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낙태금지법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주의회 의사당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낙태금지법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주의회 의사당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로드] “앨라배마가 도를 넘었다. 앨라배마의 낙태금지법안은 너무 극단적이다.”

이 발언은 낙태금지법에 반대하는 여성단체나 민주당 정치인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낙태를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온 미국 침례회 팻 로버트슨 목사의 발언이다. 

팻 로버트슨 목사는 미국 보수 개신교계의 상징적인 인물인 동시에, 극우적 정치행보와 반유대주의, 반카톨릭 발언 등으로 숱한 논란을 일으켜온 인물이다. 낙태와 관련해서도 로버트슨 목사는 강력한 반대 입장을 고수해왔는데, 9.11 테러에 대해 “낙태주의자와 동성연애자 등 불건전한 것으로부터 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라는 신의 계시”라고 주장해 비난을 받았을 정도다.

앨라배마주의 낙태금지법은 로버트슨 목사와 같은 극단적인 낙태금지론자들로부터도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미국 언론 내에서는 앨라배마주 덕분에 공화당 지지자를 비롯한 보수층이 분열되고 있다는 분석까지 제기되고 있다.

앨라배마법안이 전통적으로 낙태금지를 지지해온 보수층에게서까지 엇갈린 반응을 얻는 이유는 법안 자체의 극단성때문이다. 이 법안은 산모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를 예외로 둘 뿐, 임신 이후 어떤 단계에서도 낙태시술을 금지한다. 임신부에게는 처벌이 부과되지 않지만, 낙태시술을 한 의사는 최고 99년형까지 처벌받을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8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강간, 근친상간, 산모 생명이 위험한 경우는 예외적으로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도널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8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강간, 근친상간, 산모 생명이 위험한 경우는 예외적으로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도널 트럼프 대통령 트위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조차 해당 법안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 낙태금지 입장을 꾸준히 밝혀왔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8일 트위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나는 강력하게 낙태를 반대(Pro-life)한다. 하지만 강간과 근친상간, 산모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는 예외이며, 이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과 같은 입장이다”라고 밝혔다. 

2012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였던 밋 롬니 상원의원 또한 19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앨라배마법을 지지하지 않는다. 성폭행, 근친상간, 산모 생명이 위험한 경우의 낙태 금지 예외에 찬성한다”며 앨라배마주의 낙태금지법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처럼 공화당의 보수 정치인들마저 앨라배마주와 선을 긋는 것은 단순히 법안 자체의 극단성때문만은 아니다. 앨라배마주의 낙태금지법이 낙태찬성론자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미국 여론의 반대에 부딪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지난해 5월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강간이나 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의 경우 3개월 이내 낙태를 법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응답자의 비중은 무려 77%였다. 기간을 6개월로 확대한 경우에도 낙태에 찬성하는 의견은 52%로, 비중은 감소했지만 여전히 절반 수준이었다.

조사대상을 공화당 지지자로 한정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미국의회전문매체 더힐 의뢰로 여론조사기관 해리스엑스폴링컴퍼니(HarrisX Polling Company)가 지난해 9월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 중 예외없는 낙태금지를 주장한 응답자는 20%에 불과했다. 반면, 강간, 근친상간, 산모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낙태를 허용할 수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51%에 달했다. 

앨라배마주 주민들에 대한 여론조사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확인됐다. 앤잴런 리스트 그로브 리서치(Anzalone Liszt Grove Research)가 지난 5월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예외 없는 낙태금지에 찬성한 응답자는 15%에 불과했다. 강간과 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에 대해서는 낙태 찬성 65%, 반대 31%로 찬성 의견이 우세했다. 심지어 지난 15일 해당 법안에 서명한 케이 이베이 앨라배마주지사의 지지자들조차도 찬성이58%로 반대 39%보다 높았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지난해 5월 낙태의 예외적 허용에 대한 여론을 조사한 결과. 미국인 대부분이 강간 및 근친상간 등으로 인해 임신한 여성이 낙태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답했다. 자료=갤럽 홈페이지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지난해 5월 낙태의 예외적 허용에 대한 여론을 조사한 결과. 미국인 대부분이 강간 및 근친상간 등으로 인해 임신한 여성이 낙태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답했다. 자료=갤럽 홈페이지

더힐은 조사결과에 대해 “낙태 이슈에 대해 전통적으로 보수적이었던 공화당 지지층이 낙태 입법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화당 지지자들 대부분이 낙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더라도, 이를 법으로 금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세부적으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는 것. 특히 강간, 근친상간, 산모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 등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공화당 지지자들도 낙태를 법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절반을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예외없이 낙태를 금지한다는 법안을 통과시킨 앨라배마주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보수적 정치인들로서도 지지를 표명하기는 어려운 상황. 자칫 내년 대선을 앞두고 낙태 이슈로 공화당 핵심 지지층이 분열될 경우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앨라배마주의 낙태금지법은 결국 연방대법원에서 위헌 소송으로 제동이 걸릴 확률이 높다. 연방대법원은 1973년 유명한 ‘로대웨이드’ 판결을 통해 강간으로 인해 임신한 여성의 낙태를 금지한 것은 위헌이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로버트슨 목사조차 “대법원에 가면 결국 패소할 것”이라며 부정적인 전망을 밝혔다. 

결국 미래조차 불투명한 극단적인 법안에 지지층 이탈이라는 위험까지 감수하며 섣불리 지지를 표명할 수 없다는 것. 미국 보수 인사들이 앨라배마주에 등을 돌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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