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바로알기] '밥 굶는 미 대학생' VS '헬조선' 비교
[미국 바로알기] '밥 굶는 미 대학생' VS '헬조선' 비교
  • 장소라 기자
  • 승인 2019.06.0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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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뉴스로드] “저는 순진하게도 스탠포드만큼이나 등록금이 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의 저축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결국 6개월 뒤 저는 대학 교육이 그만한 가치가 없다고 결론내렸습니다. 내가 인생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대학 교육이 그것을 찾아내는 데 어떤 도움이 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부모님께서 평생 모은 재산이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는 대학 교육에 대한 의혹과 과도한 학비 부담에 시달려 중퇴를 결정했다는 어느 청년의 고백이다. 이 청년이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다. 잡스는 지난 2005년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엄청난 대학 등록금이 학교를 자퇴한 이유 중 하나였다고 밝혔다.

물론 잡스는 정규교육에 얽매이지 말고 스스로 흥미를 느끼는 분야에 도전하라며 졸업생들의 용기를 북돋아주기위해 자신의 대학 시절을 회고한 것뿐이다. 하지만 학비 부담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면, 젊은 시절의 잡스도 코카콜라 빈 병을 모아 팔거나 매주 힌두교 사원에서 제공하는 공짜 밥을 먹기 위해 7마일을 걷는 대신, 대학을 다니며 자신의 꿈을 탐색했을지 모른다.

젊은 잡스를 괴롭혔던 미국 대학들의 높은 학비 부담은 현재진행형의 문제다. 최근 모어하우스컬리지 졸업식에서 졸업생 전원의 학자금 대출을 대신 갚아주겠다고 약속해 화제가 된 억만장자 로버트 F 스미스는 “모든 졸업생들이 동일한 기회를 얻어 앞으로 나가게 하자. 우리 모두가 아메리칸 드림의 기회를 가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실상 모든 졸업생들이 동일하게 가진 것은 '기회'가 아니라 '빚'이다. 

모어하우스컬리지의 등록금은 연간 2만5368달러로, 기숙사비 등 다양한 비용을 모두 더하면 매년 4만8000달러가 필요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마땅한 수익이 없는 대학생들은 엄청난 빚을 안고 세상에 나서야 한다. 실제 모어하우스컬리지 2019년도 졸업생 약 400명의 대출금 총액은 약 400만 달러로 추정된다. 졸업생 한명이 거의 10만 달러, 한화 1억원이 넘는 빚을 변제해야 한다는 것.

미국의 억만장자 로버트 F 스미스. 최근 모어스미스컬리지 졸업식 축사에서 졸업생들의 학자금 대출을 대신 갚아주겠다고 약속해 화제가 됐다. 사진=연합뉴스
미국의 억만장자 로버트 F 스미스. 최근 모어하우스컬리지 졸업식 축사에서 졸업생들의 학자금 대출을 대신 갚아주겠다고 약속해 화제가 됐다. 사진=연합뉴스

그렇다면 미국 전체 대학생들의 주머니 사정은 어떨까? 연방준비제도 등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4470만명의 미국인들이 1.56조 달러의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모기지론에 이어 미국 소비자부채 항목 중 2위에 해당하는 규모이며, 단순 계산으로도 한 사람당 평균 3만5000달러의 적지 않은 부담이다. 이들은 매달 평균 393달러를 갚아나가고 있는데, 1년이면 4700달러, 한화 500만원 정도의 돈이 학자금 대출을 변제하는데 들어가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90일 이상 연체율도 11.4%나 된다.

놀라기는 아직 이르다. 학자금 융자 정보업체 ‘스튜던트론히어로’(Student Loan Hero)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공립대 졸업생의 66%, 비영리 사립대 졸업생의 75%가 각각 2만5550달러, 3만2300달러의 빚을 지고 있다. 특히, 영리형 사립대의 경우 88%의 졸업생이 3만9950달러의 대출을 지고 졸업하며 이 중 48%가 1년 이내에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진다.

대출 부담이 크다 보니 밥을 굶는 대학생들도 늘어가고 있다. 미국 회계감사원(GAO)의 2019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약 31개의 관련 연구를 검토한 결과 미국 대학생의 3분의 1 이상이 충분한 영양공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뉴욕타임즈는 지난달 2일 “밥이냐, 학비냐”라는 도발적인 기사를 보도했는데, 이 기사에 소개된 대학생들의 사정은 마치 물로 배를 채우던 전쟁 직후 한국 학생들의 상황과 비슷하다. 인터뷰에 응한 한 대학생은 “배가 고픈 상태로 세 시간짜리 강의를 집중해서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라며 “먹을 것을 찾기보다는 차라리 낮잠을 자는 편”이라고 말했다.

한국 대학생들의 사정은 어떨까? 한국도 이미 ‘헬조선’이라는 유행어나 퍼질 정도로 청년층의 빈곤문제는 하루이틀된 문제가 아니지만, 미국보다는 사정이 낫다. 교육부에 따르면 일반상환학자금 대출 총액은 지난 2010년 1조9205억원까지 늘어났다가 지난해 9698억원까지 감소했다. 2010년 취업후상환학자금 대출제도가 도입되면서 일반상환학자금 대출 총액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 2012년 국가장학금 제도기 실시되면서 전체 학자금 대출 총액이 감소하게 됐다. 취업후상환학자금 대출 총액은 국가장학금제도 도입 다음해인 2013년 1조7811억원에서 지난해 8398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연체율 또한 미국보다 낮은 3~4% 수준으로 지난 2016년 기준 연체자는 7만9288여명, 1인당 평균 연체액은 488만원 정도다. 정부가 등록금 인상폭을 1~2% 수준으로 제한하는 데다,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올해 기준 연 2.2%) 취업후상환학자금 대출제도와 국가장학금제도가 있어 미국에 비하면 상황이 나은 셈이다. 

2005년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에서 연설 중인 스티브 잡스. 잡스는 이날 축사에서 졸업생들에게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조언을 남겼다. 사진=스탠포드대학교 유튜브 채널
2005년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에서 연설 중인 스티브 잡스. 잡스는 이날 축사에서 졸업생들에게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조언을 남겼다. 사진=스탠포드대학교 유튜브 채널

다만 그렇다고 해서 국내 청년층의 대출부담을 쉽게 생각하기는 어렵다.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가 2017년 펴낸 '이행기청년 금융지원 모형 개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거주 20~34세 남녀 136명을 조사한 결과 1인당 평균 순자산은 778만원인 반면 부채는 1064만원으로 나타났다. 특히 만 24세 이하의 자산 대비 금융부채 비중은 134%로 재무건전성이 상당히 취약했다. 부채 중 학자금 대출에 해당하는 '한국장학재단' 비중이 약 55%(650만원)임을 고려하면, 대학생들의 학비 부담을 줄여야한다는 당위성은 분명하다.

학자금 대출 규모는 한국이 미국보다 적지만 고용시장 사정이 나빠 상환은 더욱 어려울 수 있다. 특히 15~24세 청년층 고용률의 경우 지난해 기준 미국이 50.5%인 반면 한국은 그 절반인 26.6% 수준이다. ‘스펙’을 쌓아 취업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학자금 대출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졸업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고용시장이 얼어붙어 구직기간이 길어지면서 학자금 상환이 어려워진 데다, 간신히 취직해도 상환기준소득(올해 기준 2080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연봉을 받는 경우도 많다. 한국장학재단에 따르면 6개월 이상 장기연체자는 2017년 말 기준 3만6104명으로 2016년 3만1232명보다 15.6% 증가했다.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해 강제집행 절차에 들어간 장기연체자 또한 같은 기간 2566명에서 2576명으로 소폭 늘어났다.

스티브 잡스의 2005년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 축사는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명언으로 마무리된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꿈에 도전하라는 잡스의 말은 낭만적이지만, 밥을 굶으며 대학 4년을 마쳤더니 남은 것은 수천만원의 부채뿐이었다는 청년들의 한숨은 현실이다. 빚에 허덕이다 주저앉아버린 배고픈 청년들에게 "Stay hungry"를 외치기보다는, 도전에 나설 수 있도록 부담을 덜어줄 방법을 국가는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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