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원문은 인터넷 과학신문 <The Science Times>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문 보기)

 

노벨상을 받은 당시에는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수상의 의미가 퇴색된 사례도 있다.  약 150년 전에 발명된 DDT는 잘못 수여된 노벨상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한국의 경우 1979년부터 DDT 판매가 금지됐다.

DDT가 처음 탄생한 것은 1873년 오스트리아의 화학자 오트마르 차이들러에 의해 발명됐다. 그는 DDT의 합성에 성공한 뒤 성질에 대해 기술하고 상업적인 생산 방법까지 개발했다. 하지만 DDT는 곧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만다. 발명 당사자인 그마저 DDT가 살충제로서의 효과를 가진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DDT를 머리에 뿌리고 있는 모습. ‘신의 축복’이라고 칭송받던 이 살충제는 이후 유해성이 밝혀지면서 사용이 금지됐다. ⓒ CDC public domain
DDT를 머리에 뿌리고 있는 모습. ‘신의 축복’이라고 칭송받던 이 살충제는 이후 유해성이 밝혀지면서 사용이 금지됐다. ⓒ CDC public domain

그 후 DDT를 다시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 이는 스위스의 화학자 파울 헤르만 뮐러였다. 1925년 화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가이기 사(현재의 노바티스 사)에 입사한 그는 1935년부터 살충제 연구에 집중했다.

뮐러는 자신이 개발하는 살충제의 목표를 분명하게 정했다. 첫째는 안전성이었다. 온혈동물과 식물에게는 해를 전혀 입히지 않으면서도 많은 종류의 곤충에게 큰 효과를 발휘해야 했다. 거기에다 효능이 오래 지속될 수 있기를 원했다. 그러기 위해선 살충제가 화학적으로 안정된 성질을 가져야 했다.

4년 동안 무려 350가지 화합물을 시험한 끝에 뮐러는 마침내 자신이 설정한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이상적인 성분을 찾아냈다. 염화계탄화수소인 디클로로디페닐트리클로로에탄, 즉 DDT였다.

가이기 사에 의해 ‘게사롤’과 ‘네오사이드’란 이름으로 출시된 DDT는 신이 내린 축복의 물질이었다. 적은 양으로도 뛰어난 살충 효과를 나타냈지만 온혈동물과 식물에게는 유독성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또한 제조공정이 비교적 간단해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이 가능했다.

현장 실험도 매우 성공적이었다. 바구미, 무당벌레 같은 농경지의 해충뿐 아니라 모기, 이, 파리, 벼룩 등 전염병을 옮기는 가정의 해충에게도 탁월한 효능을 보인 것. 전 세계가 이 물질에 찬사를 보냈다. 실제로 DDT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수백만 명의 군인과 시민들을 질병에서 구해냈다.

특히 발진티푸스와 말라리아에 대한 효과는 놀라웠다. 이가 옮기는 발진티푸스는 사망률이 20%에 이를 만큼 치명적인 질병이었는데, 유럽에서 DDT의 대대적인 살포 이후 단 3주일 만에 유행하던 발진티푸스가 완전히 통제될 정도였다.

또한 전역에 DDT를 살포한 로마 인근의 폰타인 제도는 역사상 처음으로 말라리아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다. 그러자 미군은 DDT를 몸에 뿌리는 방법까지 교육시켰다. 1955년부터는 세계보건기구(WHO)까지 나서서 DDT 사용을 적극 권장한 결과, 말라리아 사망률이 인구 10만명당 192명에서 7명으로 감소했다.

노벨상위원회는 살충제 DDT를 개발한 뮐러를 1948년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화합물의 발명가에게 노벨상의 수상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이 수상은 이후 잘못 수여된 노벨상의 대표적 사례로 회자되기에 이른다.

그 이유는 뒤늦게 밝혀진 DDT의 유해성 때문이다. 이런 움직임은 아이러니하게도 DDT의 사용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미국에서 비롯됐다. 곤충이 아닌 동물에 미치는 DDT의 영향을 조사하던 미국 과학자들은 DDT에 노출된 병아리에서 2차 성징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DDT 농도가 높은 흰머리수리는 알의 껍데기가 얇아져 잘 부화되지 않는다는 것도 확인됐다.

결정타를 가한 것은 레이첼 카슨이 1962년에 펴낸 ‘침묵의 봄’이란 저서였다. 해양생물학자인 카슨은 이 책에서 DDT와 같은 합성살충제가 자연계와 인간에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구체적으로 파헤쳤다.

매우 안정된 구조를 지닌 DDT는 자연에서 쉽게 분해되지 않는 것은 물론 체내 지방조직에 저장돼 몸 밖으로 쉽게 배출되지 않는다. 따라서 농사를 위해 뿌린 DDT는 토양과 지하수를 통해 강과 호수로 스며들어 플랑크톤에 흡수되고, 이를 섭취한 작은 물고기를 다시 큰 물고기가 먹는 생태계 순환 과정에서 거의 그대로 전달될 수밖에 없다.

결국 최종 소비자인 인간에게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돌아오게 된다. 실제로 DDT의 다량 살포 당시 몇 년간 사람의 모유에서 검출되는 DDT의 양이 급속히 증가하기도 했다. 최근 계란과 닭에서 DDT가 검출된 것도 반감기가 수십 년이나 되는 DDT가 토양에 그대로 남아 있다가 닭의 체내로 흡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 DDT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판매 및 사용이 금지됐다. 그러자 또 다른 부작용이 발생했다. 말라리아나 곤충에 의해 전염되는 질병이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DDT의 도입 이후 말라리아 환자 수가 10만명으로 줄어든 인도의 경우 DDT 사용이 금지되자 그 수가 약 300만 명으로 다시 늘어났다. 이 같은 폐해는 아프리카를 비롯한 개발도상국가들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DDT의 환경오염보다 말라리아로 인한 사망이 더 참혹한 상황에 도달하자 결국 WHO도 손을 들고 말았다. 2006년부터 DDT를 실내 벽면이나 건물 지붕, 축사 등에 뿌리는 것을 권장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DDT 이후 인체에 덜 해로운 새로운 살충제가 개발됐지만, 값이 너무 비싸 개발도상국들은 사용할 환경이 안 되었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거대 제약회사들은 저렴하면서도 효과가 좋은 대체 살충제의 개발에 소극적이다. 가난한 국가들은 위해 많은 비용을 들여서 신약을 개발해봤자 수익이 나지 않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뉴스로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