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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초 호주 정부는 파푸아뉴기니의 산간 오지에 사는 포어족을 섬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끔 격리 조치했다. 그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특이한 질병이 포어족에게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 병에 걸리면 근육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고 떨리게 되며, 균형을 제대로 잡을 수 없어 걷기조차 힘들게 된다. 또한 언어 장애, 오한, 통증, 감정불안, 신경계 마비 등의 증상을 보이다 결국 사망한다.
포어족들은 그 병을 ‘신의 형벌’로 생각했으며, 병의 특징 중 하나가 과도하게 웃는 증상을 보여 ‘웃음병’이라고도 불렀다. 그 병의 정체는 바로 ‘쿠루병’이었다. 쿠루란 원주민어로 ‘떨리는 병’이라는 뜻이다.
쿠루병을 처음 발견한 이는 독일 출신의 의사였던 빈센트 지가스다. 그는 처음에 쿠루병을 뇌종양이나 수막염 등으로 의심했다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질병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호주 정부가 포어족을 격리 조치한 것은 지가스의 보고 때문이었다.
때마침 호주 원주민의 소아발육 및 질병에 대해 연구하던 미국인 의사 가이듀섹이 우연히 그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그리고 1957년에 그는 짐을 꾸려 포어족이 거주하는 파푸아뉴기니 동부의 산간 지대로 들어갔다. 쿠루병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가이듀섹이 쿠루병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이유는 평소 아이들에 대한 특별한 애정과 함께 아동의학에 매료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쿠루병의 또 다른 특징은 성인 남자보다는 여자와 어린이들에게서 발병률이 훨씬 높다는 점이었다.
약 2년여의 세월 동안 포어족과 함께 생활한 가이듀섹은 1959년부터 포어족에게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식인 습관을 금지시켰다. 당시만 해도 포어족은 사람이 죽을 경우 동네사람들이 그 시신을 해체해 살코기는 물론 뇌와 장기까지 나누어 먹는 풍습이 있었다.
그처럼 무서운 풍습은 그들만의 장례 절차였다. 그들은 죽은 사람을 먹어야만 고인이 살아 있는 사람의 일부가 되어 영생하게 된다고 믿었다. 가이듀섹의 짐작대로 쿠루병의 원인은 바로 그 식인 습관에 있었다. 식인 습관을 금지시키자 어린이들에게서는 더 이상 쿠루병이 발병하지 않았으며, 성인들의 발병률도 급속히 낮아지기 시작했다.
여자와 어린이들에게서 특히 발병률이 높았던 이유도 자연스레 밝혀졌다. 포어족의 관습상 시신을 먹는 이들은 주로 여자와 어린이들이었다. 남성들이 시신을 잘 먹지 않았던 것은 사냥 등으로 단백질을 섭취할 기회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즉, 포어족에게는 시신의 식인 관습이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던 셈이다.
쿠루병의 일차적 원인을 알아낸 가이듀섹은 좀 더 구체적인 입증을 하기 위해 동물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 착수했다. 쿠루병으로 사망한 환자의 뇌를 잘게 갈아서 생쥐 등의 실험동물에게 주입한 것이다.
초기 실험에선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없었지만, 침팬지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드디어 쿠루병과 유사한 증상이 관찰되기 시작했다. 가이듀섹은 쿠루병에 걸린 침팬지의 뇌 시료를 건강한 침팬지들에게 주입하는 실험을 거듭했다.
그러자 사람의 시료를 주입했을 때보다 더욱 빨리 쿠루병에 걸렸다. 그 같은 실험을 통해 가이듀섹은 비슷하거나 같은 종일수록 쿠루병의 전염이 더욱 잘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쿠루병이 아주 긴 잠복기를 거쳐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는 ‘지발성 바이러스(slow virus)’ 질환인 것으로 결론 내렸다.
가이듀섹은 그 후 추가연구를 통해 조직 이식이나 성장 호르몬을 투여한 사람에게서 잘 나타나는 크로이츠펠트-야콥병, 양에게서 발병하는 스크래피, 밍크가 걸리는 전염성 뇌증 등이 쿠루병과 같은 종류의 병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B형 간염 바이러스를 발견한 미국의 바이러스학자 블럼버그와 공동으로 197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그들이 공동으로 노벨상을 타게 된 것은 B형 간염 역시 쿠루병처럼 서서히 진행되는 병이었기 때문이다.
즉, 이들이 발견한 바이러스는 급성 바이러스가 아니라 서서히 진행해 치명적 질병을 일으킨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의 공식적인 노벨상 수상 업적도 ‘전염성 질병의 기원 및 전파에 대한 새로운 기전을 밝혀낸 공로’였다.
그러나 노벨상을 받은 지 20년 후 가이듀섹은 피의자로 법정에 서야 했다. 그의 혐의는 아동학대와 성도착증이었다. 그가 그런 의심을 받게 된 것은 쿠루병을 연구한 후 미국으로 돌아오면서부터였다.
당시 그는 쿠루병 등으로 부모를 잃는 고아들을 미국으로 입양하는 일에 앞장섰는데, 그들이 양부모를 찾는 동안 자신의 집에서 돌보아주곤 했다. 그렇게 가이듀섹의 집에서 머물었던 아이 중 한 명이 성장한 후 성추행 혐의로 그를 고소했던 것이다. 그 일로 가이듀섹은 1997년에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바로 그해 노벨 생리의학상의 주인공으로 결정된 이는 미국의 스탠리 프루시너였다. 그의 업적은 프리온을 발견해 인간 광우병의 원인을 밝혀낸 것이다. 즉, 광우병이나 쿠루병 등의 유사 질병의 원인은 지발성 바이러스가 아니라 전염력을 가진 단백질 입자인 프리온이라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일부에서는 가이듀섹의 노벨상 수상이 엉터리 업적이라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한편, 프루시너가 프리온 질환을 밝혀낸 것은 가이듀섹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던 가이듀섹은 아동 성추행 사건 이후 유럽의 여러 국가를 떠돌다 85세를 일기로 노르웨이 트롬쇠에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