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이 지난 9일 한미 정상 간 통화내용을 공개한 것에 대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공익제보라고 주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강효상 의원 페이스북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이 지난 9일 한미 정상 간 통화내용을 공개한 것에 대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공익제보라고 주장해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강효상 의원 페이스북

[뉴스로드]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이 한·미 정상 간 통화내용을 공개한 것을 두고 “국가 기밀을 누설했다”는 주장과 “공익제보를 허용하라”는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강 의원은 지난 9일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이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방일(5월 25~28일) 직후 한국을 방문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후 조사 과정에서 강 의원의 고교후배인 주미 한국대사관 소속 현직 외교관 A씨가 통화 내용을 전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A씨는 현재 잘못을 시인한 상태다.

문제는 강 의원과 한국당이 양국 정상 통화내용을 공개한 것은 공익제보에 해당한다며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것.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23일 강 의원의통화내용 공개는 “이 정권의 굴욕 외교와 국민 선동의 실체를 일깨워준 공익제보”라며 “우리는 한미정상 간 대화는 청와대가 각색하고 편집한 것만 알라는 이야기인가. 이건 국민의 알권리를 현저하게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 의원 또한 “미국 대통령의 방한은 국민적 관심사이고, 야당 의원에게 모든 정보를 숨기는 정부를 견제하기 위한 의정 활동”이라며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밝힌 내용을 갖고 담당 공무원의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하는 것이 촛불정부에서 가당하기나 한 일이냐”고 반문했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일정이 포함된 양국 정상의 통화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공익제보에 해당하며, 이를 숨기는 것이 오히려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일까? <뉴스로드>가 이번 사건이 공익제보인지 기밀누설인지에 대해 알아봤다.

◇ 대통령 통화내용 폭로는 공익제보?

공익제보란 한 조직의 구성원이 내부의 비리·부패 등을 외부로 알려 사회구성원의 안전과 권익을 보호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즉, 공익제보의 대상은 부패행위와 공익침해행위로 국한된다.

‘부패방지 및 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부패행위는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하여 그 지위 또는 권한을 남용하거나 법령을 위반하여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행위 △공공기관의 예산사용, 공공기관 재산의 취득·관리·처분 또는 공공기관을 당사자로 하는 계약의 체결 및 그 이행에 있어서 법령에 위반하여 공공기관에 대하여 재산상 손해를 가하는 행위 △이러한 행위나 그 은폐를 강요, 권고, 제의, 유인하는 행위로 정의된다.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르면 공익침해행위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 환경, 소비자의 이익, 공정한 경쟁 및 이에 준하는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현행법은 각종 산업 및 교육, 위생, 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익침해행위를 규정하고 있지만, 타국 정상에게 방문을 요청하는 행위에 대한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청와대는 현재 강 의원이 공개한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한을 요청한 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것이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하거나 국익에 해를 끼치는 행위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군사동맹국이자 주요 무역상대국인 미국의 통수권자에게 방문을 요청하는 것은 대통령의 권한으로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사안이다.

청와대는 관계자는 23일 오후 브리핑에서 “공익제보라는 것은 조직 내부에서 저질러지는 부정과 비리를 외부에 알리는 말하는 것이지, 한미 정상 간의 통화내용이 공익제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의 방한 요청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를 부패나 공익침해행위로 볼 수 없다는 점에서, 강 의원의 폭로를 ‘공익제보’로 보기는 어렵다.

자유한국당 소속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이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강효상 의원의 한미 정상 간 통화내용 공개는 잘못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사진=윤상현 의원 페이스북
자유한국당 소속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이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강효상 의원의 한미 정상 간 통화내용 공개는 잘못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사진=윤상현 의원 페이스북

◇ '국민의 알 권리'로 대통령 통화내용 공개도 요구할 수 있나? 

그렇다면 한·미 정상 간의 통화 내용은 국민의 알 권리에 포함되는 것일까? 이 또한 한국당의 손을 들어주기 어렵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은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개돼서는 안되는 정보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해당 법률 9조 2항에 따르면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는 국민의 알 권리에도 불구하고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정상 간 통화내용은 누설될 경우 국익에 해를 끼칠 수 있어 3급 기밀로 취급돼왔다. 한·미 정상 간의 통화 내용은 외교관계에 관련된 중요 사안으로 3급기밀에 해당하며, 정보공개청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실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지난 2015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간의 통화 내용을 공개하라고 청구했으나, 재판부에 의해 각하당한 바 있다.

특히 강 의원의 폭로는 핵심동맹국 통수권자의 구체적인 일정을 외부에 유출함으로써 한미관계뿐만 아니라 북한문제 등 안보에도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한·미 정상 간의 통화 내용을 숨기는 것이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주장도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 청와대 반박에 당내 비판까지…

한·미 정상 간의 통화 내용 공개가 공익제보이자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이라는 강 의원의 주장은 점차 역풍을 맞는 모양새다. 청와대 관계자는 23일 브리핑에서 “이 사안은 한미간 신뢰를 깨는 문제가 될 수 있고,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문제여서 민감하고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며 “3급 기밀에 해당되는 한·미 정상 간 통화내용이 누설된 것이 (한미관계에) 악영향을 끼친 것이지 공익제보와는 다르다”고 반박했다.

당내에서도 강 의원이 경솔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맡고 있는 윤상현 자유한국당 의원은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당파적 이익 때문에 국익을 해치는 일을 해서는 결코 안된다”며 “어느 때보다 한ㆍ미 관계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민감한 시기에 국익을 해치는 무책임한 행동을 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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