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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의 발생 원인에 대해 거의 알려진 것이 없던 1913년, 덴마크의 병리학자 요하네스 피비게르가 놀라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스피롭테라 군의 기생충이 생쥐에게 위암을 발생시킨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증명한 것이다.

이 연구는 실험으로 암을 유발한 최초의 사례이며, 암이 외부 자극으로도 유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끌었다. 연구 발표 후 요하네스 피비게르는 스타 과학자 대우를 받았다. 덴마크를 비롯해 스웨덴, 벨기에의 왕립아카데미 회원이 되었으며, 세계 유명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영국의 저명한 암 연구학자였던 아키발드 레이취 박사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의 연구는 우리 시대 최고의 실험의학적 성과다. 그는 앞으로 계속 성장해 나갈 중요한 진실의 틀을 마련했다.” 결국 노벨상위원회는 1926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요하네스 피비게르를 선정하기에 이른다.

기생충이 생쥐에게 위암을 발생시킨다는 사실을 밝혀 192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요하네스 피비게르. ⓒ 위키미디어 public domain
기생충이 생쥐에게 위암을 발생시킨다는 사실을 밝혀 192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요하네스 피비게르. ⓒ 위키미디어 public domain

1867년 덴마크 실케보르에서 시골 의사와 여류 작가 사이의 아들로 태어난 피비게르는 코펜하겐대학을 졸업하고 당대 최고의 세균학자였던 로베르트 코흐와 에밀 폰 베링 밑에서 세균학을 연구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코펜하겐대학 병리해부학연구소 소장이 된 그는 디프테리아 및 결핵의 세균학상을 연구했다.

그런 연구를 하던 1907년 어느 날, 피비게르는 이상한 사실을 발견했다. 결핵에 감염된 실험쥐를 해부했는데, 그중 3마리의 위에서 새로운 암 종양과 함께 스피롭테라 군의 기생충을 발견한 것. 그는 그 새로운 암을 유발한 요인이 바로 기생충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피비게르는 건강한 쥐에게 기생충과 그 알을 먹여 암을 유발시키는 실험에 착수했다. 하지만 1000마리가 넘는 다양한 종류의 쥐를 사용해 실험해도 암은 유발되지 않았다.

연구를 포기하려던 순간, 우연히 코펜하겐의 설탕 정제공장에서 자신이 찾던 한 떼의 쥐를 발견했다. 그 쥐들은 피비게르가 처음 발견한 3마리의 쥐와 마찬가지로 기생충이 든 위암 종양을 지니고 있었다. 그 공장을 둘러본 후 피비게르는 왜 자신이 그동안 실험에 성공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됐다.

공장에 들끓고 있는 바퀴벌레가 결정적 단서였다. 그는 쥐의 배설물을 먹은 바퀴벌레에 기생충 알이 옮겨가 성장한 뒤 유충 상태로 바퀴벌레의 근육에 존재하다가 다시 그 바퀴벌레를 쥐들이 잡아먹음으로써 기생충 애벌레가 쥐의 위장 속에서 성충으로 자란다고 생각했다. 즉, 암을 발병하는 기생충은 바퀴벌레를 숙주로 이용하고 있었던 셈이다.

피비게르는 즉시 기생충 애벌레를 몸속에 지닌 바퀴벌레들을 이용해 실험에 착수했다. 그 바퀴벌레들을 먹인 실험쥐들의 위를 해부한 결과, 예상대로 수많은 쥐의 위에서 암이 발병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그런데 피비게르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노벨위원회는 세월이 흐를수록 점차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피비게르의 방식대로 진행한 재현 실험에서 단 한 번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 피비게르는 어떻게 암을 유발한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측이 존재한다. 바퀴벌레에 암을 발병시키는 특정 바이러스가 존재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피비게르가 실험을 할 때 실험쥐들에게 식사 조절을 시킨 탓에 비타민 A 결핍으로 암이 발생했다는 견해도 있다.

어쨌든 피비게르의 수상은 오류로 밝혀진 대표적인 노벨상 사례이자 노벨위원회의 거대한 실수로 회자되기에 이른다. 무엇보다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이들은 당시의 유명 암 연구자들이다. 피비게르에 대한 잘못된 수상으로 인해 노벨위원회가 암 관련 연구자에게는 수상을 꺼려한다는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피비게르 이후 암 연구자가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40년 후인 1966년 프랜시스 페이튼 루스였다. 그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연구 성과는 1910년에 이미 나왔다. 그럼에도 노벨위원회는 수상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다가, 루스의 연구가 과학적으로 완전히 입증된 후에서야 수상자로 선정한 것이다.

또 다른 피해자로는 일본의 야마기와 가쓰사부로와 이치카와 고이치를 꼽을 수 있다. 두 사람은 토끼 귀에 콜타르를 바르는 등 지속적으로 자극을 줌으로써 인공적으로 암을 발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1915년에 발표된 이들의 연구 결과 역시 피비게르와 동일한 1926년 노벨 생리의학상 후보로 추천됐다.

하지만 당시 다수의 심사위원들이 피비게르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노벨상은 그에게로 돌아갔다. 외부 자극 및 실험실에서의 암 유발 성공 시점만 놓고 보면 피비게르가 야마기와보다 2년 앞서 있다. 야마기와는 4번이나 노벨 생리의학상 후보로 추천됐으나 결국 수상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피비게르의 기생충 발암설은 졸지에 엉터리 이론이 되고 말았지만, 이후 실제로 기생충이 암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주로 오염된 물에서 목욕할 때 감염되는 방광주혈흡충은 방광암을, 익히지 않은 민물고기를 먹으면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진 간디스토마는 담도암을 유발한다.

방광주혈흡충은 방광정맥총에 매일 수백 개의 알을 놓아 수많은 궤양을 발생시킨다. 그로 인해 생긴 염증이 비정상적인 세포 증식을 불러오면 방광암으로 발전할 수 있는데, 방광주혈흡충의 감염은 암 발생 위험을 약 5배 높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꽤 오래 전부터 담도암의 발병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간디스토마는 최근 연구에서 충체 내에 헬리코박터균을 지닌 것으로 밝혀졌다. 즉, 간디스토마와 그 속에 있는 헬리코박터균이라는 두 병원체가 담도암을 유발시키는 공범으로 지목된 것이다.

피비게르의 연구는 비록 오류로 밝혀졌으나, 기생충이 암을 유발한다는 그의 가설은 실제로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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