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그림이 있는 풍경] 부활절 아침
[시와 그림이 있는 풍경] 부활절 아침
  • 김용국(시인)
  • 승인 2019.04.15 09: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종실, 프라하 성령교회의 피에타
이종실, 프라하 성령교회의 피에타

부활절 아침


장미나무 가시에도 잎이 돋고
개나리 꽃봉오리는 참새마냥
이 부활절 아침 시끄럽기까지 합니다.

이 날은 살아있는 것
살아난 것들의 잔치이니
나는 끼일 곳이 없습니다.

봄은 절망 같은 회색의 겨울에서 나고
목숨은 목숨을 걷어간 곳에서 눈을 뜹니다.

부활은 죽어야만 산다는 뜻이니
나 진실로 죽은 때가 없었으니 
산 때도 없습니다.

나는 나를 죽입니다.
내 손으로 당신도 죽임으로써
오늘 부활절 아침을 맞습니다.
 

엘리어트(T.S.Eliot 1888~1965, 영국의 시인)의 유명한 시 ‘황무지荒蕪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한 번은 쿠마에서 나도 그 무녀巫女가 조롱鳥籠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직접 보았지요. ‘애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지요. ‘죽고 싶어.’”-희랍 신화에서 무녀(Sybil)는 앞날을 점치는 힘을 지닌 여자다. 특히 희랍의 식민이었던 이탈리아의 쿠마의 무녀는 유명했다. 그네는 아폴로 신에게서 손 안에 든 먼지만큼 많은 햇수의 장수를 허용 받았으나 그만큼 젊음도 달라는 청을 잊고 안했기 때문에 늙어 메말라 들어 조롱 속에 들어가 아이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황무지』(황동규 역주, 민음사, 1974)

이집트의 신화에 나오는 피닉스Phoenix를 우리는 불사조不死鳥라 합니다. 그러나 그 피닉스는 글자 그대로 영원히 사는 새가 아닙니다. 나름의 수명이 다하면 향기로운 가지들과 향료들로 둥지를 만들어, 거기에 불을 놓아 그 불 속에 스스로를 살랐다고 하지요. 그 재에서 새로운 불사조가 탄생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피닉스는 불사조가 아니라 부활의 새라고 하는 게 맞는 말입니다.

“항상 깨어있는 사람은 ‘깨어남’이라는 사태를 체험할 수 없다는 것, 잠을 잘 수도 있고 또 자는 사람만이 깨어남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것, 그러므로 이런 역설이 성립한다. ‘항상 깨어 있으면 진정으로 깨어날 수 없다.’”『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신형철, 한겨레출판사, 2018)

세상에 영원히 사는 것은 없습니다. 시빌의 무녀처럼 영원히 살아 있다는 것은 영원히 죽어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삶은 죽음을 곁에 둠으로 삶이 되고, 기쁨은 슬픔을 곁에 두어야 기쁨이 되며, 밝음은 어둠을 곁에 두어야 밝음이 됩니다. 부활절이 봄에 있는 것도 봄의 곁에 겨울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진실로 부활하기 위해 오늘은 진실로 죽는 날이 돼야 합니다. 영원히 산다는 것은 삶의 지속적인 연장이 아니라 죽음과 삶, 삶과 죽음의 반복을 통해서 새로운 삶을 얻어나가는 ‘피닉스’ 와 같은 것이겠지요.

‘나는 나를 죽입니다./내 손으로 당신도 죽임으로써/오늘 부활절 아침을 맞습니다.‘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