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도리풀.
족도리풀.

 

잎은 무성한데 꽃은 보이지 않는다. 하트모양의 사랑스런 모습인데 정녕 꽃은 어디에 있는가. 살포시 나올락 말락 숨은 듯이 있는 꽃망울이 보인다. 고혹적인 모습도 아니요 우아한 자태도 아니다. 꽃인가. 열매인가. 구분이 쉽게 가지 않는다.

꽃이라면 잎 위에서 피어서 벌 나비와 교우해야 하는데 숨어 있고, 열매처럼 매달려 있는 쥐방울과인 ‘족도리풀’이다. 혼례를 올릴 때 머리에 쓰던 족두리 모습이라서 이런 이름 되었다고 한다. ‘족두리’가 표준말이니 ‘족도리’는 틀렸다고 하는데 옛날에는 족도리라고 하였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 족도리풀로서 등재되어 있으니 ‘족도리풀’이 정명이다. 

족도리풀은 족도리풀속의 다년초로 전 세계에 100여종 서식 한다. 대한민국에는 족도리풀 외에도 잎에 무늬가 있는 ‘개족도리풀’ 꽃받침이 뒤로 예쁘게 젖혀지는 ‘각시족도리풀’ 등 10여종이 있다. 은자(隱子)의 화신이고, 숨은 꽃인 족도리풀은 꽃잎이 없다.

족도리풀.
족도리풀.

 

꽃받침이 꽃술을 감싸고 있는 특이한 구조로 둥근 항아리처럼 생긴 꽃받침 안에 암술과 수술 있다. 햇빛을 받고 꽃받침이 열리는데 세 개의 끝이 살짝 갈라진다. 암술과 수술 배경으로 꽃받침 안쪽에는 하얀 무늬를 배치하여 곤충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또한 꽃자루를 짧게 하여 꽃을 거의 땅에 붙게 하여 개미나 땅을 기어 다니는 곤충의 도움을 받아 꽃가루받이를 하려는 치밀한 전략이 숨어 있다.  

또한 꽃에서 생선 썩은 냄새가 나서 개미들이 좋아해 꽃 안으로 들락거리면서 꽃가루받이를 도와준다고 한다.

꽃망울을 찢어 보니 20여개에 미색의 종자가 나왔다. 바위위에 올려놓고 지켜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개미 한마리가 찾아왔다. 신중하게 냄새를 맡더니 사라졌다. 잠시 후 친구들을 불러와 씨앗을 옮겨가기 시작 하였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개미를 불러들이는 힘은 씨앗에 미끈거리는 엘라이오좀 이였다.

족도리풀
족도리풀

 

씨앗을 집으로 가져간 개미는 엘라이오좀만 먹고 씨앗을 내다 버리면  싹을 틔우게 되는 것이다. 개미의 도움으로 먼 곳까지도 씨앗이 퍼져나갈 수 있고 자라날 수 있도록 서로 공생하고 있다. 개미가 좋아하는 것을 주어서 이끄는 사랑의 힘이 더 위대하게 보인다.

개미는 한자로 의(蟻)라고 하는데 벌레 충(蟲)에 옳을 의(義)를 합친 말이라고 한다. 맞지 않는가. 절묘한 표현이다. 벌과 함께 사회적 곤충으로 분업화, 조직화 되어있다. 여왕개미를 중심으로 4단계의 계급이 나누어져 열심히 일하는 근면 성실의 대명사이다.

그러나 개미는 작고 볼품이 없다 징그럽고 흉측한 모습이다. 나비처럼 우아한 자태도 아니요 꿀벌처럼 웅장하게 날지도 못한다. 방어무기도 빈약하다. 땅속에 굴을 파고 땅위를 기어 다닌다. 소리 없이 다가와서 소리 없이 사라지지만  협동과 조직력으로 자연 생태계를 도와주고 있다.

애호랑 나비는 잎 뒷면에 10여개씩 알을 낳는다. 잎의 매운맛으로 천적으로부터 애벌레를 지키려는 전략이다. 재미있는 것은 수컷이 교미 후 배 끝에 분비물을 묻혀서 수태 낭을 만든다. 수태 낭은 다른 나비가 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으로 자기 유전자만을 퍼트리려는 절묘한 장치라고 할까. 이기심의 고도한 전략에 쓴웃음이 나온다.

생약명으로 세신(細辛)인데 뿌리에서 매운맛이 난다. 매운 맛이 나면서 박하향이 나지만 맛을 보면 혀끝이 얼얼해지는 독성이 있다. 입 냄새를 없애주는 성분이 있어 은단을 만든다고 한다. 

꽃말은 ‘모녀의 정’이다. 옛날 중국 궁녀로 뽑혀간 여인이 궁궐생활이 힘들어 숨을 거두었는데 고향집 뒷마당에 족도리 모양의 꽃이 피어났다고 한다. 딸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딸의 아픔과 고통이 승화되어 모진 정(情)의 꽃으로 피어났던 것이다.

족도리풀에서 어머니들의 삶을 보았다. 고단한 시집살이도 알았다. 그래서 더욱 애잔하고 숭고하게 보이는 야생화이다.

<필자 약력>

야생화 생태학을 전공했다. 순천대학교 대학원에서 농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국내 여러 대학과 기업 등에서 강연을 해오고 있다. 현재 한국야생화사회적협동조합 총괄본부장과 경남과학기술대학교 겸임교수로 일하며 야생화 사랑을 실천해오고 있다.
 

저작권자 © 뉴스로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