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가는 길에 걸음을 멈추고 바라본다. 이면도로 옆 울타리에 깊고 짙은 빨강이 손을 내밀고 있다. 장미꽃이다. 꽃은 겉으로만 빨갛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열겹, 열두겹 꽃잎 내부까지 속속들이 짙은 색감으로 유혹하며 아름답게 피어있다. 빨강색의 아름다움을 미처 잘 알지 못했던 사람일지라도 매화, 목련, 벚꽃, 이팝꽃 같은 봄의 흰 꽃들이 다 지고 나서 열정이자 환희처럼, 절정이자 기쁨처럼 장미가 탐스럽게 피어오른 것을 보면 진홍(眞紅)의 순수한 요염(妖艶)을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 연전에 비엔나에서 기차를 타고 부다페스트로 가면서 철로 옆에 피어있는 빨간 양귀비꽃에 마음을 빼앗겼던 적이 있다. 어두워져가는 하늘 밑에 무더기로 피어있던 양귀비꽃!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자코메티의 아틀리에>(열화당)에 보면 저자인 프랑스 시인 장 주네가 조각가 자코메티에 대해, 그가 고독과 불행을 얼마나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지를 탄력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있다. “그는 커피를, 나는 술 한 잔을 하러 밖으로 나선다. 그는 거리의 선명한 아름다움을 좀 더 잘 새겨두려고 자주 멈춰 서곤 한다. 그는 절뚝거리며 다시 걷는다. 사고로 수술을 받은 후 불구가 되어 절뚝거리며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자코메티는 굉장히 기뻤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생각해본다. 그의 조각 작품들은 어떤 비밀스런 불구 상태가 안겨 준 고독을 최후의 보루로 삼아 숨어들어 가 있는 것 같다고.”

자코메티는 인체 외형의 모든 장식, 표정과 근육의 살점마저 철저히 들어내 버리고 가늘고 긴 골격만으로 불안하게 서 있는 외로운 인물상을 통해 인간의 고독한 실존을 형상화한 조각가다. 그의 조각 <걸어가는 사람>은 똑같은 6점의 에디션이 있는데, 그 중 한 점이 2010년 2월 소더비 런던 경매에서 1억 432만 7000달러에 팔려 세계 경매사상 최고기록(당시)을 세웠다. 장 주네는 자코메티 조각을 이렇게 표현한다. “철사처럼 가느다랗게 주조한 걷고 있는 남자, 그의 한쪽 다리는 걸어갈 때의 모양 그대로 굽어 있다. 그는 결코 멈춰 서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대지 위를, 말하자면 지구 위를 정말로 걸어가고 있다.”

장 주네는 자코메티에 대해 “그는 지금까지 단 한번이라도 살아있는 존재나 사물을 하찮은 시선으로 보아 넘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는데, 사실 우리는, 누구 한 사람 예외 없이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세상을 파악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아주 고귀한 존재라고 말하지 못할지라도, 인간은 결코 하찮지는 않은 것이다.

장미꽃이 핀 것을 처음 발견한 날 나는 기뻤고, 그래서 도서관으로 곧장 가지 않고 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공원에는 모자를 쓴 여자가 개를 끌고 산책을 나왔고, 어떤 할아버지는 철봉에 매달려 냉큼 당겨지지 않는 턱걸이를 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벤치에는 ‘Wilson’이라는 로고를 단 사용하던 테니스라켓 두 개가 얌전히 놓여 있었다. 나는 오후에 적잖이 외로워져서 다시 공원으로 나가보았다. 개를 끌고 나온 여자는 없었지만, 테니스라켓은 여전히 그 벤치 위에 놓여있었다.

그 때 나는 알았다. 장미꽃이 이렇게 진홍의 아름다움으로 피면 왜 외로운 것인지를. 그 투명한 아름다움 뒤에는 조락과 고독이 숨어있고, 그것을 이해할 때 우리는 자코메티나 장 주네처럼 존재의 존재다움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러고 보니 이 사실을 더욱 뼈저리게 노래한 시가 생각났다. “한때 그렇게 빛났던 광채가/ 내 앞에 끝내 사라진다 해도/ 초원의 광휘롭던 시간이, 꽃의 영광스런 시간이/ 다시는 되돌려질 수 없다 해도/ 우리 슬퍼하지 않으리/ 오히려 그 뒤에 남은 굳건함을 찾으리/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존재할/ 근원적인 연민으로부터”(윌리엄 워즈워스의 시 ‘초원의 빛’중에서)

장미의 순간이 지나고, 삶의 무게 때문에, 풀리지 않는 일상의 어떤 것 때문에 희망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힘들게 살다 나이가 들면 자신의 삶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현재의 삶은 과거 자신이 살아온 것에 이끌려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워즈워스의 시가 말하듯, 옛날 광휘로웠던 빛의 시간이 지나가고 다시는 그 아름다움이 되돌려지지 않는다고 해도, 세월 속에 남겨진 굳건함으로 살아가는 것은 근사하다.

자코메티가 자신의 불구됨을 오히려 기뻐하며 자신은 청동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고, 조각 작품이 밖으로 나오게 한 인식의 높이는 얼마나 박수칠만한 일인가. 더 이상 테니스를 칠 수 없는 사람이 필요한 누군가를 위해 그 반듯한 라켓을 공원벤치 위에 올려놓고 가는 것은 또 얼마나 그러한가.

 

<필자 약력>

언론인·전 국민일보 편집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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