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이 있는 시] 그게 전부일지도 모릅니다
[풍경이 있는 시] 그게 전부일지도 모릅니다
  • 김용국(시인)
  • 승인 2019.06.15 0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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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하영, 헤이리 근현대사박물관
사진 이하영, 헤이리 근현대사박물관

그게 전부일지도 모릅니다


그게 전부일지도 모릅니다, 저 노파에게는
찌그러진 바퀴의 손수레가.

그게 전부일지도 모릅니다, 저 여자에게는
떠난 남자의 냄새나는 추억이.

그게 전부일지도 모릅니다, 저 어린애에게는
굴러가며 흙이 묻는 눈깔사탕 하나가.

그게 전부일지 모릅니다, 저 환자에게는
숨소리 하나가 기대기 힘든 깡통 같은 육신이

그곳 그때
그들 앞에 놓인 아무 것이나 하나가
그들에게는 전부일지도 모릅니다.

손수레가, 추억이, 눈깔사탕이, 육신이
그들에게는 온 생애의 전부이듯,
 
하찮은, 시시한, 사소한, 무의미한
그런 것들이, 그런 것들이
그들에게는 
마지막 전부일지도 모릅니다.

 

여러 날을 굶은 사람에게 밥 대신 금덩이를 내밀어 본 적은 없나요. 목마름에 혀가 말려든 사람에게 물 한 잔 대신 이틀쯤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우물을 가르쳐 준 적은 없나요. 심장마비로 쓰러진 사람에게 심폐소생술 대신에 심장전문병원의 약도를 그려준 적은 없나요. 강을 건너야 하는 사람에게 배표 대신 비행기표를 준 적은 없나요. 멀고 추운 길을 걸어온 나그네에게 자신의 집 대신에 산 너머 호텔을 가르쳐 준 것은 없나요.

아마 그럴 겁니다. 다 그 사람을 위한다는 명분이겠지요. 밥보다 금덩이가, 한 잔의 물보다 우물이, 심폐소생술보다 심장전문병원이, 배표보다 비행기표가, 불편한 내 집보다 호텔이 더 가치 있고 편하기 때문이라고 말했겠지요.

그러나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아무리 귀한들, 아무리 중요한들, 아무리 편한들, 어떤 사람에게는 그 하나 ‘하찮은, 시시한, 사소한, 무의미한/그런 것들이, 그런 것들이/그들에게는/마지막 전부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남이 보기에는 ‘하찮은, 시시한, 사소한, 무의미한/그런 것’이 지금 ‘마지막 전부’처럼 필요로 할지도 모릅니다.

『장자莊子』의 ‘외물편’에 나오는 글입니다.

〈내가 여기 오는데 누가 나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니 수레바퀴 자국에 붕어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내가 왜 불렀느냐고 물었지요. 그러자 붕어는 ‘당장 말라죽을 지경이니 물 몇 잔만 떠다가 살려 주세요’하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해 답니다. ‘그래, 나는 이삼 일 내로 남쪽 오吳나라와 월越나라로 유세를 떠나는데 가는 길에 서강의 물길을 네가 있는 곳으로 향하도록 하겠다. 그 때까지 기다리라’고. 그랬더니 붕어는 화가 나서 ‘나는 지금 몇 잔의 물만 있으면 살 수 있는데 당신이 기다리라고 하니 나중에 건어물전(乾魚物廛)에서 나를 찾는 것이 나을 것이요’라고 말했습니다.〉

김용국(金龍國) 시인 약력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해 30년 넘게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타악기풍으로』, 『생각의 나라』, 『다시 나를 과녁으로 삼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당신의 맨발』 등이 있으며 동인지 『비동인 (非同人)』으로 활동했다. 월간 『베스트셀러』에서 제정한 제1회 베스트셀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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