이 뜨거웠어요.’

‘꺾인 건 꽃이 아니라/내 마음이었네요.’ 내가 소유의 사랑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늦은 사랑이 된 거지요. 내 사랑을 받아 줄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진 것입니다.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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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재천 2019-04-04 07:13:34
멋진글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