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여사의 삶과 꿈, 그 못다한 이야기
이희호 여사의 삶과 꿈, 그 못다한 이야기
  • 최서율 기자
  • 승인 2019.06.1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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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 별세. [사진=연합뉴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 별세. [사진=연합뉴스]

[뉴스로드] 10일 별세한 고(故) 이희호 여사는 유언을 통해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동교동 사저를 ‘대통령 사저 기념관’(가칭)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노벨평화상 상금은 대통령 기념사업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라”고 유언했다.

국민과 민족의 평화통일을 기도하며 하늘로 돌아간 이 여사의 발자취를 <뉴스로드>가 살펴봤다.

 

◇ ‘여성 운동가’ 이희호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이희호 여사는 남아 선호 사상이 극심했던 시대에 아들과 딸을 구분하지 않는 부모 밑에서 성장했다. 이 여사는 해방 후 서울대 사범대학에 다니며 남녀평등에 관해 깊이 고민하게 된다. 이 여사의 자서전인 동행에서 그는 “그때 여자들의 자리는 당연히 안방이나 부엌이었다. 그리고 학교와 사회에서는 언제나 뒷자리 차지이며 이등 시민이었다. 남녀공학 체험은 여성들이 스스로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우쳐주었다”고 말했다.

1950년 6월 25일에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이 여사는 친구인 김정례, 박기순, 장옥분과 함께 여자 청년단을 조직한다.

그는 “나는 여성운동이 하고 싶었다. 여성은 전쟁의 최대 피해자였다. 남성은 전쟁터에서 싸우다 전사하면 '조국을 위해서'라는 명예로운 이름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순국선열의 반열에 올라간다. 그러나 후방의 희생자인 여성들에게는 불명예와 수모만 있을 뿐이었다”고 술회했다.

전쟁 후 이 여사는 ‘여성문제연구원’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여성운동에 뛰어들었다. 여성문제연구원은 ‘가정법률상담소’의 모태가 됐다. 이후에도 이 여사는 대한YWCA연합회(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회)에서 여성 권리 찾기 운동을 활발히 펼쳤다.

 

동교동 저택에서의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사진=연합뉴스]
동교동 저택에서의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사진=연합뉴스]

◇ ‘서로를 동여맨 끈처럼’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만남

대한YWCA연합회에서 여성 운동을 이끌던 이희호 여사는 1962년 5월 10일 김대중 전 대통령과 결혼한다. 그는 김 전 대통령과의 만남을 ‘운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과 결혼을 결심했던 때를 회상하며 “그에게 정치는 꿈을 이루는 길이며 존재 이유였다면 나에게는 남녀평등의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 중의 하나였다. 남녀 간의 뜨거운 사랑보다는 서로가 공유한 꿈에 대한 신뢰가 그와 나를 동여맨 끈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 여사와 김 전 대통령이 함께 이룩한 대표적인 여성 문제는 ‘가족법 개정안’이다. 김 전 대통령은 1971년 대통령 선거 유세를 하면서 여성지위향상위원회를 두겠다는 공약 발표를 시작으로 대선과 총선 등 모든 선거에서 가장 앞선 여성 정책을 제시한 페미니스트 후보가 된다. 이는 이 여사의 영향이 컸다.

그러나 독재 아래에서 이 여사와 김 전 대통령이 사회 활동을 하는 것은 가시밭길과 다름없었고 결국 1982년 이 여사와 김 전 대통령은 미국 망명길에 오른다.

 

이한열 열사 영안실을 찾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사진=연합뉴스]
이한열 열사 영안실을 찾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사진=연합뉴스]

◇ DJ와 함께 한 민주화 투쟁

독재 정권이 지나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이희호 여사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가시밭길은 끝나지 않았다. 이 여사와 김 전 대통령은 1985년 2월부터 1987년 6월까지 28개월 동안 무려 54차례 연금된다.

이때 이 여사는 1980년대 최대의 사건이었던 5·18 광주에 아파했고 민주화 투쟁 속 희생된 이들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 이 여사는 틈이 날 때마다 희생된 유족을 위해 노력했다. 

이 여사는 여성 운동가이자 민주화 투사, 그리고 김 전 대통령의 정치 동반자로 1998년 2월 25일 청와대에 입성했다. 이 여사는 아동과 여성을 위해 제2부속실을 활용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양성평등과 인권 운동을 중심으로 한 ‘일상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다. 행정부 최초로 여성부가 설치되는 데 기여했으며 여성부, 문화관광부, 환경부, 보건복지부에서 4명의 여성 장관이 탄생하도록 이끌었다. 국가인권회 역시 이 여사의 작품이다.

 

유엔 총회에서 기조 연설하는 이희호 여사. [사진=연합뉴스]
유엔 총회에서 기조 연설하는 이희호 여사. [사진=연합뉴스]

◇ 사랑을 전하고 하늘로 돌아가다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먼저 눈을 감은 후에도 이 여사는 평화를 위해 힘썼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때 김 전 대통령과 평양을 방문해 북한 어린이 돕기에 앞장섰던 것을 이어 2015년에도 평화적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평양을 직접 방문했다.

또한 이 여사는 2002년 5월 유엔 총회 의장국 대표로 임시의장을 맡아 회의를 주재하고 기조  연설을 한 첫 여성이 되었다. 이 여사는 “전 세계 아이들을 빈곤, 학대, 질병과 같은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자”고 한국의 대표로서 세계를 향해 외쳤다.

이 여사는 김대중 평화센터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어려운 사람들과 사회적 약자를 계속해서 돕다가 2019년 6월 11일 소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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