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시] 개화산 약사사에서
[풍경이 있는 시] 개화산 약사사에서
  • 김용국(시인)
  • 승인 2019.05.10 0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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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영권, 낙산사 원통보전
사진 전영권, 낙산사 원통보전

개화산 약사사*에서


개화산開化山 약사사,
산 이름처럼 꽃 피는 날
꽃이 너무 펴서 꽃도 지는 날
무슨 일이 일어나도
좋은 일만 일어날 것 같은 날

당신은 불공을 드리러 경내로 들고
나는 꽃에 홀려 절 밖을 도네.

나는 잘난 체하며
연기론이나 사성제四聖諦를 들먹였으나,

당신은 그게 무슨 소용이냐 말하네.
아무것 몰라도 부처님께
향 올리고 절 올리면
부처님이 다 알아서 해주신다고.

처음엔 부처님의 가르침이 뭔지도 모르면서
믿기만 하면 얼마나 무지한 것인가
속으로 흉을 봤지만,

옛날 옛적 원효스님은
글도 뜻도 서툰 무지렁이에게
모든 것 다 치우고 간단하게 열한 자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만 외면
성불成佛할 수 있다고 했다지요.

믿음은 말에도 뜻에도 있는 게 아니라
정성과 마음에 있다는 걸,

꽃 죽비 맞고
개화산에 꽃 피듯이
개화산 약사사에서
나도 깨달음을 조금 얻은 것 같네.

불교경전<현우경>의 '빈녀난타품'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빈녀일등貧女一燈'이라고도 하지요. 아마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겁니다. 거칠게 옮겨 봅니다.

‘난타라고 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가난하고 홀로 사는 여인이었지요. 늘 구걸하면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기원정사에서 안거하고 계셨습니다. 국왕이나 부자들 그리고 모든 백성들은 누구나 부처님과 스님들께 많은 공양을 베풀고 있었습니다.

난타 여인은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가난한 집에 태어나 부처님을 만나고서도 공양을 드릴 수 없는 것일까?'

못내 괴로워하고 마음 아파하면서 조그마한 공양이라도 드려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종일 구걸을 했으나 얻어지는 것은 겨우 몇 푼의 돈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모은 돈을 가지고 기름집에 가서 기름을 사려고 했습니다. 기름집 주인이 묻습니다.

"부인, 이 몇 푼으로 기름은 사 봐야 쓸 데가 없을 텐데 도대체 어디에 쓰려는 거요."

"부처님과 스님들께 불을 켜 공양하기 위해서입니다. 돈이 적지만 이것만큼이라도 주세요."

기름집 주인은 사정을 듣고 가엾이 여겨 기름을 갑절로 주었지요. 그녀는 그 기름을 받아 기쁜 마음으로 등불을 밝힙니다.

밤이 지나고 이른 새벽이 되어 먼동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국왕과 부자들이 밝힌 화려하고 값비싼 등불들은 하나 둘 꺼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새벽이 가까워져도 가난한 여인 난타의 등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하략)

* * * * * * * *

종교도 그렇지만 사람을 이해할 때도 우리는 머리로 먼저 접근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머리로 생각하고 평가해서는 상대의 가장 깊은 곳까지 도달할 수는 없습니다.

학문의 연구도 그렇지요. 머리로만 이해하려고 하면 한계에 쉬 봉착합니다. 발로 뛰고 손으로 만지고 가슴에 사무쳐야 좋은 학문적 성과를 이룰 수 있습니다. 종교를 받아들일 때 경전의 글자 하나하나를 이론적으로 해석하면 그 종교에 대해 말할 수는 있으나 느낄 수는 없지요. 오히려 모순 속에 갇힐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는 하나 같이 순정한 믿음을 강조합니다.

이 믿음은 재물의 크고 적음, 지적 능력의 깊고 낮음의 정도에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마음의 정성이나 간곡함에서 우러나는 겁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이해하는 것도 그런 종교적인 일이 아닐까요. 머리가 아니라 마음, 그냥 마음이 아니라 정성이 깃든 마음, 거기에 사랑과 관심과 귀함과 신뢰가 더해지면 두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그래서 '빈녀일등貧女一燈'의 불은 꺼질래야 꺼질 수가 없는 등불인 겁니다. 일반 사람들은 ‘자신의 일부’로 불을 밝히고 공양했지만 그 가난한 여인은 ‘자신의 모든 것’으로 그 불을 밝히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개화산 약사사 : 서울시 강서구 개화동 개화산에 위치한 사찰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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